“약국 하나 못 짓는 불교계? ‘불교 병원’을 만들겠다” 녹원 스님 회고담 출간
“평생 승려의 길을 걸었어도 아프면 앞에는 성모 마리아, 뒤에는 십자가가 서있는 기독교병원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1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입니다. 제가 혹시라도 살아난다면 꼭 현대적 의료시설을 갖춘 불교병원을 짓겠습니다.”
1980년대 중반 녹원(1928~2018) 스님은 급환으로 대구 파티마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파티마병원은 천주교계가 세운 병원.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녹원 스님은 ‘불교병원 건립’이라는 원력(願力)을 세우게 됐다. 당시만 해도 불교계는 ‘약국 하나 못 짓는다’는 자조적 분위기였다. 결국 녹원 스님은 동국대 이사장 시절인 1998년 기공해 1000개 병상 규모의 일산 동국대병원을 2002년 준공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불교계까지 기금 모금에 동참했다.
최근 출간된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영허녹원’(유철주 지음·조계종출판사)은 직지사 주지·조계종 총무원장·동국대 이사장으로 20세기 후반 조계종 종단 행정의 큰 축을 도맡았던 녹원 스님의 삶을 주변 인물 27명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제자와 지인들이 기억하는 스님은 한마디로 ‘춘풍추상(春風秋霜)’. 제자를 비롯한 스님들에겐 엄부(嚴父)였지만 불자(佛子)들에겐 자상한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최근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선 스님의 그런 모습에 대한 회고가 줄을 이었다. 상좌인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스님은 김천역에서 서울역까지 7시간 동안 열차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꼿꼿이 앉아서 가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풀 먹인 두루마기가 구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직지사 주지 장명 스님은 스승이 서울로 출타한 사이에 녹원 스님 방의 세면장에서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직지사로 돌아온 스승에게 혼쭐이 난 경험을 털어놓았다. 스승이 갑자기 돌아온 이유는 ‘책상에 책을 비뚤게 놓아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종단 행정과 불사(佛事)를 대하는 녹원 스님의 태도는 ‘10년 후, 100년 후에도 시비가 없도록 확실하게’였다. 디테일에도 강했다. 법등 스님은 스승에게 ‘명분 없는 행동은 일체 하지 말 것’ ‘삼보정재(三寶淨財)를 허투루 쓰지 말 것’ ‘공금과 개인 돈을 혼용해 쓰지 말 것’ 등 세 가지 가르침을 받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1975년 대구 능인고 이사장과 신입생으로 처음 만나 대구지법 김천지원 판사로 다시 만난 이후 인연을 이어온 주호영 의원도 참석했다. 주 의원은 “항상 남북 문제나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요점은 항상 공심(公心)이셨다”고 말했다. 또 녹원 스님의 손(孫)상좌인 묘장 스님은 “한번은 좋은 책이 있어서 선물해 드렸더니 ‘책값’이라며 용돈을 10만원이나 주셨다”며 “이후로 용돈이 필요하면 책을 선물해 드렸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파계사 조실 도원 스님은 책 첫머리 행장에서 “직지사의 기왓장 하나, 벽돌 한 장이 곧 스님의 진신(眞身)이고, 노구에도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일상이 곧 스님의 유훈(遺訓)이며, 세간과 출세간을 종횡무진하면서 보살행을 실천했던 발자취가 곧 스님의 비문(碑文)”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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