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유머러스한 만남, 디자인 그룹슈퍼포지션
새로운 시각으로 전통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가구디자이너 그룹 슈퍼포지션. 공간에 어우러지는 형태와 생활 방식에 대한 이해를 더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서정선, 김종민, 서선광은 각각 전주, 부산,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각자 자유로운 방법으로 작업하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주기적으로 모여서 일상과 작업을 공유한다. 세 사람은 2021년 팀을 결성한 이후 2년간 많은 성과를 거뒀다. 2021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영 앰배서더로 선정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MAP OF THE NEW ORIGIN’(2021)의 기획과 전시를 맡았고, '서울리빙디자인페어’(2022)와 '홈테이블데코페어’(2022) 그리고 영국 사치갤러리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년에는 더 스트롤 갤러리, 지우헌 갤러리, 아줄레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는 전시보다는 브랜드 간 협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슈퍼포지션은 공간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때마침 경기 화성에 자리 잡은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섹션’의 제안으로 VMD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한국적인 DNA를 모던하게 풀어낸 공간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신예 아티스트 그룹 슈퍼포지션을 만났다.
서선광 | 슈퍼포지션은 직관적으로 말하면 한국적인 것을 모던하게 표현하는 가구 스튜디오입니다. 저희가 다른 브랜드랑 차별점이 뭘까를 생각해봤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것을 현대로 가져와서 동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져요. 실제로 저희 작품에는 아크릴, 스테인리스처럼 요즘 소재를 사용하거든요. 한국적인 것이 시대에 맞게 변화했을 때는 재료와 디자인도 그 시대에 따라 재해석돼야 한다고 봐요. 정선 디자이너가 그래픽적인 요소를 적용해 작업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고요.
김종민 작가님과 서정선 작가님은 이전에 팀을 결성해서 활동하신 적이 있다고요. 두 분 모두 '전통’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종민 | 저는 이전에 한국적인 건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때 뭔가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만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짜 모던한 한국적인 것은 없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희끼리 쓰는 표현인데, 먼지가 묻어 있더라고요. 과거의 것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서 현대적이기보다는 옛것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때마침 정선 작가도 한국적인 가구랑 옷을 만들고 있어서 같이 의기투합해서 완성하게 됐습니다.
서정선 | 저랑 종민 작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럼 서선광 마케팅 팀장님은 어떻게 합류하신 건가요.
서정선 | 서선광 팀장은 제 동생이에요. 저와 종민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디자인 활동을 하다 보니까 팀에 디자이너도 필요하지만 마케팅이나 그 외의 것들을 조율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더라고요. 주변에 적합한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제 동생이 눈에 띄었죠. 해양경찰학과를 졸업하고 해양선 선원을 하다가 개인 카페를 운영 중이었거든요. 한번 모여서 같이 해보자 해서 팀에 합류하게 됐어요.
전통적이지 않은 소재로 한국 전통공예를 재해석한 작품이 신선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가구디자인을 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요.
서정선 | 저희는 옛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좀 더 집중해서 디자인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분들은 많은데, 너무 옛것을 그대로 복구한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가구도 시대양식에 따라 변화할 텐데,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많은 얘기를 한 끝에 옛것의 느낌, 그 포인트만 가져와서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전략을 썼어요. 여기에 종민 디자이너가 담당하는 그래픽디자인을 믹스해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그 당시에는 저희 나름대로 신선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아크릴 같은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김종민 | 우리 가구를 양산품으로 만들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아크릴 같은, 지금 가장 많이 쓰이는 현대적인 소재를 선택하게 됐죠. 공예로만 머물면 많은 사람이 즐기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특정인들만 향유하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문화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저희 가구가 싼 건 아니지만(웃음).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정선 | 대부분의 작가님은 이런 오브제를 만들 때 일일이 작업하실 텐데, 저희는 생산성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외형을 잡아주는 틀을 제작했어요. 틀로 찍어서 은 가공과 폴리싱 가공을 통해 표면을 매끄럽게 하죠.
