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 터뜨려 5월 넋 위로한다고?… 광주 금남로 '화약 콘서트' 견강부회 논란
스페인 불꽃 행사 마스클레타 재연
"내전 희생자 기억 의식" 해석에
"근거 없고 5·18 결부 과도" 비판
1980년 당시 탱크 등 전시 두고
광주시 의견 수렴 나선 것과 대조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를 기리는 전통 의식이다."
광주광역시 동구는 13일 제20회 추억의 충장 축제 기간(10월 5~9일) 금남로에서 선보이겠다는 '마스클레타(masclet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이름도 생소한 마스클레타는 매년 3월 스페인 발렌시아시(市)에서 열리는 봄맞이 불꽃 축제(라스 파야스·Las Fallas)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폭죽(화약) 콘서트'에 가깝다. 실제 발렌시아 불꽃 축제 기간 매일 오후 2시 발렌시아시청 광장에선 폭죽과 불꽃 전문가들이 5분여간 폭죽을 터뜨리면서 강렬한 폭발음을 리드미컬하게 연출한다. 동구는 이런 불꽃 향연을 내달 7일과 8일 이틀간 매일 오후 2시 금남로 한복판에서 광주만의 색깔로 5분간 재연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미를 덧붙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성이 울렸던 아픈 역사이자, 잊고 싶은 기억을 담은 금남로에서 그날의 총성을 축제의 환호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광주만의 마스클레타로 5월 영령들을 위로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마스클레타가 스페인 내전 희생자를 기리는 전통 의식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 발렌시아 불꽃 축제의 기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발렌시아 목수들이 겨우내 묵은 옷가지나 나무 등을 태워 없애던 풍습이 불꽃 축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이 1936년부터 3년간 이어졌으니, 이를 발렌시아 불꽃 축제 부대 행사인 마스클레타의 유래로 보는 것도 억지스럽다. 실제 발렌시아 불꽃 축제 관계자들도 마스클레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른다고 한다. 충장 축제 관계자는 "올해 3월 발렌시아 불꽃 축제를 참관하면서 현지 관계자들에게 마스클레타의 유래를 물었더니 그들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동구는 마스클레타를 5·18에 결부했다. 여기엔 "총성이 울렸던 아픈 역사의 기억을 지닌 곳(금남로)에서 후손들이 그 총성 소리를 축제의 소리로 만들며 기억을 지운다"는 뜻이 담겼다고 했다. 광주만의 마스클레타는 1980년 5월 금남로에 담긴 기억을 위로하는 특별한 의식이란 얘기다.
그러나 43년 전 5월 '총칼의 거리'였고, '죽음의 거리', '학살의 거리'였던 금남로에서 총성 같은 폭죽을 터뜨려 그 참상(기억)을 지우겠다는 게 어쩐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5·18이 잊혀야 할 역사인 것이냐", "폭죽 콘서트로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날을 기억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마스클레타가 스페인 내전 희생자를 기리는 의식이란 걸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는 동구 관계자의 헛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턱 막힌다. 이 관계자는 마스클레타와 스페인 내전의 연관성을 뒷받침할 근거도 제시하지도 못했다. 동구가 올해 20년을 맞는 충장 축제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견강부회식 해석으로 5·18을 소환했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광주시가 5·18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탱크, 장갑차, 헬기와 같은 기종의 무기를 전시하는 문제를 놓고 시민 의견 수렴에 나선 것과도 대조된다. 당초 광주시는 "5·18의 상흔을 되새길 역사 교육 등에 활용하겠다"면서 5·18자유공원에 해당 무기들을 전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2차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시민 동의를 구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에 한발 물러선 상태다. 현재 5·18 때 출동했던 기종과 같은 탱크 1대와 장갑차 3대, 헬기 1대는 5·18민주화운동교육관 주차장에 임시 거치돼 있다.
5월 단체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축제라고 해도 5·18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행사라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5·18과 금남로에 폭죽 행사를 끌어다 붙이는 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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