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이응광, 성악가(바리톤)‧'이천문화재단' 대표
동양 최초 스위스 ‘바젤극장’ 전속 가수
각종 성악콩쿠르 ‘도장 깨기’ 제패
김호중과 막역한 선후배 사이
“김호중, 당장 오페라계 진출해도 존재감 발휘할 수”
마리오 벤자고, ‘스위스의 보석’이란 별칭 붙여줘
올해 1월 ‘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취임
10월 ‘이천국제음악제’ 선봬…협주곡‧오페라‧재즈‧가요까지
유럽 성악 콩쿠르에 ‘이천’시 명칭 딴 특별상 제정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 내 소리에 가장 잘 맞아”
콩쿠르서 최상의 실력 보여주기 위한 팁은?
고교때 록그룹 리드보컬 활동
앞으로도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할 것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김천에서 양파(겨울)와 자두(여름) 농사를 지으며 1남 3녀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아들은 명문 서울대 합격, 이어 독일 유학(한스아이슬러 석사). 마리아 칼라스‧리카르도 잔도나이‧에른스트 해플리거 등등 유럽을 대표하는 각종 성악 콩쿠르를 제패했고 스위스 명문 오페라단 '바젤극장' 동양 최초 전속 가수로 8년간 활동했다.
세계적 성악가란 위상에 더해 공공기관 기관장(이천문화재단 대표)이 돼 '아티스트'와 '경영'이란 물과 불같은 관계의 '성공적' 공존까지 모색하고 있다.
그에겐 어제 같은 오늘이 없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확장과 깊이를 더해간다. 광속보다 빠르게. 전형적인 흙수저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 바리톤 이응광(41)의 삶은 이처럼 전광석화 자체다.
강남 모처에 있는 이응광의 작업실을 찾아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꾸던 '김천 촌놈' 이응광은 김천 성의고교 재학시절 록그룹 '헤라클레스' 리드보컬로 활동하며 록 음악에도 남다른 끼를 보였다. 너바나, 부활, 윤도현, 신성훈 등에서 헤비메틀 밴드까지 다양한 음악을 카피하던 '성의고 스쿨밴드' 헤라클레스는 김천교도소 등 몇몇 장소 위문공연도 할 정도로 그 지역에선 주목받던 '고딩 밴드'였다.
이처럼 이응광은 주중엔 밴드부(록) 주말엔 교회찬양단(성악)에서 활동하며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갔다. 2022년에 뮤지컬 '나폴레옹' 주연을 맡은 이응광은 무대에서 열연하며 자신도 모르게 왕년에 록을 하던 발성이 나오는 걸 보고 놀랐다.
타고난 재능, 그의 주변엔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응광의 서울대(음대) 입학은 김천 성의고등학교 사상 처음이었다. 성의고 출신 선배들은 "드디어 우리 학교에서도 서울대 합격자가 나왔다"며 그에게 대학 전 학년 등록금을 지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마추어합창단에서 노래하던 대학 2학년 이응광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조은희 지휘자도 고마운 사람 중 하나다. "너는 앞으로 음악을 하려면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며 지인인 박의협 법무사를 추천했다. 이렇게 해서 이응광은 이천의 '동원참치'란 곳에서 조은희 지휘자와 함께 이천을 대표하는 재력가 박의협을 만난다. 조은희는 박의협 법무사에게 "응광이는 음악 실력이 엄청난 아이로 향후 대성할 친구니까 많이 도와달라"고 했고 박의협은 흔쾌히 학기당 300만 원씩 후원하겠다고 했다.
이미 대학 등록금은 해결한 상태인 관계로 이응광은 박의협 법무사로부터 후원받은 300만 원을 해외 현지 학습에 사용했다. 2002년 방학 때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서 레슨 받고 공연도 보며 소위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고성현이 최고인 줄 알던 학생 이응광은 소피아 현지에서 최고 성악가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방학 때만 되면 불가리아로 날아가 성악 레슨과 세계적인 성악가들 공연을 놓치지 않고 봤다. 박의협의 후원금은 이응광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갖게 한 것이다.
박의협 법무사 외에 '월전미술관' 장학구 관장, 그리고 윤석구 사장 등이 이응광에게 이천에서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2022년에도 음악회가 계속됐다.