흙으로 빚은 도자 소재가 아닌 스테인리스 소재를 선택한 것도 흥미로웠어요.
김종민 | 저희도 레퍼런스 서치를 해봤는데, 이런 소재가 있을 법도 한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보게 됐어요.
처음 시도해보는 거니까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도 많이 하셨나요.
서정선 | 그렇죠. 한 스무 번 정도 실패했는데, 제작해주시는 사장님이랑 계속 조율하면서 점점 제대로 된 형태를 띠기 시작했죠.
‘도자’ 시리즈는 미러 가공을 거쳐 거울처럼 모든 공간을 비추다 보니 두는 장소 따라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서정선 | 작품 설명에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현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적어놨어요. 왜냐면 도자기의 형태는 과거지만, 인공적인 소재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세요. 저희가 자체적으로 평가했을 때 예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픽셀화한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디지털 자개’ 시리즈는 품절될 만큼 인기라고요. 어떻게 작업하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김종민 | 자개는 조개껍데기 조각을 일일이 붙여서 완성한 것을 말하는데요. 저희는 마우스 픽셀을 오랜 시간 공들여서 오브제에 넣었는데 자개와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 자개’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해서 탄생한 거예요. 아크릴 겹겹마다 그래픽을 넣어서 입체감 있게 만든 게 포인트입니다. 디지털 자개 시리즈 같은 경우는 그래픽 작업만 거의 하루도 안 쉬고 한 달 정도 해요.
소재나 디자인, 기법, 픽셀 작업 등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김종민 | 저는 우주나 빛에 관한 책에서 많이 얻는 것 같아요. 한국적인 소스를 분해하는 작업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분해한 것들 중 어떤 걸 빼고 집어넣을 건지, 어떤 걸 현대적으로 표현할 거고 어떤 걸 전통으로 남겨둬야 슈퍼포지션이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릴지 그런 고민들을 주로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브랜딩에도 접근해야 하니까요. 사실 영감이기보다는 연구나 설계에 더 가깝죠.
서정선 | 저는 디자인할 때 주변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데요. 아무래도 전주에 살고 있다 보니까 한옥이나 전통가옥을 유심이 보면서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많아요. 가끔 우스갯소리로 우연성에 의존한다고 표현하기도 해요. 제가 눈이 안 좋은데,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이니까 디자인이 독특하고 우연적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종민 디자이너랑 조율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터뷰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섹션’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서선광 | 섹션은 저희 슈퍼포지션이 공간 디자인에 참여한 곳이에요. 섹션 대표님이 제안을 해주셔서 VMD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각 섹션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공간을 조성했고, 저희 외에 '신유 스튜디오’라는 디자이너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저희 공간은 '디지털 가든’이라는 콘셉트로 꾸몄는데요. 옛 선조들은 자연을 너무 좋아해서 건축설계도 자연에 맞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옥은 언제나, 어느 공간에서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모듈식 구조잖아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자연을 좋아하는 민족인데 좀 더 새롭게 풀어볼 수 없을까 해서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요즘은 우리의 삶과 디지털 환경이 필연적으로 밀접할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요. 디지털 속 자연이 현실로 뛰쳐나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김종민 | 가능성? 저희가 팀으로 활동한 지 2년 정도 됐지만 사실 섹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도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적인 것들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기획하는 것에 가장 신경 쓰고 있죠.
서정선 | 제가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건 이미지랑 합이요. 다양한 작업을 위해 노력은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서선광 | 저는 서로 간의 신뢰요. 가구디자인이든 인테리어 설계든 담당한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섹션 공간 프로젝트도 어떻게 보면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잘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나요.
김종민 | 크게 말하자면 한국적인 요소가 이렇게까지 모던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적인 가구, 한국적인 오브젝트를 넘어 공간이든 대형 설치든 한국적인 이미지로 새롭고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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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슈퍼포지션
오한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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