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중동행 비행기와 대중가요

2023. 9.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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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숙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음반 [국립항공박물관 제공]

‘케이팝(K-POP)’이라는 명사는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 대중음악의 큰 흐름이 됐음을 말해주는 낱말이다. 오히려 ‘K’라고 하는 틀 안에 가둬놓고 언급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저 멀리 내닫고 있다.

한국가요사를 연구해온 이동순 교수에 의하면 ‘우리 가요는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의 험난한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문화적 산물’이라고 했다. 대중가요를 ‘유행가(流行歌)’라고도 하는데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노래라고 사전은 설명한다.

1970년대 대중가요 한 소절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79년 가수 현숙은 김상범 작사·작곡의 노래를 취입한다. ‘아빠가 떠나신 지 사계절이 갔는데/ 낯선 곳 타국에서 얼마나 땀 흘리세요/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부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라는 가요다. 남편을 ‘아빠’라고 지칭하는 것은 바른 호칭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왜 타국에 있는 것일까.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이 노랫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간 중동전쟁에서 시작된 석유파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가장 극심한 불황을 던졌다. 그러나 중동 산유국들은 막강한 오일파워를 기반으로 도로와 항만과 같은 대규모 건설공사에 나선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때 본격적으로 중동에 진출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항공산업도 중동을 향한 항공 수요에 맞춰 하늘길을 열기 시작한다. 1976년 바레인 노선을 시작으로 1977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1978년에는 쿠웨이트 노선을 개척했다. 당시 하나뿐인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은 1976년 ‘중동 지역 진출 인력의 유치’라는 취지로 정부 당국에 바레인 정기 항공노선 운항 면허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근로자가 집중되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사우디아라비아행 임시 항공노선 운항 면허신청서를 제출했고, 300석 규모 맥도넬사의 DC-10 여객기를 제다와 다란으로 보냈다. 중동으로 향하는 항로는 1980년대에 들어서 더욱 확대됐다. 1981년 리비아 트리폴리와 1982년 이라크 바그다드에 취항했고, 1981년에는 보잉사의 747 점보기를 도입해 중동 노선에 투입했다. 198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노선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중동으로의 하늘길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뉴스위크(NEWS WEEK) 1977년 6월호 표지 [국립항공박물관 제공]

‘2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 장만한다’는 말이 회자 되던 시절, 현숙의 노래에 나오는 남편은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1년을 더 열사의 땅에서 모래바람과 맞서야 했다. 주변의 누군가는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이라크 등 이른바 중동행 비행기에 올랐고 ‘타국에 계신 아빠’가 되었다. ‘일가친척 중 중동 나간 사람이 없으면 간첩’이 되는 그야말로 ‘중동붐’의 시절이었다. 1974년 400여명에 불과했던 노동자는 1975년 7000여명, 1976년에는 2만여명이 넘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정점을 이뤘다. 세계적인 잡지 뉴스위크(NEWSWEEK, 1977년 6월)는 태극기를 들고 몰려오는 한국인 삽화를 표지에 그려 넣고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표제를 달았다. 생전 처음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스튜디어스가 아니라 스튜어디스입니다’(1982년 간행)라는 수기집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는 사람과 물건만을 실어나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사연도 함께 타고 내렸다. 이라크 정수장 건설 현장에서 가족에게 보낸 항공엽서 한 장에는 서울-타이페이-홍콩-방콕-폼페이-바그다드 노정이 들어있었고, 수도 없이 오간 항공우편 봉투에 꾹꾹 눌러 쓴 ‘철이 공부시키던’ 그 옛집은 이제 주소로만 남았다. 여권에 찍힌 아랍어 입출국 도장은 빛이 바랬지만 여권 속에서 중동 땅 모래바람이 이는 듯했다.

휴가도 없이 사계절을 두 번이나 보내고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을 때 승무원의 기내 방송이 울렸다. ‘중동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사히 임무를 마치시고 이제 귀국길에 오르신 중동건설 현장요원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모국의 따뜻한 품 안으로 돌아오셨습니다...’(대한항공 안내방송 지침서, 1985).

귀국길 공항대합실에서 펼쳐진 철이와 아빠의 상봉 장면은 어떠했을지. 여행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지. 이 이야기를 담은 ‘중동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 특별기획전이 오는 19일부터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린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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