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 비판하고 탈퇴한 '이들'을 지운 언론

박재령 기자 2023. 9. 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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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보고서" 반발해 사퇴한 2인 위원 "언론 보도 영향 미쳐, 악의적 기사 많았다"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 책임 흐릿한 정부 보도자료 일방 전달"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내 갈등으로 18가지 개혁 시나리오에 '소득대체율 인상'이 빠진 가운데 언론이 국민연금 공론장 역할을 제대로 했냐는 책임 문제가 나온다. 노후 보장 등 국민연금의 사회적 역할은 다루지 않은 채 기금 고갈 여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답을 언론이 미리 정해버렸다는 지적이다. '반쪽'짜리 보고서라며 위원직을 사퇴한 2인은 위원회 활동 기간 일방적인 언론의 편파성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일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가 열린 코엑스에서 재정계산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 1일 총 18가지 개혁 시나리오를 내놨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2%, 15%, 18%씩 올리는 안과 연령수급개시연령을 2048년까지 68세로 늦추는 안, 기금운용수익률을 0.5%p, 1%p씩 높이는 안을 조합했다. 모두 '더 내고 늦게 받는' 안으로,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는 '재정 안정'에 초점이 맞아 있다. 보건복지부는 10월 말까지 이를 토대로 국회에 연금개혁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더 받는' 안은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았다.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로 수급자가 향후 받는 연금액 수준을 뜻한다.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쪽은 국가가 연금에 대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서 연금의 소득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 지난달 31일 남찬섭 동아대 교수, 주은선 경기대 교수가 발표한 사퇴 성명.

하지만 위원회 내에서 소득대체율 유지안을 '다수'로, 인상안을 '소수'로 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공청회 전날) 위원직을 사퇴했다. 남찬섭 교수는 위원회 구성을 놓고도 “유난히 재정중심론 입장을 가진 위원들이 많이 위촉됐다”며 “총 15명에서 위원장, 정부위원 등을 제외한 9명 중 1명은 비교적 중립적 입장이고 6명은 재정중심론 입장이며 2명만 연금의 노후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이라고 했다.

사퇴한 2명의 위원들은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언론의 '기금 고갈' 프레임으로 기금 적립 여부만 따질 뿐 노후보장 등 연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대중에 닿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재정 부담을 산정하는 방식이나 재정 기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를 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들어진 자료를 언론이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기금 고갈이 '재정 펑크'를 의미하는 게 아닌데도 기금 고갈 시기나, 보험료 인상폭에만 언론 초점이 맞아 있다”며 “국민연금이 어느 정도의 노후 보장을 하는 게 적합한지, 현재 국민연금의 노후보장이 충분한지 등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지금 (노후보장이) 불충분한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더 불충분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참여연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기금 고갈되면 다 죽는다', '기금을 쌓아 놓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식의 프레임이다. 이런 프레임은 다른 나라를 포함해 공적연금이 실제 작동하는 방식하고는 다른 방식을 전제해놓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공적연금은 저축이 아니다. 민간에서 파는 적립식 상품처럼 내가 매달 내는 걸 원금으로 운용해서 들어오는 이자 수입을 주는 게 아니다. 공적연금은 기금 적립 여부보다 퇴직하는 인구를 어떻게 고용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공청회 이후 보도도 같은 흐름이다. 두 위원이 사퇴했다는 소식은 단신에 그쳤고, 소득대체율 인상은 불가능하다고 답이 정해졌다. 동아일보는 4일 <국민연금 받는돈 10%P 늘리면, 미래세대 급여 37% '보험료 폭탄'> 기사를 내고 소득대체율이 인상되면 세대 부담이 늘어난다고 비판했다. 사설에선 “연금개혁은 기금 고갈을 막고 다음 세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당장 국민의 반대가 무섭다고 미래 세대에 보험료 폭탄을 떠넘기는 건 개혁이 아니다”라고 했다.

▲ 4일자 동아일보 14면.
▲ 4일자 한국경제 6면 기사.

