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져? 첫회만 참으면 재밌어…드라마 ‘1회 올인’ 법칙 깨졌다

남지은 2023. 9. 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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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피디(PD)들이 수십년간 지켜온 성공 법칙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오티티 스트리밍으로 몰아 보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드라마를 본방사수 하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 입소문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것이 시청 패턴이어서 제작진도 1회에 공력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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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가 늘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무빙’.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1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라!

드라마 피디(PD)들이 수십년간 지켜온 성공 법칙이다. 연간 방영되는 드라마 수가 100편이 넘어가면서 시청자 잡기 경쟁이 치열해져서다. 볼 것 많은 시대에 시청자들은 웬만해선 다음 회를 기다리지 않는다. 새 드라마가 시작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김없이 “어느 것이 재미있냐”는 질문이 올라온다. 검증된 작품만 골라 보고 시간 낭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한국 드라마를 지탱해온 ‘1회 올인’ 법칙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을 본격화한 2~3년 전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끄는 디즈니플러스 ‘무빙’도 1~7회까지는 대체로 “지루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조인성과 한효주가 등장하고 스토리가 본격화한 8회부터 “재미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공개된 ‘너의 시간 속으로’(넷플릭스)는 초반 지루함을 견뎌내야 시공간 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그나마 흥미로워진다. 지난 3월 ‘방과 후 전쟁활동’(티빙)도 “2화까지는 일단 참고 보라”는 게 시청자들의 주된 평가였다. 초반에 스타급 배우가 아예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스크걸’(넷플릭스)은 1~2회를 신인 배우 이한별로 시작한 뒤에 나나와 고현정이 나왔다.

1회에 올인하지 않으면서 신인들이 주역인 작품도 많아졌다. ‘마스크걸’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전개 흐름이 이렇게 바뀐 것은 몰아보기 중심으로 시청 행태가 변화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오티티 스트리밍으로 몰아 보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드라마를 본방사수 하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 입소문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것이 시청 패턴이어서 제작진도 1회에 공력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다”고 풀이했다.

1회에서 승부를 걸지 않게 되면서 드라마 형식도 바뀌고 있다. ‘무빙’처럼 다양한 장르를 한 시리즈에 녹이는 방식까지 생겨난 것이다.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 구성이 다채로워졌다. ‘무빙’은 판타지와 로맨스, 첩보물의 장르적 속성을 회차별로 다르게 보여주는 모듈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또 캐릭터들이 합종연횡식으로 헤쳐 모이는 것도 이전 드라마와 다른 특징”이라고 짚었다.

초반의 지루함을 견뎌야 시공간 이동이 등장하는 ‘너의 시간 속으로’. 넷플릭스 제공

몰아보기가 주 시청 행태로 자리잡자 지상파나 케이블 등 기존 방송사는 편성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본방사수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면서 1주일에 2회라는 기존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제이티비시(JTBC)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금·토·일 주 3회 방영이라는 파격적 편성을 했다. 주 1회 편성 드라마도 나왔다. 문화방송(MBC)은 오는 10월 차은우 등이 출연하는 ‘오늘도 사랑스럽개’를 시작으로 수요드라마를 선보인다.

1회에 올인하지는 않더라도 드라마의 기본적인 재미는 처음부터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회만 참으면 된다’는 시청자 평가를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로 긍정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한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의 기본은 다음 회차를 보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구성의 묘미를 살려 흥미를 돋워야 하는데 요즘에는 이 구성의 미가 살지 않는 드라마가 많다”며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골고루 충실하게 재미를 주려고 오랜 시간 고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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