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완충지대’ 역할… 韓·中, 中·日 양자관계 관리 관건 [한반도 인사이트]

홍주형 2023. 9. 1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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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中 정상회의 2023년 재개될까
2019년 中서 개최 후 한국 차례서 스톱
尹, 리창 총리에 “연내 또 보자” 개최 뜻
통상 안보·역사 등 민감한 주제는 피해
경제협력 주로 다뤄… 공급망 논의 기대
3국 장관급 협의체만 21개… 교류 활발
中도 ‘韓·美·日 밀착’ 견제 위해 개최 공감
오염수 갈등 등 中·日관계 악화 지켜봐야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 만나 “연내에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8월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한·미·일 협력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강력한 소(小)다자협력체로 떠오르는 가운데 동아시아에 오랫동안 있었던 3자 협력체인 한·일·중 정상회의는 올해 재개될 수 있을까. 6·25전쟁 후 유지된 동아시아의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한·일·중 협력의 구심점, 즉 3국 정상회의가 연말 한국에서 4년 만에 재개될지 앞으로의 몇 개월간에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3 정상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양자관계에 따라 부침

한국은 올해 한·일·중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회의를 개최해야 의장국 지위도 넘어간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정상회의 후 의장국은 한국 차례에서 멈춰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회의가 열리지 못한 탓이다.

중국은 한·일·중 협력 출범 초기만 해도 적극적이었다. 다만 올해는 한·일의 미국 밀착이 한·중, 중·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상회의 개최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양자관계가 한·일·중 협력에 늘 ‘복병’인 셈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일·중 정상회의 과제는 불안정성을 극복하는 것”이라며 “3국이 민감한 문제를 다루지 않지만, 양자 간 민감한 문제가 발생하면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것이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연말까지 한·중, 중·일 양자관계 관리가 3국 정상회의 개최의 핵심이다. 이번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악화하는 중·일 관계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7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3국 국제협력포럼에서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 민간교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도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중국 역시 한·일이 지나치게 미국에 밀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필요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다만 급격하게 미국 쪽으로 기운 한·일을 보며 당분간은 신중한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연말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원하는 대로 중국 정부가 따라오기보다는 다소 시기를 늦춰 성사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민감한 주제는 안 다뤄

최 연구위원은 “한·일·중 정상회의는 정치·외교·안보·역사 등 민감한 주제는 대부분 다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08년 1차 회의부터 과거사 등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3국이 모여 다룰 주제는 경제협력이 주를 이뤘다. 다만 민감한 분야를 다루지 않는 것이 한·일·중 정상회의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3국 정상회의에 국가주석 대신 총리를 보내는데, 상대적으로 주석의 참석보다 유연한 접근이 가능하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발언 등으로 한·중 관계가 급격히 경색됐던 5월에도 3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개최됐다. 한·일관계 악화 중 열렸던 2019년 마지막 3국 정상회의에서는 북핵 문제 외에 한·일·중 자유무역협정(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추진 등이 논의됐다. 그 밖에 기후환경 협력, 스포츠 협력 등이 다뤄졌다.

한·미·일 3자 협력 수준이 전례 없이 강화된 올해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리면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급망에서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한·일 모두 미국의 과도한 대중 무역 제한을 방어하는 데 협력할 필요성이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중국이 경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어떻게 다뤄질지도 관심사다.
2019년 12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의 세기성 국제회의장에서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모습. 이듬해인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며 한동안 열리지 못한 3국 정상회의가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올해에는 재개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아세안 회의에서 처음 출발

낮은 협력 수준에도 한·일·중 정상회의는 역사·지리적으로 가까운 3국이 구조적 반목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완충지대가 돼 왔다는 평가다. 외교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국 협의체는 정상급 2개(한·일·중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장관급 21개, 고위 관료급 13개, 국장급 20개, 실무급 15개가 운영되고 있다. 비록 2020년부터 3국 정상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으나 경제·문화·환경·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체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특히 서울 광화문에 소재한 한·일·중 3국 협력 사무국(TCS: 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이 지방 도시 교류와 재난관리, 문화협력 등 민간 교류 분야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다.

3국 간 별도의 공식 정상회의가 처음 개최된 것은 2008년이지만, 유래는 1999년 11월 3국 정상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 회의에 참석해 비공식 조찬 모임을 가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동북아 3국이 동남아 협력체인 아세안 모임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동북아 3국의 협력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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