중앙일보는 4일 사설에서 “소득대체율 상향을 두고 잡음이 일었다. 그러나 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를 12,15,18% 넘게 부담해야 한다. 또 대체율을 올려도 연금 상승 효과가 크지 않고, 그마저 한참 후에 나타나 현 세대 노인빈곤 해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려 기초연금 저소득층 집중 등의 대안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더 내고 더 받는 안'은 연금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눈속임일 뿐”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놓는 등 공적연금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정부 기조대로 나오는 보도자료를 언론이 단순 처리하는 관행이 일방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은선 교수는 “정부에서 내놓는 자료 자체가 일방적이다. 2000년대 초부터 국민연금이란 사회적 제도가 낯설어 국민연금을 저축처럼 생각하는 논리가 생겼다”며 “일차적으로 기자들은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쓸테니 정부가 어떤 프레임의 자료를 내놓느냐가 결정적이다. 연금에 대한 국가 책임은 덜 강조되면서 순전히 가입자들이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게 됐다. 정해진 프레임 밖의 생각은 아예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지난 1월 30일, 31일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일부 언론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참여연대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지난 1월 나온 중앙일보 <“소득대체율 인상? 젊은이들 무슨 죄 졌나”…이상해진 연금개혁> 기사에 “노골적으로 한쪽을 비방하고 한쪽을 편들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 중 이렇게 지독하게 편파성을 띤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식의 기사가 계속되면 중앙일보와 재벌보험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남찬섭 교수는 “국회 특위에서 소득대체율 인상 얘기가 조금 나오자 바로 '미래 세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라는 제목이 나오더라. 다른 언론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몇 만을 돌파했다고 공단이 보도자료를 내니 '기금이 고갈되게 생겼는데 그걸 자랑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런 것들은 악의에 찬 기사들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은선 교수는 “복잡한 얘기를 너무 단순하게 왜곡시킨다. 위협하고 몰아가는 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불신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7월 21~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만 18~39세는 3명 중 2명(68%)이, 40대는 57%가 수급연령이 되어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연금 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냈다. 국민연금이 현재 젊은 층과 미래 세대에 불리한 제도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응답자 61%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만 18~39세 청년은 대다수(79%)가 이에 공감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 사회공공연구원은 지난 1일 국민연금공단 노동자 80%(2620명)가 소득대체율 상승이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밝힌 내부 설문조사를 내놨다. 사진=사회공공연구원

한편, 사회공공연구원은 지난 1일 국민연금공단 노동자 80%(2620명)가 소득대체율 상승이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밝힌 내부 설문조사를 내놨다. 지난 6월28일 전체 조합원 수 63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보험료 인상 역시 소득대체율 상향과 저임금·저소득 지원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50.2%(1645명)였다. 소득대체율 상향은 반대하면서 보험료율은 5%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견은 극소수(0.9%)에 불과했다.

국민연금 공론장에서 빠진 맥락은 무엇일까.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공적연금에 기여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최하위라는 건 잘 부각되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1 OECD'(Pensions at a Glance 2021)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정부가 공적연금에 투입한 재정은 전체 정부 지출의 9.4%다. 전체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6.2%) 다음으로 낮다. 지난해 9월 OECD는 한국에 소득 보장을 강화하라고 권고했다.

▲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 연합뉴스

남찬섭 교수는 “2060년대 이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45%가 넘어간다. 이들에게 국가가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공적연금은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득이 될 것”이라며 “언론은 국민연금 지출이 세대간 불공평성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인인구 비중을 생각하지 않고 지출 비중만 단순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한 세대가 만들어내는 부에는 근로소득이 많지만 그 외 자산도 있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명백해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몽땅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기금이 고갈되면 '월급 35%'를 보험료로 낸다고 과장한다”고 지적했다.

주은선 교수는 “노인빈곤은 기초연금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국민연금도 노후 보장, 빈곤 예방 관련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대중에 충분히 설명이 됐나. 너무 기본적인 얘기인데 아예 형성이 안 됐다”며 “재정 확충 노력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건 맞지만 사용자에 대한 책임도 이제 말해야 한다. 근로자와 '50대 50'으로 내는 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가의 책임도 너무 미미하다. 관리 운영비도 안 되고 있으니까 이 부분을 어떻게 늘릴 건지 다변화된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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