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가 뭔 소용?”…중국산 5G반도체에 놀란 이유 [특파원 리포트]

김효신 2023. 9.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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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놓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해빙 분위기를 맞는 것 같더니만, 다시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놓고 싸움이 붙은 양상입니다.

지난주 중국에서 출시된 화웨이 신형 휴대전화 '메이트60프로'와 곧 출시될 '아이폰15'가 그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지난 2019년 자국 기업들이 중국 대표 IT업체 '화웨이'와의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른바 '백도어(back door, 몰래 설치된 통신 연결 기능)이 있어서 미국 내 정보를 빼내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9년 11월 30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5G 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는데요. 바로 다음 날인 12월 1일 중국 화웨이도 5G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5G 시장에 진입했던 화웨이는 2019년 미국의 제재 이후에는 5G 휴대전화 생산용 반도체를 구하기도 힘들고, 판매 시장도 축소되면서 4G 휴대전화를 출시하며 이름값을 이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미국은 이보다 더 강화된 제재안을 내놨습니다. 고기능 반도체와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은 건데요.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도 미국의 방침에 발맞춰 중국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화웨이 ‘메이트60’ 출시 광고판이 걸린 중국 베이징의 한 대리점. 고객들이 ‘메이트60’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김효신 기자)


이런 상황에서 중국 '화웨이'가 기습적으로 5G 휴대전화를 내놨으니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깜짝 놀란겁니다.

■어? 생각보다 괜찮네…? 어떻게 만들었지?

화웨이 신형 5G 휴대전화를 접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겁니다. 캐나다의 반도체 자문 업체 '테크 인사이트'가 화웨이 5G 휴대전화를 분해해 분석해 봤는데요.

테크인사이트가 ‘화웨이 메이트60프로’를 분해해 확인해보니 7나노 공정을 적용한 ‘기린9000S’ 반도체가 탑재돼 있었다. 중국 최초로 자체 개발한 5G용 반도체 칩이다.


화웨이가 중국 SMIC에 의뢰해 생산한 '기린 9000S'칩이 탑재돼 있었습니다. 댄 허친슨 테크인사이트 부회장은 화웨이 5G 휴대전화 반도체 성능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댄 허친슨/테크인사이트 부회장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입니다. 중국이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기린9000S' 반도체는 7나노 기술이 적용됐는데요. 조만간 출시할 아이폰15에는 3나노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성능이 뛰어난 건데요. 화웨이 5G폰에 들어간 반도체 기술은 아이폰이나 삼성 최신 폰에 비해 3~5년 정도 뒤떨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의 5G용 반도체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겁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모든 미국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에 14나노 이상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생산 장비도 없이 어떻게 '7나노 반도체'를 만들었을까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정답은 이번 화웨이 반도체를 생산한 SMIC(중신궈지)의 설비에 있습니다. 7나노 미터 반도체는 극자외선 (EUV) 노광 장비가 없으면 사실상 생산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제재로 EUV 장비 도입이 어려워졌고, 이보다 한 단계 아래인 심자외선(DUV)장비를 활용해 반도체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극자외선(EUV) 장비로 7나노 반도체를 만들려면 회로에 패턴을 새기는 작업을 1번 하면 된다면, 심자외선(DUV) 장비를 사용할 경우 같은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합니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높은 사양의 생산 설비로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7나도 반도체를, 낮은 사양의 생산 설비를 여러 번 가동해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SMIC(중신궈지)의 생산 시설 (출처: 바이두)


타이완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도 초반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7나노 반도체 생산하다가 비용과 시간 등의 문제로 심자외선(EUV)장비로 전환하기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SMIC가 지난해 7나노 공정을 처음 공개했을 때, '테크 인사이트'가 해당 반도체를 입수해 분석했었는데요. 타이완 TSMC의 초기 7나노 반도체와 유사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었습니다.

