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운의 얼굴 주술에 불가항력적으로 넘어가다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2023. 9. 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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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사진=SLL, 씨제스스튜디오

화면으로 수많은 이들을 본다. 그중에는 이웃에 있을 것 같은 친근한 매력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현실적이어서 눈길이 가는 사람도 있다. 로운은 후자다. 무엇보다 그 키다. 프로필상으로 190cm 언저리를 맴돈다니. 그 기럭지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슬프게도(?) 180cm 넘는 사람을 내가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 수도.

출연작이 많지만, 내가 로운을 처음 발견한 건 드라마 '연모'에서였다.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봐 온 다른 배우들과는 좀 달랐다. 세필 붓으로 오랜 시간 그린 것이 아닌, 굵은 연필로 쓱쓱 빨리 그려낸 초상화를 보는 것 같달까. 아무튼 한번 보면 잊지 못할 것 같은 훤칠한 외모에 도포 자락을 휘날리던 그가 JTBC 수목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서 슈트를 입고 등장했다. 까칠함과 멍뭉미를 장착하고.

사실 모든 연애는 불가항력이다. 어떤 한 사람에게 빠지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 그래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한 번쯤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해봐야 할 듯싶다. 설령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 손발이 오그라들고, 결국 눈물바다에 홀로 남겨진다 하더라도.

사진=SLL, 씨제스스튜디오

극중에서 로운이 연기하는 장신유의 연애가 불가항력인 것은 '주술' 때문이다. 초거대 AI 시대에 주술이라니. 제작진의 매우 용감한 설정이 아닐 수 없지만, 그 허황함을 주연부터 조연까지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들이 잘 메워가는 중이다. 상큼 발랄한 여주인공 이홍조(조보아)의 마음은 원래 권태경(하준)에 향해 있었다. 그런데 '애정술'에 제대로 걸린 장신유가 시도 때도 없이 이홍조에게 애정 공세를 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극 중 설정으로도 외모, 집안, 변호사라는 직업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남자의 대시를 거부할 수 있을까. 역시 말도 안 되는 판타지지만, 슬그머니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연애에 있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풀기 힘든 숙제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택할 것이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택할 것이냐.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최고다." 홍조의 집주인 아주머니도 그랬다.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가라"고. 서로의 마음이 통해 한꺼번에 서로가 좋아지는 축복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불가항력이란 손쓸 수 없는 힘은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돌진하라는 대책 없는 호르몬을 무한 방출한다. 자존심은 사랑이란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취약한 미물일 뿐이다.

한때는 나도 누군가를 향해 직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이 들며 서글픈 건 점점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살아가며 획득한 경험치가 너무 많아 그 결과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젊은이에게 다양한 경험은 빛나는 훈장이다. 혹여 그 경험이 생채기를 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낫고, 근육이 되어 훗날을 지탱하게 해준다. 그러나 마음의 근 손실이 온 요즘의 나는 상처 입을까 두려워 모든 새로운 경험을 주저하게 된다.

사진=SLL, 씨제스스튜디오

원하지 않던 주술 덕에 장신유는 때아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다중인격처럼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장신유, 로운은 선 굵은 얼굴을 미세한 감정선으로 채워 비현실적인 상황임에도 나름 공감을 주고, 어쩔 수 없이 응원하게 만든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겠지만, 신유가 자신을 좋아하는 나연(유라) 두고 홍조에게 가는 과정을 로운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에 조바심 내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을 듯. 곧 홍조에게 선을 긋던 태경의 마음도 돌아올 모양이니 홍조, 신유, 태경이 만들어갈 사연도 재미를 더할 것 같다.

비록 내 마음은 근육 부족 상태지만, 내 아이들, 후배들에게는 그래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연애만큼은. "우리는 인생의 최고 결정권자라기보다는 인생이라는 배에 탄 선원에 불가합니다"라는 심리학자 모드 르안의 말처럼, 인생은 어차피 그 자체로 불가항력이다. 그런 세상에서 잠시라도 이성의 지배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로움을 누려보기를. 그 모든 경험에 혹여 다치더라도 흉터 위로 언젠가 새살이 돋아 내일의 삶을 든든하게 지탱할 근력이 되어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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