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거리로 나선 생숙 투자자들…'10월 대란' 가능성은?

노동규 기자 2023. 9. 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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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본래 숙박시설, 대란 없을 것"…투자자들 "준주택 인정해 달라"

지난 9월 5일 정부 세종청사 앞. 3천여 명이 모여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 레지던스로도 불리는 생활형 숙박시설, 이른바 '생숙'을 분양받거나 사들인 이들이다. 정부가 숙박업 신고 없이 주거 용도로 쓰는 불법 생숙에 대해 다음 달 14일부터 집값의 10% 수준 이행강제금을 물리기로 하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지킬 수도 없는 어이없는 졸속 법을 만들어 국민에게 알아서 지키고 알아서 책임지라고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이 졸속이라 주장한 법은 21년 5월 4일 시행된 개정 '건축법 시행령'이다. 생숙을 공중위생관리법에서 말하는 '숙박업 신고 대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이로써 생숙의 법적 지위는 '숙박업 신고 의무를 갖고 타인에게 투숙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물'로 확실해졌다. 세종 청사 앞 3천여 명은 공포 즉시 시행된 이 시행령으로 전에 없던 제재를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소급 입법으로 기존에 없던 신고 의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숙박 시설'…투기판 되자 규제

국토부에 따르면 생숙은 등장 이래 단 한 번도 "주택 용도"였던 적이 없다. 건축법은 건물의 용도를 나눠 규정해 놨고 생숙은 원래부터 용도가 숙박시설이다. 그저 암암리에 주거용으로 '불법 사용'해온 것일 뿐이다.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은 생숙이라는 숙박시설 역시 숙박업 신고 대상임을 명확히 한 것에 불과하다. 소급 입법이 아니란 얘기다. 국토부 보기에 거리로 나선 이들은 "애초에 주택인 적 없었던 나의 재산을 주택으로 인정해 달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행령 개정 또한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주거 용도 아닌 것을 주거 용도, 혹은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투기판을 벌인 탓이다. 특히 아파트값이 폭등하던 지난 20년~21년 사이 이 판이 커질 대로 커졌다. 주거 용도가 아니다 보니 주택 수에 산입 되지 않는 점이 각광 받았다. 종합부동산세 등 다주택 규제를 피할 수 있던 것이다. 청약통장 없이도 청약할 수 있었고 당첨되면 전매도 가능했다. 금융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워 은행 돈 끌어다 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서울 강서구의 한 생숙 분양 최고경쟁률은 6,000대 1을 넘기에 이르렀다. 다섯 달 전 정부가 "생숙을 주택용도로 쓸 수 없게 하겠다"고 규제를 예고한 마당이었다. 한국사회에 '호텔리어' 희망자가 그렇게 많았을까?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투자자 카톡 일부

 

2년 계도기간 용도변경 1% 뿐…"속았다"는 투자자도

정부는 시행령 개정 후 2년의 계도기간 동안 '출구'를 열어줬다. 21년 10월 한시적으로 오피스텔 건축기준을 일부 완화해 요건을 갖춘 생숙은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발코니가 있어도 되고 전용출입구가 없어도 되고 넓은 면적의 바닥난방도 허용했다. 하지만 전국 생숙 약 10만 호실 가운데 단 1.1%만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꿨다. 주차 면 수나 안전시설이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건물을 고쳐보려고 해도 생숙 하나에 100명씩도 있을 수 있는 수분양자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설계변경이 가능한 점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컸다.

생숙 광풍이 지나간 지금 일부 생숙 투자자는 "속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몰랐다"는 것이다. 생숙 지어 파는 시행사의 번지르르한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시행사들이 생숙을 '부동산 규제를 피하는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소개하고 홍보했다. "주거 명품" 따위 문구를 내세우기도 했다. 곳곳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기성 분양으로 투자자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자들은 법의 쓴맛을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민·형사적 책임과 별개로 성인의 투자행위 뒤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라오는 법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 "공급 대책 된다"…국토부 "사고 나면 누가 책임"

일부 생숙 시행사 단체나 전문가들은 생숙을 '준 주택'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주거난을 막을 "공급 대책의 한 방편"이라고까지 말한다. 국토부 입장은 확고하다. 비상계단 거리나 복도 폭 등 피난 기준도 다른 건물을 모두 주택으로 인정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무엇보다 학교용지부담금 등 세금을 낸 '진짜 주택'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생숙의 주택 인정으로 갑자기 특정 지역에 '주택'이 늘 경우 학교 과밀화나 교통량 증가도 문제다.

국토부가 원칙을 고수하는 사이 불법 생숙 단속 개시일은 다가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생숙 이행강제금 폭탄" 등 자극적 용어를 써가며 마치 '대란'이 일어날 것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우려하는 생숙 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10만 호 생숙 소유자 상당수가 이미 숙박업 신고를 마친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행강제금 부과 역시 각 지자체의 현장 확인 등 시일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당장 다음 달부터 수 만 명이 수천만 원씩 이행강제금을 맞게 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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