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폭행사망에 얼룩진’ 명량대첩축제…전남도는 그래도 자화자찬
불리한 내용 쏙 뺀 보도자료 배포…도민 “들고 날때 구분 못해”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최근 끝난 명량대첩축제에 대한 전남도의 홍보가 논란거리다. 전남도가 축제의 부정적 내용은 피하고 성과에만 치중하는 등 주최 측 입장만 강조하는 일방적 홍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량대첩축제는 개최하기 전부터 개그맨 다나까 출연을 둘러싼 왜색 논란으로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행사 기간 내내 극심한 교통체증 등으로 관광객들로부터 큰 불만을 샀고, 급기야 축제장에서 폭행사망 사건까지 발생해 축제에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홍보자료에는 이를 초래한 기획력 부족과 안전관리 소홀, 기반시설 미진 등 불리한 부분은 쏙 빼놓고 수십만의 방문객을 불러 모아 큰 감동을 선사했다는 찬사 일색의 홍보 내용만 잔뜩 실었다. 이에 평소 전남도정에 우호적이었던 도민들조차 "들고 날 때를 구분 못한 홍보"라며 혀를 찼다. 방문객들이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호소하고,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로 반일 감정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사리에 맞지 않게 '선택적 홍보'에 열을 올려 행정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성없는 '선택적 홍보' 논란…찬사 일색
명량대첩축제는 1597년 조선 수군과 전라도민이 일본 수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세계 해전사에서 빛나는 전승을 기념하는 호국 역사·문화축제다. 9월 8일부터 사흘간 울돌목이 위치한 전남 해남군 우수영관광지와 진도군 녹지관광지 일원에서 열렸다.
전남도는 행사 마지막 날인 10일 '명량대첩축제, 글로벌 역사문화축제 성장 발판'이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3매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미디어 해전과 드론·불꽃쇼…외국인·엠지세대 등 17만여명 몰려'라는 부제도 달았다. 그러나 자료가 시종일관 '탄성을 자아냈다' '큰 호응을 받았다' '감동을 전달했다' '즐거움을 선사했다' '북적였다' 등 자화자찬 일색으로 채워졌다.
먼저 전남도는 자료에서 명량대첩축제가 울돌목 일원서 확장현실을 활용한 미디어해전, 드론·불꽃쇼 등으로 외국인과 엠지(MZ)세대 등 관광객 17만 명이 몰려와 글로벌 역사문화축제로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며 10일 막을 내렸다고 밝혔다. 방문객 수 증가나 외연 확대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축제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은 뜻으로 읽힌다.
이어 8일 개막식에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던 장수 후손들과 중국에서 찾아온 명나라 진린 장군 후손 20여 명이 참석해 명량대첩 승리를 기리는 축제의 의미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개막식 끝까지 남아 명량대첩 승리의 순간을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국내 최초로 시도된 XR이머시브 미디어 해전은 전문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대형 커브드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아나모픽 3D 영상이 더해지며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소개했다.
노브레인 밴드의 개막 축하공연은 행사장이 녹아내릴 듯 열정적 락스피릿을 보여주며 관광객과 하나 돼 명량대첩 승리의 함성을 더했다고 치켜세웠다. 해남과 진도의 축제장 곳곳에 마련된 풍성한 체험행사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했다고도 자료에 나와 있다.
'왜색 시비' 자초…기획력 부족 드러내
그러나 '명량대첩축제'는 열리기도 전에 왜색 논란으로 어수선했다. 축제집행위는 지난달 19일 축제 공식 홈페이지와 SNS 계정 공지 게시물에 스페셜 게스트로 다나카 유키오(개그맨 김경욱)가 특별 축하쇼를 선보인다는 글을 올려 반일 감정이 확산하기도 했다. 반전 기획을 통해 애국을 표현하자는 취지였으나 축제 인스타그램 계정 등에는 비판글이 쏟아졌다.
다카나가 일본 유흥업소 남성 종사자를 콘셉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명량대첩축제 게스트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명량대첩축제 집행위 측은 다음날 오후 1시쯤 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즐겁고 유쾌해야 할 축제에 많은 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한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후약방문격으로 이미 축제 권위가 추락한 뒤였다.
축제장 찾은 관광객들 '황당하다' 반응
축제장을 다녀 온 관광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 아무개(58·전남 나주)씨는 "올해 명량축제가 역대 최대 관광객을 불러 모은 만큼 전남도 입장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런데 마치 축제가 방문객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너무 속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반시설 부족 등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보다는 과잉 홍보가 오히려 전남도를 향한 비판을 부추기를 꼴이 됐다.
행사기간 내내 방문객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주차공간도 부족해 아예 차량을 세워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속출했다. 한 관광객은 "길게 늘어선 교통체증과 주차난에 애를 먹었는데도 '성과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교통난 해소는 축제행정에 속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진도 녹진 쪽 행사장에서는 화장실이 부족해 길게 줄서 기다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교통난 해소는 축제행정 아니냐"
축제장 사정에 밝은 해남 문내면의 한 주민은 "행사장의 관광객 수용 규모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이 때문에 5만 명 이상이 찾는 주말 휴일이면 주차장이 모자라 외지 관광객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부근 사유지 매입을 통해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지 않으면 연례행사처럼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축제장에서 폭행당한 50대 병원 치료 중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 9일 오후 4시 30분쯤 진도 녹진 명량대첩축제장 주말장터 콘테이너박스 뒤편에서 지인 박아무개씨에게 폭행을 당한 50대 남성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다음날 오후 숨졌다. 경찰은 말다툼을 벌이다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남지역 한 대학교수는 "주최자 입장에서 축제 성공여부를 방문객의 수에 치중한 나머지 방문객 입장에서 관광 편의 제공과 축제 기반시설 확충에 치중하기보다는 성과중심 홍보에 치중해 논란을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란한 '언론플레이' '홍보플레이'에만 힘을 모은다면 축제를 둘러싼 문제점은 연례적으로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에 일각에선 전남도가 편중된 홍보를 하는 것은 깊이 반성할 대목이지만, 이를 들어 축제의 성과나 지자체의 홍보업무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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