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567일, 김정은 손잡는 푸틴…결국 남북 대리전? [월드뷰]
우크라이나 전쟁 567일인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할 것으로 관측된다.
교도통신은 양국 정상이 13일 오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러시아 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 RBK도 전날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3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16일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정상회담 장소는 기존에 예상됐던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북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회담을 마친 뒤 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수호이 전투기 생산 공장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이 우호국가 간 협력을 다지는 외교 접촉 수준을 넘어 군사 협력에 치중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한반도 안보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최우선 의제로 다량·다종의 탄약 등 무기거래를 포함한 군사협력 문제가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도 보다 직접적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차로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탄약 등 재래식 무기가 절실해졌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에 무기 조달처 역할을 할 나라는 사실상 북한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는 북한과의 모든 무기 거래 및 군사기술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임에도 제재를 무시할 태세다.
정 박 국무부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부대표는 11일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북·러 정상회담은) 러시아가 다량·다종의 탄약을 지원받는 무기거래 최종 단계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번 거래에서 북한이 러시아 방위산업에 사용될 원자재를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의 핵심 기술 이전을 요청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핵추진잠수함 등에서 러시아의 핵심 기술을 필요로 한다.
전문가들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북한이 ICBM 최종단계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서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하단 게 중론이다.
정찰위성과 핵추진잠수함은 김 위원장이 2021년 지시한 5대 국방 과업 중 하나로, 목표대로 2026년까지 완수하려면 러시아의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
군사정찰위성의 경우 올해에만 2차례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해 오는 10월 예고한 3차 발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입장이다.
핵추진잠수함은 김 위원장이 최근 건조 계획을 공언했다. 디젤이 아닌 핵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핵추진잠수함은 소음 없이 수개월간 위로 떠오르지 않고 물밑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기습 공격을 할 수 있다. 북한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자체 기술력으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추정된다.
양국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상황에서 러시아 당국자들은 북한과의 연합훈련 가능성을 대놓고 언급해왔다.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듯 이번 방러 수행단엔 군 고위층과 군수산업 책임자들이 충촐동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방러 당시 수행단이 외무성 라인 중심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 무기가 러시아 측에 흘러 들어간 정황은 이미 지난해 미국 등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 민간용병단 ‘바그너 그룹’에 제공된 것으로, 북러 양국 간의 본격적 무기거래는 아니었다.
북한 무기가 ‘뒷문’이 아닌 ‘정문’으로 러시아에 들어간다면 한국의 대 우크라이나 지원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대규모 무기 거래 등을 통해 역내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것과 관련해, 수미 테리 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소장은 앞서 7일 CSIS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한국도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테리 소장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 경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관련, “대북 제재가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대가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 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한다면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북한에서 미사일 등을 사면 우크라이나도 한국에서 천궁 미사일 등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무기거래 등 북러 군사동맹 강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와 한반도에서의 억제력을 키우려는 미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안보위기 지형 확대로 미국의 억지력은 분산될 것이고 한반도 핵 긴장도 더욱 고조될 공산이 크다.
이는 필연적으로 한미 안보협력 가속화로 이어질 텐데, 집단 서방 노선에 합류해 우크라이나를 우회 지원해온 한국은 그간의 ‘살상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깨고 직접 지원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수순을 예견한 듯 러시아 고위 외교당국자도 한러 관계 파국을 운운하며 한국을 압박했다.
동방경제포럼(EEF) 행사 참석차 블로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러시아 외무부 제1아주국장은 11일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러시아와의 관계는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노비예프 국장은 “우리는 여전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고 경제·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서울(한국 정부)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수준에서 우리와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공급하지 않고 경제·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여러 경로로 러시아에 이런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한국-미국 탄약 거래에 관한 서방 언론 보도가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위기는 러한 관계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대리전의 도구인 우크라이나 정권을 지원하는 집단 서방 노선에 합류했다”고 지노비예프 국장은 지적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무기와 군사 장비를 공급하기로 무모한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 관계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위기에 대한 서울의 접근법의 추세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전 당시 남과 북은 각각 월남과 월맹을 군사지원하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동맹 및 우방에 연루된 남북이 또다시 간접전쟁에 휘말린다면, 한반도의 시계(視界)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캄캄해질 수 있다.
일단 한미는 북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정면 위반하는 무기거래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에 연일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 신(新)냉전 구도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북러 간 무기거래가 현실화하면 한반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랑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은 자명하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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