독일 유학 시절 많은 콩쿠르에 출전하기도 했다. 독일 알렉산더 지라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를 필두로 스페인 프란체스코 비냐스,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오스트리아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이탈리아 리카르도 잔도나이, 스위스 에른스트 해플리거, 이탈리아 알프레도 자코모티 등등 숱한 국제 성악 콩쿠르에 출전해 '도장 깨기' 하듯 우승‧입상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많은 콩쿠르에 출전한 건 돈과 존재감(스펙) 때문이다. 콩쿠르 상금은 유학 기간 내 생활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또한 성악 콩쿠르엔 유명 오페라극장장도 심사위원으로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응광은 우승상금 일부는 생활비, 나머지는 또 다른 콩쿠르를 위한 항공권과 숙박료로 사용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는 그에겐 가장 뼈아픈 기억이다. 201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했지만 "컨디션 조절 실패로" 떨어졌다. 이때 우승자가 現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장인 소프라노 홍혜란이다.
당시 현지 언론에선 이응광을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언급했다. 그 어떤 콩쿠르보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던 이응광은 예선을 쉽게 통과했다.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그는 본선 며칠 앞두고 베를린으로 가서 레슨을 받았다. 다음 결전을 위해 휴식을 취하며 정신과 몸을 가다듬는 시간이어야 함에도 벨기에에서 베를린까지 오가며 체력을 고갈시켰다. 여기에 레퍼토리도 말러와 베르디 '운명의 힘'이었다. 40대가 돼서야 불러야 할 바리톤 최고의 무거운 아리아를 레퍼토리로 들고나온 것이다. 평소 그가 잘하던 레퍼토리를 갖고 나왔다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기대를 많이 한 현지 언론도 "이응광에겐 본선의 밤이 최악의 밤"이라고 쓸 정도였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 공동 7위를 끝으로 그는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다.
이응광이 스위스 오페라계에서 활동한 데엔 이유가 있다.
통상적으로 독일 극장에선 한 시즌(9월부터 다음 해 6월) 7~8개 역할을 맡게 한다. 하루는 모차르트 하루는 베르디 또 하루는 고음악을 또 하루는 차이코프스키를 노래하는 피를 말리는 일정이다. 벨칸토를 했다가 바그너를 했다가…. 이렇게 하다 보면 2~3년 후엔 목이 많이 다치는 게 다반사. 임금도 낮은 편이다. 반면, 스위스는 독일보다 임금이 높을 뿐 아니라 예술가에 대한 대우도 독일보단 좋고. 여러 장점을 이유로 주변에선 스위스에서 활동할 걸 권했다.
이렇게 해서 이응광은 한스아이슬러 음대 재학 중이던 2008년 8월 스위스 바젤 오페라단 1년짜리 인턴십에 응모했다. 하지만 2개월 만인 10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마르첼로 역으로 데뷔하며 바젤극장 전속 가수가 됐다. 바젤 오페라단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자 한국은 물론 동양 최초 바젤극장 전속 가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라보엠 '마르첼로' 역을 맡은 주인공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바젤 오페라단에서 대타를 급히 구하게 됐다. 이미 이응광은 2007년 국립오페라단에서 마르첼로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낸 경험이 있었다. 오디션에서 지휘자 마우리치오 바르바치니가 감탄하며 "이 친구와 하겠다"고 할 만큼.
공연이 끝나고 현지인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오페라 감독 디트마르 슈바르츠(現 베를린 도이체 오퍼 극장장)는 이응광의 열연에 감동해 그를 끌어안고 연거푸 키스를 퍼부었을 정도다. 결국 얼마 후 전속가수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이응광이 바젤극장 전속 가수로 처음 맡은 주역은 '피가로의 결혼'이다. 이 또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현지 언론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하던 마리오 벤자고도 이응광에게 남다른 인상을 받았을 만큼.
얼마 후 이응광 바리톤은 '바젤신문'과 인터뷰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지휘자 마리오 벤자고가 기자에게 "이 친구 응광은 우리나라 스위스의 보석이야! 보석. 앞으로 엄청난 거장이 될 거니 정말 잘 실어줘요"라고 말했다. 벤자고가 했던 '스위스의 보석'이란 말이 이후 이응광의 닉네임이 됐다.
