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산이 너무 싫다던 그녀의 '정상 인증' 소감은…
어느 날 회사 메일로 편지가 한 통 왔다. 클릭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사상 출판사의 김현희라고 합니다.'
지금 내가 월간<山>에 연재 중인 '등산시렁' 꼭지를 엮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릴 때부터 산에 오르는 것이 무서웠던 사람인데 등산시렁을 읽고 신기하면서 부러웠다고 했다. 담당자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며칠 뒤 김현희 과장과 만났다. 그녀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반팔 옷 소매 밖으로 나온 그녀의 팔엔 문신이 가득했다. "등산 정말 싫어!"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스타일리시한 도시적인 이미지와 산은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등산시렁 코너에 관심 갖는 건 둘째치고 나는 그녀와 함께 산에 가고 싶었다. 산에 오르는 것을 무서워하는 출판사 편집자는 어쩌다가 산을 무서워하게 됐을까? 또 그녀는 어쩌다가 문학사상사에서 일하게 됐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나는 그녀에게 제안했다. "산에 가실래요?" 그녀는 "하하하" 어색하게 웃더니 한참 후 "좋아요"라고 답했다. 며칠 뒤 나는 경기도 파주로 갔다.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이 여기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짹, 짹" 새소리가 요란했다. 나무들이 우거진 정글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근무환경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새가 어디 있나? 두리번댔는데, 새 소리는 근처 쇼핑몰에서 설치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훌륭한 유인책이라고 생각했다. 등산 싫어하는 사람에게 저런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면 단박에 산에 가겠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날 내가 준비한 건 무수한 질문 리스트밖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짹짹거리면서 정신 없이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학사상은 어떤 회사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가 여기서 나왔고, 한국에 출판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책들이 문학사상에서 만들어졌다. <문학사상>이라는 문예지를 매달 발행하기도 하고 '이상문학상'도 진행한다. 얼마 전 이 문학상의 저작권 때문에 여러 작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지금은 해결된 듯). 머릿속에 문학을 바탕으로 한 사상이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문학사상사로 가고 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통적이고 엄숙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의 회색 건물 앞에서 피어싱을 하고 팔에 문신을 새기고 모자를 쓴 김현희 과장과 만났다. 그녀가 나를 보자 말했다.
"저 오늘 등산복 입고 출근했어요."
그녀는 치마 같은 상의와 반바지, 반바지 안에 레깅스를 입었고 베이지색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등산화와 양말만 빼고 모두 검정색이었다. 등산하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힙합 하는 가수 같았다. 그녀에게 물어봤다.
"이렇게 하고 출근했는데, 회사에선 아무 말 안 하나 봐요?"
그녀가 답했다.
"하하하, 우리 회사 그렇게 딱딱하지 않아요!"
그녀는 문학사상사에서 8년 일했다(중간에 그만뒀다가 다시 입사했다)고 했다. 회사 분위기가 엄청나게 딱딱한 건 아닌 게 분명했다.
사무실에서 심학산(193.5m)이 가까웠다. 우리는 산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는 심학산에 처음 간다고 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산이 바로 코앞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무실 근처 쇼핑몰에서 새 소리도 틀어주잖아요! 그래도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었단 거죠?"
그녀가 대답했다.
"네, 저는 산 싫어해요. 고등학교가 높은 언덕에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 가기 너무 싫었어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산에 끌고 가긴 했는데, 그때도 너무 싫었어요! 부산이 고향이에요. 어렸을 때 광안리 근처에서 살아 바다는 익숙한데 산은 가까이 있어도 도무지 친해질 수 없었어요. 수학여행이나 극기훈련 가면 꼭 산에 가잖아요. 그때 산에 안 가고 혼자 숙소에 남아 있던 사람이 저였어요."
그녀는 자신의 몸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장소나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이 굉장히 싫다고 했다. 이날도 마음 단단히 먹고 왔다고 했다. 그녀는 어쩌다가 집 앞 울타리를 넘어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나를 만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할 것 같아 정신 없이 몰아붙였다. 질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몸을 사리면 아쉽지 않아요? 더 많은 걸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잖아요. 이번에 산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뭐죠? 과장님, 긴장하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오늘 천천히 갈 거예요. 괜찮죠?"
작렬하는 질문에 그녀는 땀을 훔치면서 대답했다. 어떤 질문엔 대강 대답했고 나 또한 대강 들었다. 내가 한 걸음 가서 질문하면 그녀 또한 한 걸음 나와 답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나는 우리를 애벌레 몸통처럼 묶은 다음 하나 둘, 하나 둘, 천천히 산으로 접근했다. 2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산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외쳤다. "봐요! 여긴 이렇게 시원해요!"
