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고뭉치’ 그리스가 ‘우등생’ 되기까지[조은아의 유로노믹스]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3. 9. 13.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월 2일(현지 시간) 그리스 수니온곶의 포세이돈 신전 뒤로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 수니온곶=신화 뉴시스

“결국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450억 유로(약 64조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 (2010년 4월 24자)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을 ‘B1’에서 ‘Caa1’으로 3단계나 하향 조정했다. 국가의 신용등급을 3단계나 떨어뜨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2011년 6월 3일자)

동아일보에 10여 년 전 보도된 두 기사의 주인공은 그리스다. 당시 그리스는 유럽에서 ‘사고뭉치’로 꼽혔다. 그리스가 IMF나 EU에서 여러 차례 구제금융을 받는 동안 유로화 가치는 곤두박질쳤고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유럽이란 집안에서 ‘가난한 맏형’ 그리스가 사고를 치고 나면 ‘잘나가는 동생’ 독일이 나서 빚을 갚아주며 수습하는 식이었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이던 독일은 한 때 그리스의 구제금융안 연장 요청을 거부해 그리스의 자존심을 짓밟기도 했다.

이렇듯 한없이 초라했던 그리스가 달라졌다. 최근 2년간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0년 206%까지 치솟았지만 작년엔 171%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신용등급도 최근 ‘투자 적격’ 등급을 회복했다. 유럽의 경제 강국 독일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와중에 유럽에서 그리스만 ‘나홀로 전진’하는 분위기다. 꼴찌의 반란을 보는 듯하다.

● 신용등급 전격 상향

2023년 2월 16일 그리스 아테네 관문 역할을 하는 피레우스 항구의 컨테이너 터미널. 아테네=신화 뉴시스

국제 신용평가사 DBRS는 8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그리스의 장기 외화 및 자국 통화 표시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에서 투자 적격 등급인 ‘BBB‘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DBRS는 “그리스의 재정 및 부채가 상당히 개선됐으며 이는 신중하게 재정 계획을 실행하려는 그리스 정부의 강력한 노력 덕분”이라고 그리스 정부를 치켜세웠다.

그리스가 절치부심한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이런 칭찬을 받을 법하다. 그리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정난이 심각해지는데도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에 2010년, 2012년, 2015년 등 3차례에 걸쳐 IMF, EU 등에서 2890억 유로(약 412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용등급도 급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2011년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 등급인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내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 때 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단계까지 낮추기도 했다.

● ‘미초타키스 리더십’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5월 1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아테네=신화 뉴시스

그리스 경제가 반전에 성공하기까지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리더십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아버지가 전직 총리인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누나인 도라 바코얀니스는 여성 최초의 아테네 시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외교부 장관을 맡았다. 조카인 코스타스 바코얀니스는 2019년 6월 아테네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국제 컨설팅회사인 매킨지 등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배경 탓에 ‘금수저’ ‘엘리트’ 이미지가 강해 반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넥타이를 벗고 10대들과 ‘셀카’를 찍으며 소탈하고 신선한 행보를 보이려 노력했고, 결국 적극적인 개혁으로 민심을 얻었다.

2019년 7월 총선에서 완승하며 총리 자리에 오른 그는 ‘경제 부흥’을 내세웠다. 그는 세금을 줄이는 대신 보편적 감세(減稅)가 아니라 법인세 인하 등으로 경제에 활력을 주는 감세에 초점을 뒀다.

외국인이 그리스를 거주지로 정하면 세금을 절감해주는 식으로 해외 자본도 끌어들였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로 외국인 투자 규모는 지난해 50% 증가했다. 구제금융안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국민적 반발을 무릅쓰고 의료 및 연금 제도도 개혁했고 최저임금도 낮췄다.

● “미래 개혁에 눈 감아선 안 돼”

올해 4월 봄이 한창인 그리스 아테네의 한 공원에서 여성이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 아테네=신화 뉴시스

각종 개혁으로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8.4%, 지난해 5.9%로 유럽연합(EU) 평균(5.4%, 3.5%)을 크게 웃돌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 재정 지출로 206%까지 치솟았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작년 171%로 떨어졌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올해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아직 그리스가 갈 길이 멀 긴 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빈곤 또는 사회적으로 배제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비율은 EU 국가들 중 상위권이다. 개혁을 밀어붙이며 그늘도 깊어졌다. 올해 2월 50여 명이 숨진 사상 최대의 열차 사고로 고스란히 드러난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의 결함도 해결해야 한다. FT는 “그리스는 지금까지 달성한 성공에 취해 앞으로 필요한 개혁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