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폭력으로 갈비뼈 부러진 어머니의 고백
자녀 문제행동 속에 숨은 진심
성장기 부모의 애정 · 신뢰 필요
촉법소년, 존속상해 · 폭행 증가
자녀 폭력성 쉬쉬하는 부모들
참고 이해하는 게 능사는 아냐
자녀 올바르게 키우기 위한 지혜
매일 흉흉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이 아린 이야기들이 있다. 자녀로부터 폭력을 당한 부모들의 이야기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치명적 잘못을 묻어두려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자녀의 폭력을 용인하는 이들은 더 많을 수 있다. 문제는 자녀의 폭력성을 참고 쉬쉬하는 건 더 큰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심리 상담가이자 작가 카트린 르블랑의 「그래도 너를 사랑해」란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인 '아기곰'은 '엄마곰'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내가 말썽을 부리거나 엄마 말을 듣지 않을 때에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아기곰에게 엄마곰은 "속상하고 실망하겠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답한다.
필자가 이 그림책 이야기를 꺼낸 덴 이유가 있다. 청소년 상담을 하다 보면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자주 접하는데, 이 아이들이 어쩌면 부모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내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해도 나를 사랑하나요?' '내가 이렇게 못되게 굴어도 나를 포기하지 않을 건가요?'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어도 나를 사랑하나요?'라고 묻는 건 아닐까. 결국엔 부모로부터 "그럼, 그럼에도 너를 사랑해"라는 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닐까.
대부분의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랑한다. 필자가 상담실에서 만난 부모들도 그렇다.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부모, 자녀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갈등을 겪는 부모, 자녀가 반복적으로 자해를 해 걱정이 태산인 부모…. 이들은 때때로 "내 자식이지만 너무 밉다" "포기하고 싶다"고 털어놨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가 '그럼에도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의 무한정한 사랑은 자녀가 자라는데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위기를 겪는 아이일지라도 극복하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돼주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부모의 깊은 사랑으로도 자녀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녀가 부모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다. 실제로 '존속상해·폭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14세 촉법소년의 존속상해·폭행 건수는 2014년 1건에서 지난해 96건으로 폭증했다. 그만큼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모가 많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필자는 기질적 요인이나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학대, 폭력, 방치, 마약·음주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폭행하는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거다.
예컨대 어린 시절 기질적·환경적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절한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꾸지람을 듣고 자란 경우다. 성장 과정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 섬세한 돌봄 대신 반복적인 비난과 폭력을 당하게 되면 아이에겐 폭력성이 싹틀 가능성이 높다.
또 아이가 공격적 성향을 드러냈을 때 마땅한 훈육, 반성, 포용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하다 보니 귀찮아하며 넘기기 쉽다. 또 친구들과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이렇게 자녀의 폭력을 용인해주다 보면 공격성이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고 인내심이 결여된 아이로 클 수 있다는 거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는 아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ADHD의 특성상 아이는 산만해 수업시간에 집중하기 어렵고,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해 학교나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받을 수밖에 없다. 감정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친구와 싸우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부모가 그럴 때마다 아이를 꾸지람하면 아이의 내면은 병이 든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열등감이 깊어질 수도 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ADHD에서 기인한 것인데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커지는 건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신체적으로 성숙했을 때다. 이때 공격성을 표출하면 더 이상 부모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힘이 약한 어린 아이 땐 아이의 아픈 내면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ADHD 증상과 더불어 억압돼 있던 공격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때 부모가 자녀에게 공격적으로 맞대응하거나 반대로 자녀의 행동을 용인하고 비위를 맞춰줄 경우 자녀의 폭력성을 키우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자녀에게 폭력을 당하고도 쉬쉬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행여 자녀에게 나쁜 이미지가 씌워져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봐서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난 실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들 A군의 폭력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어머니가 둘째 딸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는 탓에 아들이 어릴 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생업으로 바빠 아이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에서 종종 다툼이 있긴 했지만 아이를 혼내고 무마하기 바빴다.
문제가 심각해진 건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서 밤새 게임하는 날이 잦아지면서였다. 처음엔 잔소리를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나중엔 욕을 하더라. 최근엔 입맛에 안 맞는 반찬을 해주거나 용돈을 달라는 걸 거부하자 벽을 치고 물건을 던지지 시작했다."
결국 폭력을 저지르는 아들을 막아서다 어머니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렀지만 A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하지 않았다. 자식의 앞날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두렵고 무서워 피해 있거나,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그러던 A군의 어머니가 상담실을 찾은 건 A군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A군의 여동생은 오빠의 폭력적 행동으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필자는 여동생을 A군과 즉각 분리해 보호하라고 조언했다.
폭력적인 오빠와 함께 지내다 보면 여동생도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신도 오빠에게 폭력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부모님이 오빠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부모님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것 같은 죄책감' 등에 시달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자녀가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집안일'이라며 쉬쉬하던 A군의 어머니도 어린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어렵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필자는 부모가 단호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결단력 있는 태도로 자녀와 소통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폭력적 행동을 거듭한다면 신고도 불사해야 한다.
A군의 사례에서 보듯 자녀의 폭력성은 부모가 참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다른 형제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기 어렵게 만든다. 어쩌면 폭주하는 자녀조차 부모가 자신을 멈춰주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필자는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가 모든 것을 참고 용인해주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여 자녀가 처벌을 받게 될지라도 옳은 길로 이끌어주는 용기, 그것이 '그래도 너를 사랑해'의 참 의미가 아닐까.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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