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국민들 어쩌나”…‘강제실종 방지법’이 실종됐다 [이런정치]
21대 국회 끝나면 임기 만료로 폐기
피해자 “손배 소멸시효는 독소조항”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1. “파출소 안에 잠깐 앉아 있어라, 아버지 어디 좀 다녀올게.”
1984년 10월의 어느 날. 아버지는 당시 9살이던 나와 세 살 위인 누나를 파출소에 맡기고 어딘가로 향하셨다. 아버지를 파출소 안에서 기다리던 중 검은색 지프차가 와서 나와 누나를 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것이 ‘형제복지원’ 차량임을 알았다.
“어떻게 여기 들어왔니?”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고 나서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집 앞에서 놀다가 잡혀 왔다”, “경찰이 집을 찾아준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차에 실어서 여기로 보냈다”고 답했다. 파출소 앞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나의 아버지도 이후 형제복지원에서 다시 만났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실종자 유가족 모임 대표)
#2. 어머니는 아버지의 퇴직 처리를 하지 않으셨다. “돌아오면 일을 하셔야지”라는 이유였다. 강릉 MBC PD셨던 아버지는 1969년 KAL기에 탑승한 채 납북됐다. 북한은 1970년 2월 납북자 전원을 송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말을 바꿔 1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11명 중 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돌아올 것’이란 믿음도, 우리 가족도 무너졌다.
정부가 납치 피해자들의 송환과 석방을 북한에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길 바랐지만, 지독한 침묵과 무관심에 수차례 좌절했다. 국회에서도 강제실종방지에 관한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모두 강제실종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범죄가 끝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없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한평생 기다리셨던 어머니는 52년의 기다림 끝에 2021년 돌아가셨다. (황인철 KAL기 납북자 가족회 대표)
사라진 가족을 소식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것은 드라마 ‘무빙’ 속 봉석이네 가족만의 얘기가 아니다. 단순 가출이 아닌 비자발적 실종, 조직적 납치나 살해, 감금 등 자유를 박탈당한 본인과 그 가족들은 모두 이러한 ‘강제실종’ 이후 삶이 황폐해졌다고 말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 3월 발간한 ‘아물지 않는 상처(북한에 의한 강제실종 및 납치)’ 보고서에 따르면, 6·25 전쟁 중 우리 국민 약 10만명이 납치됐고, 미송환 국군 포로는 최소 5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쟁 후 납치돼 귀환하지 못한 국민도 516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최근에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파악되는 국민은 10여명에 달한다.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은 ‘강제실종’을 “국가 기관 또는 국가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하에 행동하는 개인이나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사람을 체포, 감금, 납치나 그 밖의 형태로 자유를 박탈한 후 이러한 자유의 박탈을 부인하거나 실종자의 생사 또는 소재지를 은폐하여 실종자를 법의 보호 밖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유엔 총회는 2006년 12월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강제실종방지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 협약에 가입했고, 2월 3일부로 협약이 발효됐다. 이달 기준 협약이 발효 중인 당사국은 총 72개국에 달한다.
당면한 과제는 발효된 협약의 이행을 위한 입법 조치다. 현재 이를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두 법안은 국회에 1년에서 3년 가까이 붙잡혀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범죄 처벌, 강제실종의 방지 및 피해자의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전 의원은 2021년 1월, 김 대표는 지난해 5월에 법안을 발의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자동 폐기된다. 두 법안은 전날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에 상정됐다.
법안 속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소멸시효’를 정한 조항이 강제실종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들에겐 ‘독소조항’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 중심의 유엔 협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의 법안은 강제실종 범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의 단기 소멸시효를 10년, 장기 소멸시효를 30년으로 규정한다. 전 의원의 법안의 경우, 강제실종으로 인한 피해나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20년, 피해발생으로부터 50년을 소멸시효로 둔다.
황인철 대표는 “강제실종 범죄는 끝나지 않았는데 그 권리 구제에 관한 배상을 소멸시효에서 완성한다고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가 발생한 날부터’가 아니라 ‘범죄의 종료’, ‘완료’ 시점으로 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만드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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