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만난 보스토치니, 러시아의 ‘과시’와 북한의 ‘야망’이 겹치는 곳
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우주강국 러시아’를 상징하는 장소로 애국심 고취에 활용돼 왔다. 러시아 입장에선 우주탐사 능력을 과시하고, 북한으로선 정찰위성 기술을 획득이란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러시아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6000㎞,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500㎞ 떨어진 아무르주 치올콥스키시 인근에 있다.러시아 내 6개의 우주기지 가운데 하나로 소련의 첫 우주기지인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의존도를 줄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1954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1954년 발사돼 냉전 시대 우주경쟁의 서막을 연 곳이다. 소련 해체 후 카자흐스탄 영토에 편입돼 러시아는 이 기지를 임대해 사용해 왔다. 인공위성 발사는 저위도일수록 유리한데 바이코누르 우주기지가 옛 소련 영토 내 가장 저위도에 위치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조지아 침공 1년 전인 2007년 임대비용 절감과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러시아 영토 내에 새 우주기지 건설을 제안했다. 보스토치니 기지 건설은 2012년 시작돼 5~7조원이 들었다. 부지면적은 551.5 ㎢로 한국 나로 우주센터의 110배가 넘는다. 러시아 지폐 뒷면에도 등장한다.
2016년 4월 첫 인공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이 기지에서 발사한 인공위성은 초기 비행 단계에서 외국 영공을 지나가지 않는다. 이는 기지의 큰 이점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총 11번의 인공위성 발사가 이 기지에서 이뤄졌으며 10번은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달 발사된 무인 달 탐사선 루나 25호는 달 표면에 추락해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한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와 비교됐다. 인도를 의식해 무리하게 발사를 추진했다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독립적 우주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우주기지이지만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친구가 있다고 강조할 때 이 기지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동안 칩거하던 푸틴 대통령이 다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다. 푸틴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4월 12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서방 제재로 러시아를 굴복시킬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침공 이후 48일 만의 첫 공개 행보였다. 이날은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주비행을 기념하는 61번째 ‘우주의 날’이었다.
북한 역시 우주개발을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초인 2012년 ‘우주강국 건설’을 목표로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2016년 국가우주개발 계획 2차 계획(2021~2025년)을 내놓았다. 지난 5월과 8월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발사체 기술 획득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13일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두고 “우주강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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