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5) 한국인의 로망, 산티아고 순례길

2023. 9. 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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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산티야나 델 마르 새벽 골목길 풍경.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신성한 느낌이다. 필자 제공
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 최초의 순례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연, 역사, 종교를 체험하는 명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올해 국가별 방문자 수에서 한국은 8위를 차지했다. 5060명(1∼7월)이 다녀갔다. 현지인들은 동양의 먼 나라에서 왜 이렇게 많은 순례자가 오느냐고 궁금해할 정도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처에 의해 공인된 길은 모두 9개. 이중 대중적인 루트 3개를 소개한다. 스페인 내륙을 통과하는 총연장 930km의 가장 긴 길인 프랑스 길. 쏭뽀흐나 론세스 바예스가 출발점이다.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같은 도시가 있다. 스페인 와인 등급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리오하 와인의 산지인 라 리오하를 지난다. 꼭 와이너리에 들러 볼 필요가 있다. 약 5억 명이 모국어로 쓰는 스페인어의 발상지인 유소(Yuso) 수도원도 있다. 이 수도원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산 세바스티안 라 콘차 해변에 있는 바람의 빗(The Comb of the Wind) 조형물(작가 에두아르도 칠리다). 해변 끝 쪽에 있으며, 파도가 바위에 격렬하게 부딪히는 날에는 마치 바람이 금속 조각 형상에 '빗질' 되는 것 같다. 필자 제공
칸타브리아 해를 따라가는 총길이 825km의 북쪽 길. 산 세바스티안에서 출발한다. 산탄데르, 히혼, 리바데오 등이 가는 길에 있다. 산 세바스티안의 라 콘차 해변에 들르고 빌바오의 구겐하임 박물관을 가보시라. 코미야스에는 우리에게 바르셀로나 성 가족 성당으로 유명한 가우디가 디자인한 건물인 엘 카프리쵸가 있다. 산티야나 델 마르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 유적지도 방문해봐야 한다. 1만4000년 전 인류가 최초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9세기에 성(聖)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개척되기 시작한 최초의 루트를 재현한 길인 최초의 길. 오비에도에서 시작해서 루고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간다. 산티아고 3개의 순례길 중에서 가장 짧지만,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다. 최초의 길은 도시에서 멀고 사람이 덜 붐비는 곳에 있어서 순례길의 기원에 가장 가깝다. 루고에는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세계 유일의 로마 시대 성벽이 있다. 한국의 문어 요리와 비슷해서 우리 입맛에 맞는 갈리시아 전통 문어 요리인 뿔뽀 아 페이라를 맛보는 것도 괜찮다. 색다른 북부지방의 맛을 느끼려면 거북손(percebes)에 도전해보자. 이름 그대로 거북이 손처럼 생겼는데, 입에 넣는 순간 바닷냄새가 확 올라온다.
갈리시아 대표요리인 뿔뽀 아 페이라(왼쪽)와 거북손(오른쪽). 스페인관광청 제공
아빌레스 종합시장 수산물 코너. 칸타브리아해를 접하고 있는 북쪽 길에는 수산물이 풍부하다. 필자 제공
이 순례길을 어떤 방법으로 갈 수 있을까? 마냥 걷는다. 하염없이 걷는다. 처음에는 경치도 구경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도 한다. 재미있다가 점점 터덜터덜 지친다. 나중에는 힘들어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걷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이런 느낌을 찾기 위해서, 일상의 번잡함을 모두 떨치려고 일부러 걷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힘에 부치는 관광객을 위한 다른 순례 방법이 있다. 차량에 짐을 실어 보내고 걷다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도 한다. 또 다른 색다른 방법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말을 타고 간다. 생소하지만 순례길 사무국에서 공인한 다른 완주 방법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또한 영국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이 12세기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갈 수 있는 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길을 그대로 재현하여 배로 여행할 수도 있다.
모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과 오브라도이로 광장. 모든 순례자가 이 한 지점으로 모여 완주를 축하한다. 필자 제공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종착점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다. 언덕 넘어 성당이 어렴풋이 보이면 모든 순례자가 감격에 겨워 울먹인다. 사무국에 들러 완주 도장을 받는 순간까지 그 감동은 계속된다. 순례길에 첫발을 디딘 이유는 수만 가지가 넘겠지만, 길 위에서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스스로 더 성장했다고 믿게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앙적 성찰을 통해 영성과 내면을 고양하는데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걸어볼 가치가 있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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