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허점 이용한 5연투로 일군 동메달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야구를 막 배운 투수는 속구부터 던진다. 있는 힘껏 포수 미트로 공을 뿌린다. 그러다가 커브의 맛을 알게 된다. 속구와 달리 많은 힘을 줄 필요가 없다. 그저 그립을 달리하고 팔꿈치만 조금 틀면 된다. 타자는 12시 방향에서 6시 방향으로 떨어지는 공에 헛스윙을 연발한다. 마운드 위 투수는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 던지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는가. 미국 스포츠 의학 대학(American College of Sports Medicine)은 커브의 경우 만 14살 이상부터 던지는 것을 권한다. 즉, 중학교 2학년 즈음까지는 속구만으로 타자와 승부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커브와 함께 가장 보편적으로 던지는 변화구인 슬라이더는? 만 16살 이상부터 던지라고 권장한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부터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뼈, 근육이 성장 중인 어린 투수들의 어깨, 팔꿈치 보호를 위해서다. 물론 이와 같은 권장 사항을 지키기는 어렵다. 당장의 승부 앞에서는 변화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어른이 통제해 줘야 한다”고.
아마추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는 투구 수 제한과 연투 금지다.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투수의 경우 하루 110개 이상 투구를 금지하고 91~110개를 던졌을 경우 반드시 나흘을 쉬게 한다. 투구 수 31~50개는 1일, 51~70개는 2일, 71~90일은 3일 휴식 등의 규정이다. 그리고 3일 연투를 금지한다.
한국도 비슷하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규정에는 투구 수 1~45개는 의무 휴식일이 없고, 46~60개는 1일, 61~75개는 2일, 76~90개는 3일, 91개 이상은 4일의 휴식일을 두도록 되어 있다. 44개까지는 의무 휴식일이 없어서 이를 편법으로 이용하는 고교도 물론 있다. 예를 들어 전날 43개까지 던지고, 다음날 60개를 던지는 식이다. 그나마 협회 규정 상 투수의 3일 연투가 금지돼 있어 다행이라고 할까.
최근 끝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18살 이하)에도 투구 수 제한과 연투 관련 규정이 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누리집에 있는 18살 이하 대회 규정을 살펴보면 투구 수 1~40개는 의무 휴식일이 없고 41~55개는 1일, 56~75개는 2일, 76~90일은 3일, 91~105개는 무조건 4일을 쉬어야만 한다. 연투와 관련해서는 4일 연투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전날과 다음 날의 투구 수를 합해 40개가 초과하면 3일 연속 투구를 할 수가 없다. 이틀간 투구 수가 41개가 넘으면 무조건 다음날이 의무 휴식일이다. 이영복 대표팀 감독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인천고 3학년 우완 투수 김택연(18)이 서스펜디드 게임 포함 5일 연투(서스펜디드 잔여 게임 포함)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김택연은 6일 21개, 7일 19개, 8일 16개, 9일 24개, 그리고 동메달 결정전인 미국전(10일)에서 98개를 던졌다. 미국전을 제외하고 이틀 합해 투구 수 40개가 넘은 적이 없다. 그의 어깨 혹사 속에 한국은 대회 4년 만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영복 감독은 말했다. “규정에 맞춰서 시합했을 뿐”이라고.
아무리 단기전인 국제대회이고, 로컬 룰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대표팀을 이끄는 수장은 국내 고교(충암고) 감독이었다. 지도자는 사뭇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 선수를 보호할 의무도 있다. 이영복 감독은 투구 수에 따른 3일 연투 금지 규정을 묘수로 피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과연 이것이 맞는 선택이었을까. 이번 대회에서 5일 연투를 한 선수는 김택연 뿐이다.
국제 대회 규정이 어린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내 대회 규정으로 대표팀을 강제하는 방안도 있다. 어른들의 욕심에 야구의 미래를 희생시키지는 말자. 혹사가 투혼이던 시대는 끝났으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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