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파 감독 페촐트 “한국 관객들 열정에 붕 떴다”
예술영화의 설 자리가 아무리 좁아진다고 해도 스타는 탄생한다. 2021년 말 한국에서 개봉한 뒤 팬들의 요구로 재개봉을 거듭하며 7만명 넘는 관객을 모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대표적이다. 하마구치와 함께 최근 한국 예술영화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받는 감독은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촐트다.
페촐트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2012년 ‘바바라’로 감독상을 받으며 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팬덤이 형성된 건 한참 뒤다. 2020년 베를린영화제 초청작 ‘운디네’와 직전 연출작인 ‘트랜짓’(2018)이 예술영화관에서 그해 잇따라 개봉하면서 젊은 예술 영화팬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광화문 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에서 수입사인 엠앤엠 인터내셔널 임동영 대표가 함께한 개봉 뒤풀이 자리에서 관객들이 페촐트의 2014년 연출작 ‘피닉스’ 국내 개봉을 강하게 요청해 이듬해 여름 개봉이 성사되기도 했다.
‘피닉스’가 1만2000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페촐트는 국내에서 예술영화 팬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신작 ‘어파이어’의 13일 개봉을 앞두고 페촐트가 처음 내한해 예술영화관뿐 아니라 멀티플렉스의 중대형 상영관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는 대부분 ‘1분 컷’으로 매진됐다.
페촐트는 2000년대 이후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영화들을 보여준 감독군에게 붙여진 ‘베를린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현대 독일인들의 미시적 삶에 천착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역사와 혼란, 난민 문제 등을 작품 안에 녹이는 현실 참여적 작품을 주로 내놨다. 이번에 개봉하는 ‘어파이어’는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 옆마을에서 벌어진 대형화재를 배경으로 기후위기가 드리우는 어두운 미래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로맨스와 미스터리, 스릴러 등 고전적 장르의 외피를 둘러 스토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게 페촐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파이어’ 역시 여자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젊은 남자 작가와 다른 남자들간의 성적 긴장 관계가 줄거리의 뼈대를 이룬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에서 만난 페촐트 감독은 “코로나로 고열에 시달리며 앓아누워있을 때 문득 여름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 공부할 때 한 교수님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춤추고 사랑하고 고통받았는지 후대가 알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여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구상하던 작품을 접고 ‘어파이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바닷가 별장에 온 작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는 신작 마감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휴식을 즐기지 못한다. 우연히 한집에 머물게 된 나드야(파울라 베어)에 관심이 가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한 모습만 보인다. 레온은 천장에 물이 새도, 설거짓거리가 쌓여도, 옆 동네에 산불이 번져도 “일해야 돼”만 반복한다. 페촐트는 주인공 레온이 “자기 일이 너무 중요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작 낮잠만 자는 예술가”라고 하면서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비 새는 천장을 고치는 다른 세 친구처럼 세상을 고치고 제대로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스스로는 자제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에 눈멀어보는 경험 한번 제대로 못 하는 어리석은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페촐트는 코로나 이후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극장에 발길이 크게 줄었다고 하면서도 “이를 통해 공동체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묻게 되었고 대중이 함께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영화관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이창동 감독에게 이 말을 하니 이 감독이 (내가) 너무 낙관적인 거 같다고 웃더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관객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일정을 마친 페촐트는 “한국 관객의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 덕에 붕 뜬 느낌이다. 빨리 돌아가서 평상심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다”고 첫 내한 소감을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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