그녀는 웃으면서 동의했다. "아, 그러네요!"
사무실 근처보다 시원하긴 했지만 벌레가 얼굴 주변에서 앵앵댔다. 앞에 가파른 오르막도 보였다. 그녀가 저 오르막을 보면 주저앉을 것 같았다.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팔에 새긴 문신은 어떤 용도죠? 패션의 일종인가요?"
"아, 패션이라기보다, 좋아하면 계속 보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그래서 새겼어요. 이거는 영국 락 밴드 '퀸'의 노래 가사예요.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를 좋아하는데요, 로저 테일러에게 문신을 새겨준 타투이스트를 영국까지 찾아가서 새긴 거예요. 이거는 영화 <반지의 제왕>, 여기는 저의 외할머니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만나보셨어요?"
"아니오."
"등산시렁 산악회 가입하실래요?"
"어, 음, 오늘 하는 거 봐서요."
나는 맥락 없이 질문을 마구 던졌다. 그녀는 정신 없이 대답했다. 오르막의 중간쯤 갔을 때 일격을 날렸다.
"자, 여기서 뒤를 돌아 보세요!"
뒤쪽에 파주 출판단지가 보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 뒤로 한강이 흘렀다. 그 뒤로 또 수없이 많은 건물과 집,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거나 웅장하다거나 할 만한 풍경은 아니었는데, 김현희 과장은 놀란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깜짝 놀란 연기를 한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와! 우리 꽤 멀리 왔네요!"
그 참에 우리는 근처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쉬었다. 진짜 새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나부꼈다. 김현희 과장에게 물었다.
"종아리가 당기나요?"
그녀가 답했다. "아뇨."
"허벅지는 어떠세요?"
"괜찮아요."
그녀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다가 다시 말했다.
"제가 산이 왜 싫은지 알았어요. 이 오르막이오. 오르막 올라가기 너무 힘드네요."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혼나는 기분이기도 했고 그러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정상까지 300m 남았대요. 가볼래요?"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그러기 전에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쉬면서도 계속 얘기했다. 나는 그녀가 이번 기회에 정상에 가야 할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저는 오늘 과장님이 힘들다고, 그만 내려가자고 하면 바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앞에 '정상까지 300m' 안내판이 보이니 욕심이 생기네요. 과장님을 오늘 꼭 정상에 데리고 가고 싶어요. 그래서 정상에서 과장님이 어떤 걸 느낄지 매우 궁금해요!"
그녀가 대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커다란 컴퓨터다. 그렇다면 '경험'은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 머릿속에 뭔가를 입력하는 행위와 같다. 생애 처음 산 정상에 오르는 건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 그 굉장한 경험이 그녀 머릿속에 입력된다면 나중에 어떤 것이 출력되어 나올까? 나는 그것이 기대됐다. 먼훗날 그녀가 이렇게 말했으면 싶은 것이다.
"그날 생애 처음으로 산 정상에 오른 게 제 인생을 이렇게 멋지게 바꿨어요. 자, 그 대가예요. 10억 원을 드릴게요! 가지세요!"
돈 10억 원보다 나는 이번 달 등산시렁에 쓸 이야기로 이것이 꽤 근사한 소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데리고 꼭 산 정상에 서야 했다.
나는 말했다. "자, 이제 그만 가볼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가보죠!"
우리 앞엔 가파른 계단길이 있었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까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전처럼 한 걸음 올라가 질문하고 또 한 걸음 올라가 다른 질문을 했다. 아주 천천히, 오르막을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달팽이보다 느린 속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답답해하거나 조바심 내지 않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았고, 정상은 코앞이었다. 이윽고 정상 직전에 나는 그녀를 앞에 서게 해 정상을 먼저 밟도록 했다. 우리는 꼭대기에 마련된 정자에 올랐다. 사방으로 경치가 환했다. 멀리 북한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정자의 이곳 저곳을 기웃대면서 경치를 감상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말했다.
"와, 이거는 저한테 좀 큰데요,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제대로 못 할 거라는 생각이 꽤 커서 섣불리 덤비지 못하는 일 많잖아요. 그런데 오늘 그중에 어떤 걸 해냈어요. 낮은 산이어도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게 저한텐 되게 큰 의미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감동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날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동했다. 돈 10억 원 따위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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