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기 주담대 블랙홀’ 8월 가계부채 7兆 증가...잔액 사상 최고치
기업 대출 증가...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 선호
지난달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6조9000억원 급증하면서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자 ‘내 집 마련’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부채가 급증했는데, 지난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월별 기준으로 가장 크게 늘었다.
긴축 기조에도 매달 가계대출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호주 등 고금리 기조를 유지한 주요국에서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부채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주로 논의됐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23년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6조9000억원 늘어난 1075조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8월 가계대출이 늘어난 배경에는 주택담보대출이 자리 잡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7조원 늘어난 반면, 기타대출은 1000억원 줄었다. 주택매매 가격이 오르고, 매매량이 늘어나자 집을 사려는 수요가 이어져서다. 50년 만기 주담대, 정책모기지론 등도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윤옥자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며 “주담대가 늘어난 부분 중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주담대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만기 주담대가 중단되고, 정책모기지론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대출 규모가 계속 늘어날지에 대해선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윤 차장은 “주택 계약 후 주담대 실행으로 이어지는 데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시차를 고려하면 지난 5월 주택 거래가 체결되고, 8월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대출금리, 주택시장 상황 등 다른 요인이 불확실해 9월 가계대출 동향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최근 한국은행 금통위는 정부의 부동산 시장 연착륙 정책에 따른 민간 부채 증가를 우리나라 경제의 ‘뇌관’으로 꼽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까지 3.0%포인트(p) 끌어올렸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와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 등으로 통화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에서다.
한 금통위원은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민간 부채 증가세 지속, 수도권 주택가격의 상승세 확대 등으로 실물과 금융간 불균형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며 “특히 가계부채는 정책금융 지원 등 공급 요인과 주택가격 상승 기대에 따른 수요요인이 중첩돼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어, 더욱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다른 금통위원은 “우리나라는 긴축기조에도 정부, 민간에서 동시에 부채가 늘어나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으로 쌓였다”며 “디레버리징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며 지속적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언급했다.
한편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8조2000억원 늘었다. 지난달(8조7000억원)에 이어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8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은 1226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대기업 대출은 우량 기업의 운전·시설자금 수요 지속 등으로 2조9000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의 기업금융 확대 노력, 법인의 시설자금 수요 등의 영향으로 5조2000억원 늘었다.
회사채는 순상환을 지속했다. 지난 7월 1조1000억원이 줄어든 데 이어 8월에도 같은 규모로 감소했다. 기업들이 차환자금 선조달, 은행 대출 등 대체 자금조달 수단을 활용하면서 회사채 순상환을 이어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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