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아벨 콰르텟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10년 이어갈 것” [인터뷰]
군대, 결혼, 출산, 멤버 교체 딛고
서로 닮아가고 배워가는 네 사람
10년 차에 낸 첫 앨범은 하이든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으면서도, 굉장히 치열했다”는 조형준(첼로)의 이야기를 듣던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으로 처음 만나, 음악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됐다. MBTI(성격유형검사) ‘상극’ 유형의 대명사인 ‘ST’(현실적)와 ‘NF’(열정적)는 서로를 조금씩 닮아갔다.
“처음 만난 첫해가 가장 곤란하고 혼란스러웠어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박수현(바이올린)은 이렇게 떠올렸다. 자신을 “저 세상 NF”라고 말하는 박수현이 멤버들과 음악을 공유하는 과정은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이 부분은 사과처럼 하자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과’가 뭐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형적인 ‘ST’라는 윤은솔은 박수현의 화법에 매순간 물음표를 그렸다.
“한국은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문화잖아요. 연습을 할 때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고, 테크닉을 공유해야 하는데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유럽식의 표현을 하곤 했어요. (웃음)” (박수현)
그 시간을 지나, 아벨 콰르텟의 지금은 서로를 배워간다. “아기가 엄마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처럼”(박수현) 서로의 장점을 익히고, 말투를 닮아간다. 윤은솔은 “이제 ‘NF’ 유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2013년 처음 만나 몇 번의 멤버 교체를 겪었다. 그리곤 어느덧 10주년을 맞았다. 원년 멤버 조형준(36), 윤은솔(36)과 2016년부터 함께 한 박수현(34), 올 1월 합류한 비올라 박하문(25)은 아벨의 ‘새로운 10년’을 그려가고 있다. 조형준과 박수현은 9년차 부부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악기가 만들어내는 결속력에 영감을 받아 ‘실내악의 꿈’을 키웠다”는 조형준도, “실내악을 공부하며 참맛을 알게 된” 박수현도, “동경만 해오던 꿈의 단체”였다던 박하문에게도 지금의 10년은 유독 특별하게 적힌다.
“서로를 닮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들이 있었기에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박수현)
최근 서울 강남구 포니정홀에서 만난 아벨 콰르텟은 “원대한 목표를 둔 출발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오늘이 감개무량하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아벨 콰르텟의 시간 안엔 무수한 이야기가 쌓였다. 학생 시절 처음 만나, 창단 이듬해부터 일을 냈다. 2014년 독일 아우구스트 에버딘 실내악 콩쿠르에서 2위, 2015년 오스트리아 하이든 실내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현악사중주단 최초의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프랑스 리옹 실내악 콩쿠르 2위, 제네바 음악 콩쿠르 3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오랜 기간 유지되기 어려운 실내악단에게 콩쿠르에서의 성취는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커리어’로 최정점을 쌓아가던 결성 4~5년차, 아벨 콰르텟에겐 “늘 염두하고 있던 첫 위기”가 찾아왔다. 조형준의 군입대였다. 박수현에겐 입단 4~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갑작스러운 2년의 공백이 올 때 우리 콰르텟은 어떻게 해야 할까, 딜레마가 너무도 컸어요. 지금까지 해온게 있는데 다 뒤로 하고 새로운 직종을 찾아야 하나, 그런 고민도 하던 때였어요.” (조형준)
그 무렵 독일 굴지의 클래식 기획사에서 아벨 콰르텟에게 ‘러브콜’도 보냈다. 입대는 예정돼 있었으나, 단칼에 거절하면 속상한 마음이 들 것 같아 ‘미래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미팅도 가졌다. “우리와 함께 하자”는 그들에게 군입대 이야기를 하자, “행운을 빈다”며 멤버들을 응원했다고 한다.
