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최종 무대는 한국 [ESG]
[한경ESG] 이슈 브리핑
한국은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으로, 2019년에는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의 4.1%를 담당했다. 소수 대기업이 플라스틱 원료를, 다수 중소기업이 플라스틱 가공품을 생산한다.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의 환경 영향을 고려해 2022년 10월 ‘전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서 더 나아가 플라스틱 순환 경제라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국제 사회 역시 플라스틱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5차 유엔환경총회에서는 정부간협상위원회를 구성해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2024년까지 성안하자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간 다양한 국제 협약이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에 대한 직간접 규제를 포함했지만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목표로 하는 구속력 있는 단일한 국제 협약은 없었다.
플라스틱 오염 논의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환경위원회(CTE), ‘플라스틱 오염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플라스틱 무역에 관한 비공식 대화(IDP)’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WTO는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성안하겠다는 유엔환경총회 결의를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밖에 G7·G20·세계경제포럼(WEF)·세계은행 등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의 해양 유입 감소 등 문제를 중대하게 다루고 있다.
구속력 있는 협약 준비
2022년 11월 28일 제1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가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대면·비대면 방식으로 동시 개최됐다. 1차 회의에서는 플라스틱에 대한 국제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국가와 국가별 자발적 조치가 우선해야 한다는 국가 간 이견이 드러났다. 협약의 골격과 구성 요소에 대한 각국의 개괄적 방침도 확인됐다. 회원국은 협상 진전을 위해 국별 서면 의견서를 제출하고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국이 서면 의견서를 바탕으로 옵션 문서를 작성해 2차 회의 개최 전에 회람하기로 했다.
2차 회의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됨에 따라 지난 5월 2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대면 방식으로 개최됐다. 2차 회의에서는 잠정 적용된 ‘절차 규칙(rules of procedure)’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사 결정 시 만장일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투표를 통해 3분의 2 이상 득표를 합의 조건으로 정하는 규칙이다. 사무국은 1차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37조를 제외하고 절차 규칙과 관련한 재협상이 어렵다는 법률적 해석을 내렸지만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중국·인도 등 일부 국가는 39조에 해당하는 절차 규칙의 투표 조항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한국·미국·세네갈·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국가는 1차 회의에서 잠정 적용하기로 합의한 절차 규칙을 문제 삼으며 협상을 지연시키는 데 우려를 표명했다. 결국 절차 규칙에 대해 회원국 간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해석(interpretative statement)을 남긴 후에야 2개의 분과 회의로 나눠 논의가 이뤄졌다.
분과 회의에서는 협약의 목적, 핵심 의무, 규제 조치, 자발적 접근을 논의하는 그룹과 이행 수단, 이행 조치를 논의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동시에 진행됐다.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에 걸친 악영향에서 인간의 건강과 환경 보호’를 협약 목적으로 삼는 데 대부분의 국가가 공감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시각 차
다만 플라스틱 오염 종식과 관련한 목표 연도 설정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폴리머(고분자) 감축에 대해서도 글로벌 목표 설정을 선호하는 국가와 국가별로 목표를 수립하자는 국가 간 이견이 있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위해 플라스틱, 화학 물질 규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규제 대상과 기준 마련을 위해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세 플라스틱 감축에 대해서는 미세 플라스틱 정의에 대한 과학 기반 마련과 유출원 식별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다수 국가가 플라스틱 폐기물의 안전한 관리‧연구‧혁신, 플라스틱 폐기물 수집, 재활용, 폐기 기술 개발을 지지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에 대해서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적용할 필요가 있고 자발적 조치여야 한다는 주장과 국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됐다. 또 플라스틱 순환 이용, 바이오 플라스틱,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대체재 마련, 플라스틱 유출 방지 조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
기술 이전, 재원 조달, 이행 평가 등 협약의 이행 수단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견해차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기술 이전과 관련해 선진국은 상호 합의된 조건에 따른 기술 이전을 명확하게 규정하기를 원했지만 개도국은 양허적이고 특혜적인 방식을 선호했다. 대부분의 개도국은 재원 조달을 위해 새로운 메커니즘을 설립하자고 했지만 선진국은 새로운 재원 기구 설립보다 지구환경기금(GEF) 등 기존 메커니즘 활용을 지지했다.
한국, 최종 협상회의 개최국으로 선정
이행 평가에서도 선진국은 구속력이 강한 이행 평가 체계를 환영한 반면 개도국은 개별 국가 상황을 고려한 자발적 이행을 선호했다. 또 개도국은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을 포함한 리우 원칙이 협약 원칙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협약,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UNCLOS), 선박으로부터 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MARPOL)이 플라스틱 오염을 다루고 있고 2021년 발효된 바젤협약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교역 통제 대상에 포함해 기존 다자 환경 협약과 새롭게 마련될 유엔 플라스틱 협약이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부분 없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차 회의에서 한국은 모든 회원국의 합의로 마지막 협상 회의인 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개최국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기후변화협약 이후 최대 환경 협약 협상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협약의 성안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됐다.
3차 정부간협상위원회는 오는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차 회의에서 회원국은 의장과 사무국에 3차 회의 전까지 협약 초안(zero draft)을 작성해 회람할 것을 요청했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협약에 대한 실질적 논의 진전이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회원국 간 2024년 협약 성안을 위해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앞으로 유해한 플라스틱 선별, 리스트 작성 등 과학에 기반한 작업을 위해 전문가 그룹이 설립될 것으로 예상되고 여기에 우리 전문가들이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정부는 플라스틱 산업계, 시민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내년에 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정지훈 외교부 녹색환경외교과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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