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직접 만들고, 캠핑장 오징어게임… 추억의 레트로 ‘음성 갬성’[농촌愛올래]
(10) 충북 음성 ‘니나농’ 투어
선돌메주농원 조리실 찾아
물엿 없이 장 담그기 ‘뚝딱’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아”
계곡 발 담그고 산림욕 ‘숲멍’
곤충 직접 만지는 ‘생태탐방’
“여행 즐기며 힐링하는 시간”
음성=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어어∼ 이게 되네? 10분 만에 장이 만들어지는 게 정말 신기하네∼.”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났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0일 충북 음성군 선돌메주농원 조리실에 서울·대전·세종 등에서 온 관광객 20명이 고추장 만들기에 나섰다. 보통 고추장은 찹쌀을 불려 밥을 짓고, 엿기름으로 조청을 만들고, 고춧가루, 물엿, 액젓 등과 함께 버무려 만들기 때문에 재료 준비에만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하지만 이날 관광객들이 받아든 건 단 5개의 분말 키트. 쌀누룩·메줏가루·팽화미·고춧가루·소금이 담긴 봉지였는데, 커다란 그릇에 가루들을 쏟아 섞은 후 물 500㏄를 붓고 주걱으로 젓는 게 고추장 만들기의 전부였다. 살림에 능숙한 일부 관광객들은 “물엿 정말 안 넣어도 되나요?” “이게 정말 끝이에요?”라며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영란(70) 선돌메주농원 대표는 “쌀가루나 보릿가루 대신 팽화미를 넣고, 엿기름 대신 쌀누룩을 활용해서 전분을 익히고 당화(糖化)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며 “3일 아니라 10분 만에 고추장을 만들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엿이나 조청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짠맛만 나지만, 두 달 정도 익히면 단맛이 맛있게 올라온다”며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고, 고추장찌개, 새우젓찌개, 고추장 불고기 등 뭘 해서 먹어도 맛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퍽질퍽해진 반죽을 주걱으로 젓기 시작한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알싸한 매운 향이 코끝을 강하게 찔렀다. 쿰쿰한 젓갈 냄새도 조리실 곳곳을 파고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신기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서울에서 텃밭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옥(70) 씨는 “전통 방식으로 고추장을 담글 때보다 간편하면서 맛도 좋은 것 같다”고 칭찬했다. 친언니와 여행을 함께 왔다는 백미경(56) 씨는 “여행도 즐기고, 이렇게 전통 장까지 챙겨갈 수 있다니 아주 든든하다”며 크게 웃었다.
이날 백미경·명주 자매 가족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즐겼던 고추장 만들기 체험은 ‘음성니나농, 사계절 농촌 탐사대-가을 랩소디’로 1박 2일간 진행된 ‘잼토리’의 여행 코스였다. 음성군은 지역 단위 농촌관광 브랜드인 니나농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니나농은 ‘니랑 나랑 농촌에서 놀자’라는 의미로, 흥겨워하는 감정을 소리로 표현한 니나노의 뜻이 담겨 있다. 니나농에서는 농촌의 다양한 체험, 자연경관, 볼거리, 먹을거리 등으로 구성된 여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올해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여행 프로그램은 ‘음성군 사계절을 보여주는 사계절 농촌 탐사대(1박 2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리얼한 농촌 탐구(3박 4일)’ ‘나만의 여행 스타일대로 고를 수 있는 잠시 멈춤 여행(당일)’ 등이 있다.
관광객들은 전날 음성군 봉학골 산림욕장에서 있었던 ‘숲멍’과 음성문화예술체험촌에서 있었던 ‘곤충생태탐방’, 솔부엉이캠핑장에서 있었던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숲멍은 말 그대로 숲에 들어가서 정자에 돗자리를 펴놓고 ‘멍하니’ 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관광객들은 계곡에서 발도 담그고, 산림욕도 즐겼다. 대전에서 온 이계윤(55) 씨는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산책하고 싶은 사람은 산책하며 각자의 호흡대로 힐링하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곤충생태탐방’은 대전에서 온 유치원생 박수혁(7) 군이 최고로 좋아하는 활동이었다. 박 군은 “곤충들을 눈으로만 볼 줄 알았는데, 직접 만져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오징어 게임’은 50대 이상 어른 관광객들이 좋아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줄다리기·구슬 홀짝·색판 뒤집기 등 어릴 적 해봤던 놀이를 직접 해봤는데, 이구동성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온 정연미(64) 씨는 “옛날 추억의 놀이를 하면서 어찌나 즐겁게 뛰었는지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음성니나농, 사계절 농촌탐사대-가을 랩소디’는 오는 9월 16∼17일·23∼24일, 10월 14∼15일·21∼22일까지 진행된다. 사계절 농촌탐사대는 사계절 음성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가을 랩소디가 끝나면 올해 겨울엔 ‘겨울 밤밤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군밤과 군고구마를 즐기며 겨울밤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체험 등이 준비돼 있다.
‘재미+스토리’ 여행상품 개발… “올해 단체관광객 3배 늘 것”
■ 박화정 ‘잼토리’ 대표
“충북 음성군이 산업단지가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와 산업관광이 있는 매력적인 곳이란 걸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박화정(36·사진) 잼토리 대표는 여행업계에서 15년이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서울에서 주로 해외여행 관광객을 모집·인솔해 외국을 드나들던 그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닫히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여행객이 끊겨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했고, 우연히 음성까지 와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춰 여러 기업이 둥지를 튼 음성이 눈에 확 들어왔다. 관광지로서 새롭게 발견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2021년 5월 우연히 음성에서 ‘관광두레 사업’에 참여할 주민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음성에선 지자체와 9개 기업이 협약을 맺어 팩토리 투어 센터를 건립하는 등 산업관광 활성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던 때”라면서 “관광객들에게 음성이 매력적이게 다가가지 못했을 때였는데, 제가 뭔가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고민 없이 군에 정착했고 관광두레 PD, 기업 대표 등과 소통하며 약 7개월 동안 상품 개발에 몰두했다. 수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 덕에 박 씨는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우선 그는 음성군 내 10개 기업의 산업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재미있는 의약 이야기 ‘한독’, 춤추는 양변기 투어 ‘인터바스’, 초등생을 위한 ‘잼’있는 산업관광, 어른이를 위한 ‘잼’있는 산업관광 등은 공장을 견학하거나 기업의 기술을 체험하는 산업관광 상품이다. 음성 흥미진진 팩토리 투어 여행상품은 출시 3일 만에 예약이 마감되는 등 인기가 좋다.
박 씨는 산업관광뿐만 아니라 20년 이상 거주한 마을 주민들도 몰랐던 복사꽃 길을 발굴하는 등 테마 여행상품을 선보였다. ‘복사꽃 길 따라’ 테마 여행상품은 지난해 충북 대표 여행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 씨는 올해 잼토리를 찾는 단체 관광객 수가 지난해 500여 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재미를 주면서도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며 “음성이 널리 알려지도록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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