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국뽕이라고? ‘궤가 다른’ 국뽕”
광복 이후 첫 태극 마크 출전 실화
부정적 반응에 “역사적 사실일 뿐”
4월 셋째주 월요일은 미국의 ‘애국자의날’이다. 매년 이날이 돌아오면 보스턴에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지금으로부터 76년 전인 1947년, 세계 유명 마라토너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피니시라인을 통과한 무명의 선수가 있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그의 이름은 서윤복. 국제대회 출전이 처음인 그의 옆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감독,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코치가 있었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이룬 쾌거였다.
세 마라토너의 실화를 다룬 영화 <1947 보스톤>이 추석 연휴를 앞둔 27일 개봉한다.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강제규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관객을 만난 그를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라토너 세 분의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영광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인생을 따로 영화화할 수 있을 정도지만, 세 분을 함께 담을 수 있었던 것은 1947년 보스턴(대회)이 있었던 덕분이죠.”
영화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단 손기정(하정우)이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손기정은 우승 기념으로 받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고,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육상을 그만둬야 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재개되자 손기정과 남승룡(배성우)은 ‘제2의 손기정’인 신예 서윤복(임시완)을 대회에 출전시키고자 분투한다.
<1947 보스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 감독이 시나리오를 받은 것이 2017년, 5개월간의 촬영이 끝난 것이 2020년 1월이다.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고, 같은 해 12월 주연인 배성우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개봉은 또 한 번 미뤄졌다. 감독에겐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영화를 다 만들어놓고 이렇게 오래 개봉을 못한 것은 처음이거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값진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저렇게 편집해보고, 블라인드 시사도 많이 하고요. 작품의 내실을 다질 수 있었죠.”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세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세 마라토너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유가족 취재와 여러 자료 조사를 통해 실제 성격과 외모를 상세히 파악했다. 강 감독은 “배우들이 캐스팅됐을 때 유가족분들이 다 좋아했다”며 “특히 손기정재단에서는 ‘우리 할아버지랑 닮았다’며 기뻐해주셨다”고 말했다.
영화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은 특히 공을 기울인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촬영은 미국이 아닌 호주에서 했는데, 촬영 기간 호주 남동부에 큰 산불이 났다. 그해 가을부터 반년간 한국 면적의 2.4배(2400만㏊)를 태운 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동물 타는 냄새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다닐 수 없을 정도였어요. 청정 호주의 공기나 자연광이 화면에 담기길 원했지만 그런 기대를 할 상황이 아니었죠. 촬영 내내 마음속으로 ‘(촬영지 반대쪽인) 동풍아 불어라’ 기도하며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촬영 과정만큼이나 실제 인물들이 보스턴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과정도 수월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들의 입국에 보증인과 2만달러의 보증금을 요구했다. 십시일반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건너간 보스턴에서는 정식 독립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조기가 붙은 유니폼을 지급받았다. 이들은 태극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뛰기 위해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다루는 만큼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국뽕’이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강 감독 역시 국뽕과 신파 코드에 대한 관객의 부정적 반응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없는 사실을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면 국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굳이 국뽕이라고 하신다면 ‘궤가 다른 국뽕’이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1947 보스톤>이 관객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는 게 각박하고 힘들잖아요. 그런데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깝게는 엄마 아빠의 삶, 멀게는 잘 몰랐던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대면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 감춰진 이야기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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