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된다” 접은 전구체가 효자로…IPO 앞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정련 공정 독자 개발해 가격 경쟁력 확보, 상장 후 공장 증설해 2025년 세계 1위 목표
글로벌 양극재 제조사 3곳과 연내 공급 계약하고 매출 구조 다변화 예정
올해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군 에코프로그룹의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2차전지의 양극재에 들어가는 전구체를 생산해 에코프로비엠에 공급하는 회사다. 기업 가치는 3조원대로 올해 IPO 최대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훈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대표를 만나 회사의 기술력과 상장 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전구체는 2차전지의 4대 구성 요소(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에 비해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구체는 양극재가 되기 직전 단계의 물질입니다. 코발트·니켈·망간 또는 알루미늄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정제한 것인데, 양극재 원가에서 전구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달합니다. 전구체 합성 기술이 양극재의 가격과 품질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죠.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한국 최초로 니켈 비율이 높은 하이니켈용 전구체를 개발해 양산에 성공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한국 기업 중 전구체 분야에서 앞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2017년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전신인 에코프로GEM이 설립되기 10여 년 전부터 에코프로는 전구체 사업을 했습니다. 초창기 나노 사이즈의 인조 활성탄으로 냄새를 잡는 탈취제를 생산했는데 이 기술을 활용해 2004년 정부 국책 과제였던 초고용량 리튬 이온 전지 개발 컨소시엄에 들어간 것이 전구체 사업의 시초가 됐습니다. 전구체는 3~15마이크로미터 사이즈여서 이보다 작은 물질을 다뤄온 에코프로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컨소시엄에서 에코프로는 전구체를 담당하고 제일모직이 양극활 물질, 삼성SDI가 배터리셀을 개발했어요. 이후 2007년 제일모직에서 양극 활물질 사업과 기술을 양수받아 사업을 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구체 개발과 관련해 한국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에코프로는 전구체 사업을 접고 양극재에 집중했어요.
“전구체 사업은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전구체를 전량 수입하고 있는데 LG화학이 일본 다나카케미칼에서 공급받던 전구체를 에코프로가 우리 기술로 대체해 보겠다고 제안해 2009년 월 100톤씩 납품했습니다. 이후 LG화학이 추가 주문하겠다고 해서 200톤짜리를 더 증설해 300톤 규모로 확장했죠. 그런데 증설하고 나니 다나카가 전구체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치킨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전구체를 kg당 7달러에 공급했는데 경쟁사는 절반 수준인 3달러 후반대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직접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였습니다. 결국 2012년 말 전구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하이니켈계 양극 소재(NCA) 사업에 집중하면서 회사가 턴어라운드하는 계기가 됐죠.”
▷2차전지 소재 사업 중에서도 전구체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아 부가 가치가 낮고 수익성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구체가 다른 2차전지 소재보다 개발과 생산이 쉽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한국에서 중국 기업과 합작하지 않고 자체 기술로 하이니켈 전구체를 개발해 양산에 성공한 회사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원광을 확보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원자재 수급이 수월하고 인건비가 낮은 중국 기업들이 전구체 시장을 장악한 이유입니다. 현재 한국의 배터리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전구체의 95% 이상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하려면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야 하는데 일단 가격 측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다 보니 중국산을 수입했던 것이죠.”
▷전구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구체는 양극재 사업에 없어선 안 되는 핵심 소재입니다.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지 않는다면 언제든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한국에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IRA에 따라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한 광물을 일정 비율 사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산 대신 한국에서 생산한 전구체를 써야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전구체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려고 서두르는 겁니다.”
▷ 중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만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요.
“순도가 낮은 원자재에서 고순도 니켈을 뽑아내는 황산화 공정(RMP)을 개발했습니다. 예전엔 니켈 브리켓과 같은 고순도 원재료를 비싸게 매입해 가공하다 보니 가격을 낮추기 어려웠습니다. 현재는 니켈 브리켓의 전 단계의 물질인 저순도 니켈 혼합물(MHP)을 인도네시아에서 20~30% 저렴하게 대량 매입한 후 정련해 가공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정련 공정은 중국 업체들이 주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직접 하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전구체의 부가 가치를 높이는데 RMP 공정이 ‘신의 한 수’가 될 겁니다. 앞으로 MHP만 100% 사용해 자체 RMP 공정과 전구체 제조 공정을 거치면 중국산과 붙어도 가격 측면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산된 전구체가 대부분 에코프로비엠에 공급되고 있어 내부 거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삼성SDI에 전구체를 소량 납품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에코프로비엠이 사용할 물량도 모자란 상황입니다. 내부 거래 비율을 낮추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위해 앞으로 수출과 외부 판매 비율을 전체 매출의 30~40%까지 늘릴 생각입니다. 글로벌 양극재 제조사 3곳과 2025년 납품을 목표로 공급 계약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에코프로비엠도 중국 GEM의 전구체 사용 비율을 늘리는 등 계열사별 공급처를 다변화하려고 합니다.”
▷ 포스코·엘앤에프·LG화학 등도 전구체 국산화를 위해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어느 정도 설비 확장이 가능한가요.
“경북 포항의 전구체 생산 공장인 CPM 1, 2공장에서 현재 연간 5만 톤의 전구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5년 내 23만~24만 톤 규모로 늘려야 고객사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올 하반기 포항에 3, 4공장을 착공해 2025년부터 양산을 시작하고 생산 능력을 현재의 3배 이상인 17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공장 증설에는 약 7000억~8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에도 2027년까지 3만7000톤의 공장을 지어 총 20만7000톤의 생산 규모를 갖출 계획입니다. 설비가 완공되면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하이니켈 전구체 시장에서 글로벌 1위인 일본 스미토모메탈마이닝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1위가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 최근 실적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6652억원, 영업이익은 39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94%, 140% 증가했어요.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을까요.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올해는 실적이 작년만큼 좋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수요가 많아 장기적으로 매출이 꾸준히 늘 수밖에 없어요. 에코프로그룹의 양극재 사업 중심에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있다고 봅니다. 에코프로비엠에 전 단계 물질을 공급하고 리사이클링 회사인 에코프로CNG가 폐배터리에서 뽑아낸 블랙파우더와 금속복합침전물(MCP)을 재사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회사들은 리사이클링 설비가 있어도 전구체 제조 역량이 없어 재활용 물질을 다른 회사에 팔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룹 내에서 소화가 가능합니다. 에코프로머리티얼즈의 상장이 에코프로그룹의 2차전지 양극재 사업의 생태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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