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대신 대학원생 자를 판… ‘카르텔 몰이’ R&D예산 삭감 후폭풍

고병찬 2023. 9.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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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은 연간 평균 4~5개 과제를 맡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125만원) 수준인 월 150만원가량의 인건비를 벌어요. 지금도 과외 등 활동을 하며 연구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습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사과정생 ㄱ씨는 "현재 소속되어 있는 과제가 내년 2월에 끝나는데, 예산 삭감으로 과제가 줄어들면 내년에는 인건비를 벌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며 "만약 예산이 줄어들어 연구실이 과제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학업과 연구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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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예산안]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원생들은 연간 평균 4~5개 과제를 맡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125만원) 수준인 월 150만원가량의 인건비를 벌어요. 지금도 과외 등 활동을 하며 연구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습니다.”

지난 7일 이동헌(24)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전기및전자공학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총액(25조9천억원)이 올해 대비 16.6% 줄어든 가운데, 일자리·생계 위협을 우려하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다.

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사과정생 김아무개(25)씨는 “안 그래도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에 유학을 간다거나 취업을 하는 등 국내 학계를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더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사과정생 ㄱ씨는 “현재 소속되어 있는 과제가 내년 2월에 끝나는데, 예산 삭감으로 과제가 줄어들면 내년에는 인건비를 벌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며 “만약 예산이 줄어들어 연구실이 과제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학업과 연구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 예산도 크게 깎일 것으로 보여 이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연구 경험을 쌓거나 생계비 등을 버는 대학원생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구회 소속 25개 정출연에는 학생 연구원 3635명, 박사후연구원 1471명이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한 정출연 소속인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정규직도 10% 정도 임금 삭감이 예상되나 더 심각한 것은 석·박사 후 연구원과 학생 연구원과 같은 비전임 연구자”라며 “전체적인 연구비가 줄면 과제 책임자들이 연구를 위한 장비 구매를 포기할 것이냐, 비정규직을 해고할 것이냐를 두고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정출연 박사후연구원(포닥)이라고 소개한 한 연구원은 온라인 연구인력 채용정보 누리집에 “2년 계약 포닥으로 일하고 있는데, 예산 부족으로 이번 해까지만 하고 나가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다른 연구실도 계약직들 다 내보낼 거라고 한다”고 적었다.

정부가 쏘아 올린 공은 엉뚱하게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군 복무’ 걱정거리도 안겼다. 정출연 등의 박사후연수생 정원이 줄어들면 이곳에서의 근무로 군복무를 대체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텍(포항공대) 박사과정생인 박아무개(26)씨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병무청은 정출연 등에 박사후연수생 정원이 줄어도 일반 기업의 정원을 늘리면 총정원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대체복무 기회 축소로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설명했다.

카이스트 학부 및 대학원 등 9개 대학·대학원 총학생회는 알앤디 예산 삭감에 대해 공개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열악한 연구 환경과 불안정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밤낮으로 학업 및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미래의 과학자를 목표로 노력하는 학생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알앤디 예산 삭감 재고를 요청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카이스트 박사과정생 김아무개(25)씨는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애매한 신분으로 최소한의 연구비를 받아 생활하는데 ‘카르텔’이라고 몰아대니 정말 버티기 힘들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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