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式 마술적 리얼리즘…'비선형적 불규칙' 건축의 속마음

이재훈 기자 2023. 9.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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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6시 정규 3집 '도시의 속마음' 발매
'미스터리 빌리지'·'도시의 건물' 더블 타이틀곡
CJ문화재단 '튠업'·'K팝 스타4' 출신…올해 데뷔 10주년
[서울=뉴시스] 이진아. (사진 = 안테나 제공) 2023.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이진아(32)가 5년 만에 발매하는 정규 음반인 '도시의 속마음'(Hearts of the City)은 그녀 식(式) '천변풍경'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소설가 박태원의 '천변풍경'에서 천변(川邊)은 지금의 청계천 주변을 가리킨다. 이 소설은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정수로 통한다.

반면 이진아가 13일 오후 6시 음원 플랫폼에 발매하는 정규 3집 '도시의 속마음'은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로 환상곡(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악상을 자유로이 적은 형식) 분위기의 '미스터리 빌리지(Mystery Village)'를 통해선 자신만의 '천변풍경'을 지어낸다.

또 다른 타이틀곡인 '도시의 건물'을 빌려와 '환유의 풍격'으로 부연하자면, 이진아의 음악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한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 같은 기이한 변주로 마치 열 곡을 붙여놓은 듯한 '미스터리 빌리지'의 변화무쌍함이 그 보기다.

그래서 '도시의 속마음'은 영국 작가 겸 수학자 루이스 캐럴(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접점을 이룬다. 이 판타지 소설은 토끼굴에 빠진 꼬마 아이가 단순히 좌충우돌하는 동화가 아니다. 철학, 수학의 요소들이 다분하고 끊임없이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정체성 관련 은유가 녹아 있다. 욕망이 분출하는 도시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미스터리 빌리지'), '불확정성의 원리' 앞에 당황하지 않고 반갑게 삶을 탐험하자는 제언('도시의 건물')도 그런 맥락이다. 이 두 타이틀곡을 비롯해 총 12곡이 실린 이번 이진아의 음반은 그래서 시적(詩的)이기도 하다.

삶은 이렇게 사색과 함께 버텨낼 수 있다. 지난 2012년 CJ 문화재단 신인뮤지션 지원 사업 '튠업'에서 우승하고 2013년 첫 정규 음반 '보이지 않는 것'을 발매한 뒤 2014년 SBS TV 오디션 'K팝스타' 시즌4에 출연한 이진아가 증명해온 것이기도 하다. 주요 음악 레이블 안테나 소속인 그녀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았는데, 메인 스트림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인디·재즈 등의 영역을 품은 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특별한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다. 내달 14~15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여는 단독 공연 '도시의 속마음'은 그 다양한 경계를 확인하는 자리다. 다음은 앨범 발매 직전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이진아와 나눈 일문일답.

-'미스터리 빌리지'는 2017년 음반 '랜덤'을 작업하기도 했던 사이먼 페트렌(Simon Petren)(스웨덴 출신으로 '더티 룹스' 등과 호흡을 맞춘 프로듀서 겸 작곡가)과 함께 만든 곡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서울=뉴시스] 이진아. (사진 = 안테나 제공) 2023.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페트렌 프로듀서님과 작업할 때마다 많이 배워요. 제가 상상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되게 잘 살려주시죠. 계속 같은 분이랑 같이 하는 게 '괜찮은 걸까' 걱정도 했어요. 근데 회사에서도 이 노래를 타이틀로 하면 좋겠다고 하셨죠. 제가 팝 음악을 중점적으로 하는 뮤지션이 아니다 보니까 더 실험해도 되겠다고 사이먼 프로듀서님이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 케미가 되게 좋다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진아 씨는 국내 대중음악 신(scene)에서 독특한 포지션이에요. 제작 시스템은 메인 스트림에 속해 있으면서도 음악은 그 형태를 벗어나 있죠. 안테나 레이블 색깔이 그렇긴 한데 그 중에서도 실험적인 편에 속합니다.

"본능적으로 있음직한 노래들을 만드는 걸 안 좋아해요.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근데 단순해지고 싶을 때는 팝 음악도 많이 들어요. 그게 제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팝 쪽 장르를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다만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의 대부분은 사실 제가 편하게, 쉽게 만든 노래들이에요.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요."

-진아 씨에게 쉬운 음악이라는 건 놀면서 만든, 즉 플레이(Play)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 맞아요. 좀 놀면서 해야 더 잘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너무 계산적이면 잘하지 못해요."

-도시, 건축의 맥락이 이어지는 이번 앨범은 흡사 '콘셉트 음반'(특정 주제를 정해 만든 곡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한 음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고 만든 곡들이 실린 음반인가요, 이미 만들어져 있던 곡들을 배치하다 보니까 이번 앨범 주제가 나온 건가요?

[서울=뉴시스] 이진아. (사진 = 안테나 제공) 2023.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후자가 맞아요. 곡들을 모아서 보니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은근히 많이 있었어요. 아직까지는 앨범의 주제를 먼저 정하고 만든 적은 없어요. 다만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이 1년 전에서 1년 반 정도 전 사이에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보니까 통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해요. 원래 도시랑 건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한 건 아니고 그냥 걸어다니다가 멋있는 건축물들을 보면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엔 건축, 건물 이미지로 곡을 써보자며 안광현 님과 의견을 나누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어요. 둘 다 즉흥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건축적인 걸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까 처음엔 너무 어려운 게 나와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쉽게 한번 풀어내볼까' 하고서 만든 게 '도시의 건물'이죠. 사실 가사가 먼저 나온 노래는 거의 없어요. 음악을 먼저 만들고 '건물 관련한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자'며 노랫말을 붙이는 식으로 작업이 됐죠."