그러나 당일 '바젤신문' 기자는 이응광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스위스의 보석'이란 표현을 헤드로 뽑지 않고 "양파밭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란 타이틀로 신문에 게재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성악을 공부한 코리안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됐다는 '인생역전'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응광은 바젤극장에서 8년간 활동하며 푸치니 '나비부인'의 샤플레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피가로, 베르디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차이콥스키 '오네긴'의 오네긴,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등 많은 작품의 메인 캐릭터를 맡아 열연했다. 좀 더 인생의 연륜이 쌓여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배역을 20대 이응광에게 맡겼을 만큼 바젤극장 오페라 감독 디트마르 슈바르츠의 사랑과 믿음이 남달랐던 것.
디트마르 슈바르츠는 이응광에게 1년에 오페라 작품을 2~3번 정도만 출연하고 나머지는 다른 극장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배려해 줄 정도였다.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내는 소리와 음악을 사랑하고 높게 평가한 디트마르 슈바르츠는 "이응광의 이런 보석 같은 소리는 잘 보호해줘야 한다"며 무한 신뢰와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디트마르 슈바르츠 감독은 베를린 극장장으로 가면서도 바젤 극장장에게 "응광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해줘야 하고 보수도 지금 수준보다 더 높게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바젤 극장장은 이 당부를 따랐고 이응광은 전과 같은 작품 활동 및 단원중 가장 나이가 어렸음에도 임금도 제일 높게 받았다.
이응광 바리톤은 바젤극장 시절 자기 최고의 명연으로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역을 꼽았다.
"공연이 끝나고 현지 언론에서 호평이 쏟아졌지만, 그중에서도 '바젤 신문'에서 '이 사람의 소리를 한번 들으면 거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란 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제일 영광으로 생각하는 평론일 만큼."
"이외에 차이콥스키 '오네긴'도 꼽고 싶어요. 정신병자 같은 연출력을 요하는, 소리와 연기가 최고로 구현돼야 하는 어려운 작품이라 개인적인 몰입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흔히들 피가로의 결혼' 베스트로 브라이언 터펠을 꼽곤 합니다. 정말 능숙한 성악가로 소리도 기름지고. 또한, '가면무도회' 레나토 하면 레오 누치가 먼저 떠오르고 피에로 카푸칠리 등 다른 성악가들이 연상되죠. 이탈리아 오페라를 할 땐 이처럼 레오 누치나 피에로 카푸칠리 같은 대가들을 들으며 벨칸토 연습을 많이 했고 러시아 오페라는 드미트리 호보로스톱스키처럼 아주 세련된 러시안 오페라를 하는 사람의 노래를 들었어요. '피가로의 결혼'은 캐릭터에 걸맞게 능글능글하게 열연하는 브라이언 터펠 음반을 많이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물론 그 외 많은 성악가를 들으며 분석‧참조했습니다."
스위스 바젤 오페라단 활동 당시 김호중과의 첫 만남도 현재까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바젤에서 헤어진 이후에도 김호중은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이응광에게 꾸준히 안부 문자를 보낼 만큼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다. 김호중은 공익요원 복무 때도 일을 마치고 이응광 오피스텔에 자주 왔을 만큼 둘은 긴밀한 관계를 계속해 왔다.
"호중인 여전히 순수하고 예전 모습 그대로입니다.…김호중은 노래할 때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마스케라' 즉 비강공명을 너무 잘 활용합니다. 따라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으리라 봐요."
"김호중은 현재 그 어떤 성악가들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죠. 지금 당장 오페라계로 와도 얼마든지 좋은 오페라 가수로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호중이는 트로트도 잘하고 일반 가요도 잘하지만, 오페라를 할 때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 가장 빛이 나고 가장 호중이다운 모습과 에너지가 나오는 게 바로 클래식/성악이기 때문입니다."
