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의 설움' AG 가라테·카누를 '베프'로 묶었다
1993년생 가라테 국가대표와 2003년생 카누 국가대표가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고 있다. 이 둘을 엮어 놓은 공통점은 다름 아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다.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선수단 결단식. 행사가 끝난 뒤 행사장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한 선수가 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 가라테 쿠미테 84kg 이하급에 출전하는 백준혁(30·한국가라테연맹)이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백준혁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다. 백준혁의 인터뷰가 진행되던 도중 장난을 치며 나타난 선수가 있었다. 바로 카약 슬라럼에 출전하는 카누 국가대표 박무림(20·고려대)이다.
30살 가라테 백준혁과 21살 카누 박무림. 차 한 대를 나눠 타고 퇴근할 정도로 둘은 이미 막역한 사이다. 종목도, 나이도 다른 두 선수가 어떻게 '절친'이 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의외였다. 두 선수는 "비인기 종목 선수끼리 통하는 게 있다"고 입을 모았다. 둘의 첫 만남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말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대상으로 도핑 교육이 진행될 때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국가대표 3개월 차였던 새내기 박무림에게 백준혁이 먼저 다가와 "혼자 온 사람끼리 같이 앉자"며 말을 붙였다고 한다. 두 선수는 각자 종목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수록 '비인기 종목'이라는 점에서 공감이 되는 점이 많았다고 했다. 종목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오는 서러움, 부족한 지원과 예산 등 서로가 비슷한 환경에 놓였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무림은 "정확한 대화가 기억나진 않는다"면서도 "비인기 종목 선수라면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통하는 점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백준혁도 "비인기 종목 선수들끼린 쉽게 친해진다. 종목에 대한 부족한 지원과 같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두 선수는 서로의 선수촌 '첫 친구'가 될 수 있었다. 1993년생과 2003년생이라는 나이 차이도 무색할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백준혁은 이날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라테라는 종목을 잘 알고 계시지는 못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어떤 일이라도 열심히 하듯, 저희 종목 선수들도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시면 그만큼 좋을 게 없을 것"이라고 바랐다.
16살 때부터 가라테를 시작한 백준혁은 올해로 선수 경력 15년 차. 아시아선수권이나 세계선수권 등 국제 대회 경험도 풍부한 선수다. 특히 지난 2021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은 이번이 첫 출전이다. 백준혁은 "선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아시안게임'이란 대회를 꼭 뛰고 싶었다"며 간절함을 표했다. "이 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15년 만에 출전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엄청 긴장도 된다"는 백준혁은 "마지막 대회를 별 탈 없이 좋은 성적 내서 끝내고 싶다"고 털어놨다.
백준혁은 "가라테는 절제할 수 있는 운동이라 매력 있다"며 종목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가라테는 태권도의 품새로 볼 수 있는 카타, 겨루기로 볼 수 있는 쿠미테로 나뉜다.
백준혁은 "스펙타클한 걸 원하면 쿠미테를 추천한다.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다른 격투 종목들은 상대방을 타격해서 다운시키면 승리하는데, 가라테는 그 반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대방을 실질적으로 타격하면 반칙이기 때문에 절제의 매력이 있는 운동"이라고 부연했다.
박무림 역시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이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박무림은 "카누라는 종목 자체가 여러 문제들로 인해 대회를 많이 못 나간다. 보통은 국가대표가 되면 여러 국내외 대회를 많이 출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는 국가대표가 돼도 꾸준하게 대회를 나가지 못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올해도 지금 이 대회가 제 첫 대회다. 거의 2년 만에 뛰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카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는 점도 털어놨다. 박무림은 "한국에 아직 인공 경기장이 없어서 마땅히 훈련할 곳이 없다. 선수들이 직접 줄을 치며 경기장을 만들며 훈련하고 있다"며 "한 달 훈련을 가면 처음 한 일주일은 경기장을 건설하고 훈련하는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카누 국가대표가 된 박무림은 이번 카누 슬라럼 종목에 나서는 4명 중 유일하게 세계 대회에 나가봤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지닌 선수다. 앞서 4번 정도의 국제 무대를 경험해 봤다는 박무림에게 아시안게임은 이번이 데뷔전이다.
박무림은 "카누 종목은 스프린트와 슬라럼으로 크게 나뉜다. 스프린트는 호수 같은 잔잔한 물에서 하는 경기이고, 슬라럼은 급류에서 기문을 통과하는 경기"라고 설명했다. 카누는 배의 모양과 자세에 따라 카누와 카약으로 나뉘기도 한다. 박무림은 "저는 카누와 카약 둘 다 하는데, 이번엔 카약으로 출전한다"고도 알렸다.
박무림은 "두 달 전 훈련 중에 어깨가 빠져서 수술한 지 10주도 안 됐다"며 "슬프다"고 속내를 비쳤다. 그러면서도 "지금 재활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선 안 다치고 게이트 몇 개라도 무사히 통과하면 좋겠다"며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뛰고 오고 싶다"고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두 선수 말고도 '비인기 종목'을 자처하며 시선을 바라는 목소리를 내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세팍타크로에 출전하는 배한울은 "세팍타크로가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많은 응원을 못 받고 있다"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관심에 응원까지 더해주시면 더욱더 감사할 것 같다"는 속마음을 전했다.
여자 기계체조 이은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은주는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인기 종목보다는 인지도가 낮은데, 그래도 똑같이 땀 흘리고 열심히 훈련했다"며 "더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고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송파구=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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