유수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린 악단일지라도, 긴 공백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도리어 해외 대학의 교수들이 이들의 앞길을 함께 안타까워했다. 닥친 일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조형준은 “최대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둬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박수현은 학교로 돌아왔고, 윤은솔은 첫 아이를 낳았다. 멤버들은 “많은 일을 지나왔지만 지금도 함께 하며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내악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10년의 시간을 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멤버들은 “콩쿠르에서의 성과”와 “소속사의 헌신과 응원”은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고 했다. 아벨 콰르텟은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우승 이후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다. 이샘 목 프로덕션 대표는 “현악사중주 팀을 바라볼 때 그 팀만의 캐릭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데, 아벨 콰르텟만의 귀족적인 우아함과 따뜻한 음악에 매료됐다”며 “이 팀의 존재로 인해 우리 현악사중주 음악에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생길 것이라는 상상만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차세대 콰르텟을 일찌감치 알아본 동반자와 함께 쌓은 10년은 네 남녀의 ‘결혼 생활’과도 같다. 실내악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며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조형준은 “마냥 좋아 인간적인 교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사람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풋’ 대비 ‘아웃풋’은 너무도 팍팍하다지만, 이미 알게 된 그 ‘맛’에서 헤어날 수도 없다.
박수현은 “세이지 오자와는 ‘작곡가들이 자신의 최고의 역량을 쏟은 곡이 현악 사중주’라고 했다”며 작곡가들이 성숙기에 다다랐을 때 나온 가장 가치있는 위대한 곡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크다“고 했다.
Z세대 막내의 영입으로 아벨 콰르텟의 평균 연령은 뚝 떨어졌다. 윤은솔은 “새로운 멤버들 받아들일 때 최우선으로 둔 것은 실력이었지만, 콰르텟은 실력과 함께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개성의 멤버들과 어우러져 조화를 낼 수 있는 마음가짐, 지금 함께 할 준비가 돼있는 음악가로의 ‘타이밍’도 관건이다. 박하문이 거기에 적합한 멤버였다. 그는 “이미 완성된 팀에 들어오는 거라 더 행복하다”며 “형, 누나들과 추억을 공유할 때 약간의 격차를 느끼지만 잘 맞는다”며 웃었다.
아벨 콰르텟엔 암묵적 ‘룰’이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제1바이올린을 번갈아 맡는다. 작품의 특성과 저마다의 개성, 취향, 스타일에 맞춰 정하는 방식이다. 연주곡을 정하기 위해 첼로와 비올라 파트에서 제안을 해도 주선율을 연주하는 제1바이올린의 의견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악4중주단의 속성이다. 박수현은 “이 안에서도 나름 상사가 있다”며 웃었다.
10주년을 맞으며 한 챕터를 닫고, 새로운 챕터를 열듯이 아벨 콰르텟은 이달 초에는 첫 정식 음반 ‘인 노미네 도미니(In nomine Domini)’를 냈다. 모두의 마음이 모아진 음반이다. 윤은솔은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한 음반에 담기 보다, 한 사람의 곡을 충실히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이든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인 최초의 현악사중주단이라는 타이틀답게 ‘수미쌍관’이 이뤄졌다. 앨범엔 하이든이 남긴 현악사중주 70여곡 중 4곡이 담겼다. “현악사중주의 기본”이자, “가장 완벽한 현악사중주”이기에 10주년 아벨 콰르텟에겐 더 없는 선택이었다.
윤은솔은 “이 앨범을 통해 아벨 콰르텟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가만히 형, 누나의 이야기를 듣던 박하문은 “우리 팀은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퍼스트와 세컨드를 번갈아 하는데 두 사람의 색깔이 참 다르다”며 “(박)수현 누나가 만드는 하이든은 화사한 나비같은 매력이고, (윤)은솔 누나의 하이든은 단단한 기둥이 잡혀있다”고 했다. 막내의 이야기를 듣던 박수현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기둥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같은 매력이 바로 아벨 콰르텟이에요.” (박수현)
새로운 10년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아벨 콰르텟은 조금 더 밝은 미래를 그린다. 당장 오는 17일부턴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20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다음 달 5일 서울 포니정홀에서 리사이틀을 이어간다.
“콰르텟마다 저마다의 이미지가 있어요. 아벨 콰르텟은 밝고 따뜻한 기운과 음악의 팀이에요. 좋은 음악을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매일매일 새롭게 다지고 있어요. 당연한 것은 없기에 10년 후, 20년 후를 구체적으로 그리기 보다 우리의 마음을 늘 새롭게 채워가면 내년도, 10년 뒤에도 아벨 콰르텟이 존재하리라 생각해요.” (아벨 콰르텟)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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