"SMIC처럼 낮은 사양의 생산장비로 여러 번 패턴을 새겨야 하는 (멀티 패터닝) 기술을 적용하면 생산 원가가 최소 2~3배는 비싸진다. 어떤 사기업이 원가 부담이 2~3배가 늘어나는데도 생산을 강행하겠나? 중국 정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중 반도체 전문가-

해당 전문가는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와 반도체 제재에 맞서 중국 정부가 마음먹고 화웨이를 지원해줬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비용이 아무리 들어도,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중국의 기술력으로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라고 봤습니다.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화웨이 '메이트60프로' 출시 직후 “중국이 미국의 기술 제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우리 기업들에도 '불똥' 튀나?

SMIC가 7나노 반도체를 처음 공개했을 때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 기준'을 대폭 상향했습니다. 기존에 10나노미터 미만 장비 수출 금지를 14나노 미터로 강화한 건데요.

이번에는 화웨이가 이 7나노 반도체를 탑재한 '5G 휴대전화' 완성품까지 내놨으니, 미국의 제재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 기업들에도 영향이 오고 있습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화웨이 메이트60에 한국 반도체 업체 'SK하이닉스'의 메모리와 플래시 스토리지 반도체가 사용됐다"고 보도했는데요.

SK하이닉스는 곧바로 '미국이 중국을 제재한 이후 화웨이에 해당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았다'며 '어떻게 사용되게 됐는 지 자체 조사중'이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은 엄중 조사를 예고하며 더욱 압박하고 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의 규칙과 변수들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언급해 '규제 강화'를 시사했습니다.

중국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공장 전경(출처:바이두)


이런 분위기에서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의 보고서(5일)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중국 D램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전면 수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정부의 규제로 중국에서 고성능 반도체 생산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서 구형 D램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할 것으로 조사기관은 예측했습니다.

■아이폰 쓰지마!... 미국은 화웨이, 중국은 아이폰 제재?

그런데 이 화웨이 5G 전화기 '메이트60프로' 출시의 불똥이 엄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해 외국 업체 기기를 업무용으로 사용하거나 사무실에 가지고 오는 것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에 더해 '아이폰 금지 지침'이 공무원을 넘어 몇몇 공공기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SNS 샤오홍슈(小紅書)에서 ‘아이폰 금지 지침’을 언급한 글. “buwei (部委 국무원 조직기구).budui (部队 군대)와 중국 중앙 기업 사무실에 ‘아이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며 “경찰 친구들에게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샤오홍슈(小紅書)같은 중국 SNS에서는 중국 군대와 국무원, 경찰 등에서 '아이폰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체험담이 간혹 올라오고 있습니다.

애플의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19%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무원에 공공기관 직원들까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벌써 전 세계 아이폰 판매량이 올해 5%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공무원 등 중요 정보를 다루는 직무에 대해서는 기존에도 '외국산 휴대전화' 사용 금지 지침이 있었습니다. 특히 상하이에서는 공무원의 외국산 휴대전화 사용 금지 지침이 명시적으로 존재했었는데요.

최근에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소비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폰 사용 금지'에 반해 화웨이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애국 소비'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선전의 한 무역회사는 최근 중국 '화웨이 휴대전화'를 구입하면 직원들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공지까지 내걸었습니다.

중국 선전의 한 회사가 발표한 공지문.


해당 기업의 대표는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족 브랜드를 지원하고 직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화웨이 구매금 지원을 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SNS에서는 '화웨이 사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중국 SNS 웨이보에는 '#힘내라#화웨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미국이 겁박했지만, 화웨이는 겁먹지 않았다."며 화웨이를 지지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힘내라#화웨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중국 SNS 글


화웨이 휴대전화 구매를 독려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어떤 반도체가 사용됐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애플사는 어제(15일) 신형 아이폰15 모델을 공개하고 22일부터 중국 판매에 들어갑니다. 화웨이는 '아이폰15'가 공개된 날 곧바로 "메이트60의 생산량을 20% 늘리겠다"고 공격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과연 이번 휴대전화 전쟁의 승자는 화웨이가 될까요? 아이폰이 될까요?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반도체에 이어 '휴대전화' 제재를 이어갈까요? 미-중 관계가 다시 한번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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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 기자 (shiny33@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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