김호중의 탁월한 발성/가창력에 대해선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 코너에서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한편, 이응광은 몇 년 전 출간된 김호중 자서전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인터뷰 중에 지적해 줬다. 한국에서 금난새 지휘의 공연에서 둘이 만나고 이후 김호중이 스위스로 갔을 때 재워 주고 등등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씌어졌는데, 전체적으로 일어난 순서가 잘못 기록돼 있다는 것. 이응광이 김호중을 언제 어디에서 처음 만나 남다른 선후배의 정을 쌓았는지 스위스에서 함께 보낸 10일간의 휴먼 스토리와 비하인드, 그리고 그가 김호중을 성악가로서 분석한 남다른 (놀라운) 특장점 등은 오는 10월 '조성진의 가창신공'이 아닌 다른 지면을 통해 많은 분량으로 자세히 공개될 예정이다.
"'세빌리아(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피가로 역은 나만의 소리에 가장 잘 맞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가볍고 눈부신(브릴리언트), 바리톤으로서 고음역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죠. 차이콥스키 '오네긴'도 감정적 희열을 느끼는 작품입니다."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내 성악가로 고성현(바리톤)과 연광철(베이스)을 꼽았다.
"고교 때 고성현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충격받았어요. 기존의 성악들과는 또 다른 '어나더 레벨'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많이 보고 있지만 고성현 선생님은 여전히 대단한 소리를 가진 분이란 걸 느낍니다. 소리가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볼륨감의 소유자이며 여전히 굉장히 건강한 소리를 구사하고 있죠. 4명의 성악가가 동시에 지를 만큼 위력적이라고 해 별명이 '네 사람 소리'라고 할 만큼. 이만큼 볼륨을 지닌 성악가는 타고나야 합니다. 연습으로 도달하기엔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이죠."
"2005년 베를린에 처음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광철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어요. 고성현 이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존재라면 연광철은 실질적 사부인 셈이죠. 성악가 커리어로선 국내 최고랄 수 있습니다. 바이로이트, 라스칼라, 메트로폴리탄, 코벤트가든 등등 모든 대형 무대 공연을 섭렵한 어마어마한 분입니다. 연광철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레슨과 인생철학을 반반씩 섞은 가르침, 즉 뮤지션십, 애티튜드를 특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목하고 있는 국내 후배 성악가
"먼저, 2023 퀸엘리자베스 우승자 김태한입니다. 볼륨이 엄청나게 크거나 고음이 화려하거나 등 기교적으로 크게 돋보이진 않아요. 반면 너무나도 아카데믹하고 무리하지 않게 아름다운 거 위주로 레퍼토리를 잘 짰다고 봅니다. 김태한보다 음량이 더 크고 더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는 출전자도 있었겠지만, 그가 우승한 이유는, 자신만의 음악과 무리하지 않은 레퍼토리,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 아름다운 음악으로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의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질 수 있었던 거로 봅니다."
"소프라노 박혜상은 노래할 때 동양인답지 않게 표현력이 탁월합니다. 바리톤 김기훈은 남다른 성량과 굉장히 노련한 성악가죠. 어찌 보면 고성현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괴물 같은 성악가 출현이라고 평가하고 싶어요."
콩쿠르에서 최상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팁
"지난 7월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콩쿠르 출전자가 제가 묵는 호텔 앞까지 찾아와 조언을 듣고 싶어 했어요. 그들에게 본인의 목소리(자기만의 색깔)로 노래하라, 본인의 목소리에 맞는 레퍼토리를 해라, 남을 흉내 내지 마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또한 실력이다 등 크게 4가지를 말해줬습니다. 이 네 가지만 잘 갖춘다면 어떠한 콩쿠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동양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표현력이에요. 몸짓 등 음악에 맞지 않게 어색하게 노래한다는 거죠. 소리에만 집착하니까. 현지 심사위원들이 동양인들에게 '이모션'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 이유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빼어난 소리를 구사하더라도 자기만의 감성과 스토리가 없으며 안됩니다. 결국은 감동하는 데에서 높은 점수가 나오는 거니까요. 이번에도 세계적인 콩쿠르 입상자들을 보면 소리가 크고 드라마틱한 노래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목소리에 맞는 레퍼토리를 선정해 무리 없이 노래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죠."