-사실 그간 진아 씨 음악이 건축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면모가 강해 스케치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 주제를 듣고 처음엔 조금 놀랐어요. 근데 자하 하디드처럼 비선형적 건축을 선보이시는 분들이 있죠. 그런 분이 음악을 한다면, 진아 씨 같은 분위기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사 중인 건물들을 보면서 '지금 작업 중인 내 앨범이 이런 느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건축물과 제 음악을 비교해보기도 했었어요."

-경기 광주가 고향이죠? (이진아는 중고등학교는 분당에서 다녔다.) 대학(서울예대)도 안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아 씨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 궁금했어요.

"건물이 엄청 화려한 도시에서 살지 않았어요. 안산으로 학교를 다닐 때 정말 가끔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걸려 강남에 간 적이 있거든요. 큰 건물을 보면 마치 제가 시골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스물 일곱 살 때인가 미국 여행을 처음 가봤는데 '진짜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건물의 멋있음'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눈이 오면 이글루 같은 걸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서울=뉴시스] 이진아. (사진 = 안테나 제공) 2023.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약간 동화적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상상 속 도시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저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지만 화면 속에서 이 도시를 많이 보고 살잖아요. 이런 부분이 좋은 점도 많지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잖아요. 멋진 풍경과 사람에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죠. 다들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기도 한데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닌 '다시 눈을 뜨고 올바른 것들을 보자'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어요. 그래서 현실 속 도시 건물 느낌 보다는 조금은 꿈 같고 만화 영화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곡을 꾸며서 만들어냈습니다."

-트랙 배치가 묘하게 이어져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단편 소설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시집처럼 어떤 곡이든 먼저 골라서 들으셔도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순서 짤 때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곡이 연결되는 지점들이 어울리도록 신경을 썼죠. 특히 첫 트랙 '마이 훌 뉴 월드(My Whole New World)'는 제가 결혼(이진아는 2019년 피아니스트 신성진과 결혼했다)을 한 뒤 받은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꿈처럼 표현했어요. 마냥 행복하고 별로 바랄 게 없는 완전함을 경험했는데 그걸 음악으로 너무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만든 곡이에요. 다만 마지막 부분엔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을 비밀처럼 넣어놨는데 그게 또 '속마음'이라는 앨범명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이 너무 좋지만 널 잃을까 봐 두려워'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그 부분이 되게 마음에 들어요."

-이번 음반에 협업한 분들이 또 쟁쟁합니다. 가수 스텔라장('여행의 끝에서'), 싱어송라이터 사라 강('시티 라이츠(City Lights)'), 첼리스트 홍진호('잠결의 슬픔'), 프로듀서 겸 작곡가 박문치('싱(Sing)!)', 가수 이효리·기타리스트 이상순 부부('말') 등이 함께 했죠.

"계획적으로 부탁을 드린 건 아니에요. 한 곡 한 곡 쓰면서 '이 노래는 가사를 같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가사를 많이 부탁 드렸죠. 스텔라 장, 사라 강 씨에게는 먼저 가사를 같이 쓰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 분들이 노래도 엄청 잘하시잖아요. 그래서 '노래도 같이 해야겠다'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거죠. 진호 님에게 첼로 연주를 부탁드렸는데 '잠결의 슬픔'에선 첼로가 되게 중요한 요소였어요. 슬픔을 표현하는 곡이거든요. 자다 일어났을 때 느낀 슬픔을 음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멜로디가 생각이 났고, 첼로가 떠올랐죠. 이상순 선배님의 경우엔 선배님 노래 중에 '안부를 묻진 않아도' 편곡을 제가 맡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뵀는데, 친분은 없었어요. 근데 이효리 선배님이 '말'을 부르시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날 선배님이 제 소셜 미디어 계정에 댓글을 남겨주신 거예요. 제 영상에 '진아야 마음이 따뜻해지는 목소리다'라고요. '이것은 운명'이라는 생각에 장문의 메시지로 부탁을 드렸죠. '말'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다면서 정말 감사하게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서 재밌게 녹음을 하고 올라왔습니다."

-'잠결의 슬픔'에서 첼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첼로 음역대가 인간의 음역대와 가장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이진아. (사진 = 안테나 제공) 2023.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올린도 좋아하지만 첼로는 좀 더 감미롭고 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악기라는 생각을 해 예전부터 로망이 있었어요. 제가 하지 않는 클래식 악기에 대한 로망 역시 있었고요. 항상 첼로랑 같이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해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잠결의 슬픔'은 어떻게 보면 심플할 수 있는 음악인데 진호 님이 곡을 더 잘 살려주시기도 하셨죠."

-가사도 잘 쓰시는데 작사를 부탁하실 때는 어떤 경우인가요?

"작곡과 작사를 두고 봤을 때 확실히 전 작곡에 더 욕심과 애정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작사 역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시니까 작사를 잘하는 분이랑 같이 하면 좋은 퀄리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진아 씨는 메이저 신에서 인디 신의 느낌을 가져가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에요. 자신의 음악을 10년 동안 해오셨는데 책임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2021) 음악감독, 이진아 트리오 등 다양한 음악 작업도 하고 있고요.

"요즘엔 메이저와 인디를 나누는 게 흐릿해졌잖아요. 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엄청 유명해진 뮤지션 분들도 많고요. 다양한 뮤지션이 여기저기 샘솟고 있다는 생각을 저는 해요. 그럼에도 제가 중간 지점에 있는 뮤지션이라는 시선을 받아들였을 때, 빛을 보지 못하는 친구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제 나이도 30대가 됐으니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꼭 내가 책임을 져야 해' 같은 생각은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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