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는 시작됐다…푸틴의 목표는 ‘커다란 북한’? [특파원 리포트]

이정민 2023. 9. 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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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반대" 자리 내던진 유일 러시아 외교관…"조국 부끄럽다"며 망명길

보리스 본다레프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 외교관으로 제네바 러시아 대표부의 참사관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출근하던, 예측 가능한 도돌이표 생활을 하던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바뀌었다고 그는 회상합니다.

본다레프 씨는 지난해 말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자신이 느낀 러시아 정부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푸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침공하고 그 대가로 가해진 제재는 무기 생산과 안보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됐는데도, 공무원에게는 '예스맨'이 되거나 입을 닫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도록 분위기가 바뀌었단 겁니다.

그는 외교관 신분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줄은 작전 당일까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더 이상 그대로 지켜보기 힘들다고 느꼈다는 그는 결국 전쟁 석 달 만인 5월 말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동료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는 "조국이 부끄럽다", "침공은 심각한 범죄"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전쟁 이후 러시아 외교부를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적으로 나온 외교관입니다. 현재는 망명 중입니다.


■ "북한과의 인기 없는 협상…미국 정권 교체 기다리며 버티기"

본다레프 전 참사관은 11일(현지 시각) K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 외교관 출신으로서 보는 북한과 러시아의 최근 밀월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외교에서 드물게 보는 광경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과거엔 북한 핵 보유 등을 반대하는 데 한 표를 던졌던 나라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에게 북한은 모두 김 씨 일가를 사랑하고 매우 전체주의적인 '만화 국가(cartoon country)'로 생각됩니다. 유엔 안보리 제재 때문에 두 나라 간 무역 관계도 거의 없죠. 러시아는 모든 안보리 결의에 찬성했었습니다. 북한과 거래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요즘 러시아에선 '푸틴이 러시아를 거대한 북한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돕니다. 핵을 가진 똑같은 전체주의 정권이지만 매우 크고 예측할 수 없는 나라로요."

"(북한과의 협상은) 러시아가 위대하다고 여기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사실 꽤 인기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나라인 북한에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푸틴과 주변인들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에 절박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다는 데 대한 절박함이 있을 거예요. 푸틴은 미국의 새 대통령, 아마도 현재 미국 행정부와 다른 (우크라이나를 덜 지원할) 공화당 대통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살아남아야겠죠. 그러니까 자원이 필요하고 군수품이 필요하고, 러시아는 그만큼을 생산할 수 없으니 사방팔방에 그걸 구하러 다니는 겁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 동방경제포럼 행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며 차기 대선에 다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편을 들었습니다. 본다레프 전 참사관은 여느 정상회담처럼 북-러 정상회담의 내용도 이미 다 합의된 상태에서 "푸틴이 김정은에게 이 거래가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한 자리"라고 회담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11일(현지시각) KBS와 인터뷰하고 있는 보리스 본다레프 전 러시아 외교관


■ '주고 받기' 합 맞을까…러시아와 북한의 '거래 목록'은?

미국은 물론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가장 북한에 원하는 것은 '탄약 부족분'이며, 북한은 반대급부로 식량 등의 경제 지원과 무기 관련 첨단 기술을 원한다고 짚고 있습니다. 본다레프 전 참사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재래식 전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짚었습니다. 북한에 최대한 많은 걸 요구할 거고 북한에 주는 반대 급부도 생각보다 폭넓을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러시아는 북한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옛 소련식 무기 공급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런 소련식 무기와 탄약, 포탄 등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몇 달 분량은 갖고 있다는 거죠. 소련제 무기들을 가져오면 탄약은 물론 탱크, 총, 대포, 다연장로켓포도 바로 호환해 쓸 수 있습니다. 아직은 섣부른 전망일 수 있지만 북한이 러시아 전력 강화를 위해 군을 파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북한에 제공할 반대 급부로) 돈이나 식량이 가장 우선이겠죠. 러시아는 북한에 보낼 수 있는 곡물을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군사 기술에 더 관심이 있죠. 푸틴이 핵이나 탄도미사일 등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 항공 스텔스 기술이나 사이버 기술을 제공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러시아 정치 전문가 집단이 푸틴에게 러시아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건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핵 비확산 정책을 없애고 핵을 가진 국가를 늘리는 게 세계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 거란 건의였죠. 완전히 헛소리지만, 현실과 맞닿아있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이나 다른 곳에서 핵 위협을 더 많이 만들어 미국에 협박을 보내려 할 수 있습니다. 범죄자처럼요. 어쩌면 북한을 미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북-러 관계 어디까지?…"서로를 이용할 수 있는 한"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지겠냐는 질문에 본다레프 전 참사관은 "그들이 서로를 이용할 수 있는 한" 관계가 이어질 거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푸틴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목표를 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다. 10년 후, 혹은 15년 후의 부작용에 대해 전혀 생각 안 할 수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데까지는 관계가 이어질 겁니다. 러시아가 북한을 생각하는 것보단 북한이 러시아를 더 중시할 거예요. 러시아는 포탄이나 지뢰, 로켓 같은 걸 (북한에서) 몇천 개 더 사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러시아는 북한이 갖지 못한 많은 기술을 갖고 있죠. 병력 수준도 훨씬 낫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의 사업 프로젝트 같은 것도 얻길 원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북한의 (무기 조달 능력이) 텅 비게 되고, 러시아에 팔 탄약이 더 남지 않게 되면, 러시아는 북한에 더 이상 실질적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오후 러시아행에 앞서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북한 조선중앙통신)

이 점에서 특히 중국을 눈여겨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7월 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본다레프 전 참사관은 한 기고에서 "김정은은 중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압력을 가할 경우 러시아가 맞대응해주길 바랄 것"이라고 북-러 관계 밀착의 이유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지정학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판단입니다.

중국이 북-러 관계 밀착에 끼지 않더라도 곤란해질 순 있다는 평가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의 군사훈련 같은 밀착엔 결국 나서지 않을 거로 봤습니다.

"중국은 북한과 특별한 관계죠. 김정은이 러시아에 군수품을 판다면 중국이 이를 승인한 거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의문이 제기되는 거죠. 만일 북한이 멋대로 했다고 해도 '그럼 중국은 북한의 행동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동의 안 한다고 하면, 그럼 이 지역을 대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중국이 또 받게 될 수밖에 없어요."

"중국은 국제 평화와 안보, 유엔 헌장을 옹호한다고 말하죠.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난하지 않아요. 매우 정교한 입장입니다. 중국은 이걸 더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의 이미지를 망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만일 북한과 연관되면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유엔 결의를 어겼다고 말할 거니까요. 중국은 서방과 대결할 준비를 꾸준히 해 왔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여길 겁니다. (북·중·러 3국 군사훈련)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러시아와 북한은 둘 다 '왕따'니까 잃을 게 없겠지만, 중국은 잃을 게 많죠. 중국이 모든 것을 잃는 위험을 택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망명 러시아 외교관이 본 북-러 정상회담 “러, 버티려 무엇이든…”
https://news.kbs.co.kr/news/view2.do?ncd=777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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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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