이응광 바리톤은 지난 1월 '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임기는 2년. 아티스트(성악) 활동이나 하면 되지 왜 기관장을? 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타고난 재능, 그의 주변엔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했다."는 문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탁월한 음악적 재능,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탄탄한 글로벌 인맥을 해당 지역(이천)에서 문화예술 인프라로 이뤄낼 적임자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이응광이 되기까지 아낌없는 지지를 해준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보답"의 의미도 크다. 이젠 자신이 주변에 적극 이바지할 때라는.
성악가 겸 이천문화재단 이응광 대표는 재임 기간 꼭 이뤄보고 싶은 것 중 하나로 '국제음악제'를 꼽았다. 이를 위해 그는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이천국제음악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는 프리(시범) 형태로 선보이고 내년부터 정식 1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천은 국제도자기 페스티벌, 국제 조각 심포지움 등 예술 관련 여러 국제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다. 여기에 음악을 더해 이천을 더욱 활기찬 세계적인 음악의 명소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좀 더 다양한 공감대를 위해 클래식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이천국제음악제'는 첫날 19일엔 60인조 오케스트라의 교향곡과 협주곡의 밤을 테마로 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등 익히 잘 알려진 클래식 명곡들이 이천시에 울려 퍼질 예정이다. 20일엔 오페라 갈라 콘서트, 21일은 아스토르 피아졸라 재단 공식 퀸텟 내한공연, 그리고 마지막 날인 22일은 '재즈 나이트'로, 인순이 등 여러 대중음악 가수가 출연해 그 열기를 더해줄 예정이다.
이들이 받는 통상적인 개런티에 맞춘다면 지자체 문화재단의 예산으론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이응광의 인맥 '프렌드십'에 의존해 출연 라인업을 완성했다. 올해는 '지인 찬스'를 통한 최소 경비로 운영하지만 내년엔 제대로 된 예산을 세워 진행할 예정이라고. 물론 그의 이러한 포부와 진행 전반엔 김경희 이천시장의 전폭적 지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올해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잔도나이 콩쿠르'에 이응광 특별상도 신설됐다. 리카르도 잔도나이 콩쿠르 심사위원 및 페스티벌 연주자로 함께 하는 이응광이 출연료로 받은 4000유로 전액을 기증했고, 협회 측은 이를 바탕으로 '이응광 특별상'을 제정해 '이천아트홀'과 '이천문화재단' 부문 각 2000유로의 상금을 수여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 유수의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이천'이란 도시명을 딴 상이 제정되는 건 최초의 일이다.
이천시와 SK하이닉스가 함께 하는 다양한 음악예술 행사도 기획 중이다. 이미 '이천시가 SK하이닉스를 응원합니다'란 타이틀로 '레미제라블', '모차르트' 뮤지컬 등 갈라콘서트 형태로 공연을 해 뜨거운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
"SK하이닉스 공장 내부에 공연이 가능한 홀이 3개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는 10월 '이천국제음악제'를 위해 내한하는 해외 음악가 중 일부를 이곳에서 공연하게 하는 무대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천문화재단 최성우 공연기획 팀장의 공이 컸습니다."
지난 8월 유럽 출장에선 많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귀국했다.
'마리오 란자 페스티벌' 기간 중인 8월 16일(현지 시각) 무대에 올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르멘', '리골레토' 등 여러 작품을 노래했다. 이에 앞서 이응광 대표는 벨기에 '소로다 재단'과 이천문화재단 간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의 물꼬를 텄다. 소로다 재단과 한국의 문화재단 제휴는 국내 최초다.
마리오 란자 재단과도 다양한 분야 업무 제휴가 성사됐다. '마리오 란자 페스티벌'에 K클래식 무대를 만들고 '이천국제음악제'엔 마리오 란자 현지 음악가들이 출연하며, 벨기에는 이천문화재단을 위해 성당을 개조해 만든 '아뮤즈홀'에서 내년 3월경 이천에 있는 콘텐츠를 가져와 코리안나잇을 해보자는 제안까지.
이응광 대표는 이천문화재단으로 출근과 동시에 내부부터 '틀에 박힌' 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꿨다. 지방 단체‧관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소위 '소파'부터 치웠고 언제나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목적으로 대표이사실도 개방했다. 그 외 많은 벽(통념)을 허무는 중이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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