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식한 소리?'가 요동치는 감사원, 누구를 감사하나
현재 감사원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은 최재해 원장이 아니고 유병호 사무총장이라는 의문은 매우 합리적이다. 공개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유 사무총장이 국회 법사위에서 최 원장에게 떠민 메모가 그렇다. "(회의록과 녹취록이) 똑같은 것을 보증한다고 심플하게 답변하십시오.' 라고 적힌 메모는 그것을 증명하고 남는다.
유 총장 말마따나 감사원은 단군 이래 초유의 혼돈 속에 있다. 헌정 사상 단 한번도 압수수색을 받지 않은 감사원에서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이 7일째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써 망신이고 도저히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상황에 따라 압수수색은 다음 주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압수수색 이래 감사원은 공식 회의마저 모두 올스톱 됐다는 전언이다. 감사원 본원은 물론 유 총장이 이끄는 '타이거(TIGER)'들이 몰려 있는 서울 명동 특별조사국 사무실도 초토화 됐다고 한다.
작년 10월 5일, 대통령실 이관섬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유 총장의 문자가 국무회의장에서 포착됐다. "오늘 또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였다. 전날 <한겨레신문>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감사에 착수해 감사원법을 어겼다는 보도에 대한 대통령실 보고였다.
'무식한 소리'. 이 '무식한 소리'가 불러 온 나비 효과가 엄중하다. 명백히 감사원은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7인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다'고 감사원법은 못박고 있다. 즉, 원장이 감사위원들을 들러리로 제껴놓고, 사무총장과 함께 감사를 '독임제'로 운영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닌 것이다. 감사위원 임기와 선출방식은 헌법에 있다. 그러나 합의제 헌법기관을 독임제 헌법기관처럼 운영하다가 큰 사달이 발생하고 말았다. 감사위원회의 의결도 없이 전 정부 장관 찍어내기 감사를 무리하게 벌이다가 제 발등을 찍고 있는 것이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회장관 감사사건>에서 주심위원 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은 감사원 내부망인 <오아시스>에 '무식한 소리?' 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시리즈 글을 올렸다. 각각 '무식한 소리? 1,2,3…' 제목이 붙고, 10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그 양만 14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글이다.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의 '무식한 소리'에 맞서,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 최달영 1차장, 김영신 공직감찰본부장 등 4인의 감사원 수뇌부가 저지르고 있는 불법 혐의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조 위원은 30년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검사 시절 그는 정대철,이광재,안희정,한광옥 씨 등 민주당 인사들을 구속하고, 세월호 사건에선 박근혜 정부의 반대를 무릎 쓰고 123정장을 과실치사상 혐의로 사법처리 했다. 사람마다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내 앞에서 범죄가 지나갈 수 없고, 진실과 사실은 은폐할 수 없다'는 소신과 신념을 가진 드문 검사로 알려져 있다. 현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이 감사원장 시절, 문재인 정부의 반대를 누르고 감사위원으로 천거 했었다.
무식한 소리? 시리즈에서 조 위원은 4명의 '감사원 수뇌부'가 감사위원회 의결 내용을 어떻게 누락하고 심지어는 허위 사실을 조작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글을 쓰며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최대치로 '객관화' 하려는 노력이 눈 앞에 그려진다. 한땀한땀 꼭꼭 눌러 쓴 사초를 보는 듯 하다. 또한 일생일대의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시리즈는 '감사원 4인방'을 헌법 파괴자이자 범죄자로 단정한다. 시리즈 글을 올린 뒤 20 여일이 지나고 있지만 4인방 중 누구도 반박 글을 내놓고 있지 않다. 김영신 공직감찰본부장은 지난 6월 13일 "주심위원(조은석)은 감사위원회 의결내용 시행안에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시리즈 글에서 그의 이름은 수 십 번 등장하지만 아직 아무 반박이 없다.
지난 6월 9일 주심위원 컴퓨터 조작 시비가 났을 쯤만 해도, 직원들은 '사무처에서 좀 무리를 했을지 몰라도 불법이야 했겠어'라며 반신반의 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조목조목 불법행태를 지적하자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커졌다고 한다. 시리즈 글은 조회수가 1천회를 돌파했다고도 한다. 감사원 직원 수가 1.2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전 직원이 독회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단적 운영에 질겁한 상당수 직원들은 '속으론 웃지만 겉으론 엄숙한 표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니, 작금의 감사원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편에선 유 사무총장이 반격을 개시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조 위원에 대한 수사 요청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결국 고발 싸움으로 가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그러나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했다. 시리즈 글에 따르면 감사원 4인방은 국회 생중계를 통해 그들의 거짓말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공수처는 그 기록들을 압수하고 있다.
최재해 원장은 자문자답 해야 할 시간이다. 작금의 감사원이 과연 누구를 감사할 수 있겠는가. 명색이 단군 이래 최초로 압수수색을 받는 헌법기관 감사원 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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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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