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가짜뉴스 선동장’ 경계한다[시평]

2023. 9. 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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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선 반년 앞둔 국정감사 관심
정쟁에 실무 준비 물거품 우려
최악 국감으로 전락할 가능성
아니면 말고式 폭로 난무할 듯
국감 質 악화는 민주주의 위협
시민·언론이 나서서 감시해야

운동회를 잘 준비했는데 주인공인 아이들이 싸움을 벌여 운동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면 선생님은 얼마나 자괴감을 느낄까? 각본부터 연출, 소품까지 온갖 공연 준비를 해놨는데 무대를 이끌 주연 배우들끼리 감정이 충돌해 공연을 망쳐 놓는다면 스태프는 얼마나 무력감에 시달릴까? 올해도 국정감사가 채 한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드는 비유적 걱정이다. 국감을 위해 수많은 실무자가 머리를 맞대고 땀 흘려 멍석을 깔고 있는데, 주역인 여야 의원들이 집단주의적 정쟁(政爭)으로 멍석을 걷어차면 준비한 관계자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마음 아플까?

오는 10월 10∼27일 열릴 국감에 대한 실무 준비는 잘 이뤄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미 8월 중순에 총 10권의 방대한 국감 이슈 분석 보고서를 발간해 외부 전문가들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권마다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으로 상임위원회·피감기관별로 국감 이슈를 정리했다. 이슈마다 현황 및 문제점, 개선 방안이 자세히 들어 있다. 입법조사처는 올해도 빠짐없이 이 연례 보고서로 의원들의 국감 수고를 덜어준다. 아울러 입법조사처는 매년 국감 시정 및 처리 결과 평가 보고서도 발간해 전년도 이슈의 진전 상황을 짚어보며 국감의 장기 연속성과 효과성을 기해준다.

국회사무처 공무원들, 특히 상임위 배치 공무원들도 국감 준비로 바쁘다. 정기국회를 맞아 각종 법안과 예산안 심의를 돕느라 눈코 뜰 새 없는데, 국감 지원까지 한다. 각 의원실의 보좌진은 더 바쁠 것이다. 모시는 의원이 언론 주목을 받도록 특종 발굴에 애쓰고 있을 것이다. 주요 정당 당료, 시민단체나 사익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도 이슈 제기부터 문제점 시정까지 성과를 올리려고 노심초사할 것이다. 행정부 공무원도 국감의 예봉을 피하고 피감기관의 입장을 잘 전달하기 위해 자료 정리와 사전 및 사후 소통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실무 차원에서 많은 사람이 노력을 기울이는데, 의원들이 국감장을 정파적·이념적 전쟁터로 변질시킨다면 그 실무 노력은 물거품이 돼 버린다. 애써 발굴한 구체적인 사안이 집단주의적 편 가르기, 획일적인 이념의 틀, 정파적 흑백논리에 묻혀 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매년 국감이 이러했다. 내년 4월 국회의원선거를 반년 앞두고 실시될 올해 국감은 특히 우려를 자아낸다. 의원들이 구체적인 국정 사안보다는 선거 분위기를 잡기 위한 기 싸움, 공천을 위한 강경한 정파성 경쟁에 매몰돼 일방적 주장과 야유·고함, 심지어 욕설까지 난무할 가능성이 짙다. 이번 제21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라 책임질 일도 없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근거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가짜뉴스를 퍼뜨릴 가능성도 크다. 실무 준비자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의원만의 무대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절대성을 대전제로 의원, 비의원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시민단체, 사익단체 등이 총동원된 넓은 세계다. 이들이 각자 역할에 충실할 때 건전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될 수 있다. 선거가 핵심이라 해서 관례상 의원들을 주역이라고 부르지만,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공연에도 주연뿐 아니라 단역과 스태프 등 여러 사람이 관여되듯이, 대의민주주의는 다양한 역할의 수많은 사람이 필수 불가결하게 참여해야 가능하다. 남이 열심히 준비한 이 공동 과업을 의원들도 존중해야 하고 밥상 엎어버리듯 하지 말아야 한다.

국정감사는 법안 심의, 대정부 질문, 인사청문, 공청 등 의원들의 다른 업무에 비해 더욱 정쟁·이념대결과 거리가 멀어야 한다. 상임위별로 각 행정기관을 감사해 성과의 명암을 따지려면 차분하고 냉철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상대는 피감기관이지 여야 의원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야 간 대결로 치닫고 날 선 공방이 고조되면 피감기관 측은 내심 이를 즐기며 답변은 대충 얼버무리고 시계만 흘긋거릴 것이다.

국감을 위한 지원 시스템은 크게 향상돼 왔다. 그러나 국감의 질(質)은 악화 일로다. 의원들이 국감 준비 관계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멍석을 걷어차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계속 그럴 것이다. 이런 비관적인 관측이 한 달 후 완전히 빗나가면 좋겠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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