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빚의 우물'에 빠진 날 [視리즈]
심상치 않은 대내 변수들
9월 위기설 불 댕긴 PF 대출
증권사 PF 연체율 평균 15.3%
2분기 적자 기록한 저축은행
금융사 PF 대출 덫에 빠지나
가계부채도 증가세로 돌아서
1900조원 머지않은 가계부채
과도한 빚, 투자·소비 감소 요인
부채, 한국경제 발목 잡을 수도…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7월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줄어든 트리플 감소세가 나타났다. 한국경제를 억누르는 약한 고리도 숱하다. 대표적인 게 줄어들 줄 모르는 가계부채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징후다. 한국경제가 빚의 리스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더스쿠프 視리즈 한국경제 약한 고리 세번째 편이다.
정부가 조심스럽게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것과 달리 시장에선 '위기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위기설에 불을 댕긴 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소상공인 대출 부실 우려다.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2021년 0.37%에서 지난해 1.19%로 치솟았고, 올해 3월 기준 2.01%를 기록하며 시장의 우려를 샀다.
여기에 저축은행의 수익 감소세가 더해지면서 위기설을 키웠다. 저축은행 업계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국내 79개 저축은행은 96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8956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예대금리 축소로 인한 이자수익 감소와 대손충당금 증가가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연체율도 급등했다. 6월 말 기준 총 여신 연체율은 5.33%로 지난해 말 3.41% 대비 1.92%포인트나 치솟았다. 특히 기업대출 연체율이 같은 기간 2.83%에서 5.76%로 두배 이상 상승했다. 9월 말 종료를 앞둔 소상공인 정책자금 관련 대출만기 연장 조치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부진도 위기설을 지폈다.
'설'로 끝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위기설이 제기된다는 건 한국경제의 방향성이 그만큼 불투명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경제는 푹푹 찌는 날씨와 달리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는 부진하기만 하다.
무역수지가 6월부터 흑자로 돌아섰지만 수출 증가세의 영향은 아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들면서 만든 '불황형 흑자'다. 일례로 8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8.4% 감소할 때 수입은 22.8% 줄었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세'도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7% 감소했고, 설비투자는 8.9% 줄었다. 설비투자만 놓고 보면, 2012년 3월(-12.6%) 이후 11년 만에 기록한 최대 감소폭이다. 소비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7월(-4.6%) 다음으로 가장 많이 줄어든 -3.2%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위기설을 부추기는 한국경제의 약한 고리는 무엇이 있을까.
■ 약한 고리➊ PF 대출 연체율 = 시장의 우려를 사는 건 단연 PF 대출 부실 가능성이다.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92조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금융회사 PF 대출 금액은 올해 1분기 131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3년 3개월 만에 42.2%(39조1000억원)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지속됐던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PF 대출붐을 일으킨 것이다.
문제는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터졌다. 부동산 경기가 급속하게 식으면서 연체율이 가파르게 올랐다. 2020년 0.55%였던 PF 대출 연체율은 올해 3월 2.01%로 4배 가까이 뛰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 심각하다.
PF 대출 잔액이 5조3000억원인 국내 증권회사의 PF 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3.37%에서 15.38%로 12.01%포인트 치솟았다. 전체 평균이 15%대라는 걸 감안하면 증권사별로는 연체율이 20%를 넘는 곳도 있다는 의미다. 중소형 증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PF 대출 잔액이 각각 43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보험사(0.66%)와 시중은행(0%)의 연체율이 낮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전문가들이 PF 대출 부실이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터진 새마을금고 유동성 위기설에서 경험했듯이 불안한 시기엔 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참고: PF 대출을 둘러싼 건설사와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는 파트3에서 자세히 다뤘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의 우려를 들어보자. "국내 경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PF 대출이다. 부채율이 높은 소형 증권사와 상호금융에선 문제가 터질 수 있다. 위기설이 나도는 시기에 금융회사의 부실 이슈가 터지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 있다."
■ 약한 고리➋ 가계부채 = 가계부채도 고민거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 각각 3조6000억원, 14조3000억원 감소했지만 2분기 9조5000억원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계부채 1900조원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거다.
가계부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한국경제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금리 시기 늘어난 부채가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439만8000명이었던 다중채무자 수는 지난해 말 447만4000명으로 7만6000명 증가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422만2000명과 비교하면 3년 사이 25만2000명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30대 이하 연령대의 다중채무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135만4000명이었던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수는 지난해 141만9000명으로 6만5000명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늘어난 다중채무자 수(7만6000명)의 85.5%를 차지했다. 취업과 결혼, 출산을 준비해야 하는 30대 이하 청년층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징조가 아니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한국경제 의 가장 큰 우려는 빚"이라며 말을 이었다.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 상환 유예 조치에 나섰지만 차주借主의 부담이 줄어든 건 아니다. 경기가 악화하면서 빚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고, 대출금리도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채 압박이 높아지면 소비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가계도 마찬가지다. 가계부채 리스크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침체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김상봉 교수는 가계부채를 줄임과 동시에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잃어버린 20년을 거친 일본과 경제침체에서 회복한 미국의 차이는 침체에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있다"며 "무작정 돈을 푼 일본은 여전히 저성장에 갇혀 있고, 구조조정 등 산업구조를 개선한 미국은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의 돈이 부동산이나 자영업이 아닌 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곳곳에서 떠오를 위기설을 잠재우고, 경기를 반등시키기 위한 정부의 똑똑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단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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