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한인 과학자] “과학협력도 주고받는 외교전략 필요...한국판 국제 프로젝트 시동 걸라”
“과학협력 강한 건 내주고, 약한 건 받는 외교적 접근 필요”
한국과 과학기술 협력 약한 프랑스… 산업기술 내세워 협력 키워야
“각국 사정 해박한 해외 한인 과학자를 적극 창구로 활용해야”
“한국의 과학분야 위상이나 인지도는 유럽 국가들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외교적인 해법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대형연구프로젝트를 창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한국의 국가 위상과 연구개발 투자 수준에 걸맞게 전 세계 국가가 참여하는 기구 창설을 주도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종욱 프랑스 한인과학기술협회(프랑스과협) 회장은 지난 4일과 5일에 걸쳐 줌으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유럽 내의 위상이나 인지도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이나 2차전지처럼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인지도나 실질적인 연구 수준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한국이 유럽 국가를 상대로 과학분야 국제협력을 늘리겠다고 나서는 건 실속이 없을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진단이었다.
이 회장이 속한 프랑스과협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기술인들의 모임으로 정회원이 300여명에 이른다. 이 회장은 지난 1996년 한국 기업 연구소의 프랑스지사장으로 파리에 왔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30년 가까이 프랑스에서만 머물며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과학기술의 발전사를 지켜본 인물이다.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과학 분야의 국제협력이나 교류를 늘리고 싶다면 ‘외교적 접근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과학 수준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오랜 과학 연구 전통을 가진 유럽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격차를 극복하려면 정책적, 외교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강한 정보통신기술(ICT)이나 2차 전지 분야의 노하우를, 한국이 약한 생명과학과 항공 분야가 강한 유럽 국가들의 노하우와 맞바꾸는 식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적인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유럽이 주도하는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을 예로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부터 2027년까지 진행되는 글로벌 연구개발 프로그램인데 모두 955억유로(약 137조원)가 투입되는 막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40여개국의 과학자가 참여해 기후변화, 에너지, 인공지능, 암 치료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한국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호라이즌 유럽에 참여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협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한국은 연구능력이 여전히 약하게 평가 받기 때문에 호라이즌 유럽 같은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공동연구의 파트너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한국이 주도하고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북미가 함께 참가할 만한 국제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의 국가 위상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세계 1위 수준에 걸맞게 전 세계 국가가 참여하는 기구 창설을 주도하는 것이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만 40여명을 배출한 과학 선진국이다.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에게는 꿈 같은 상황이지만, 이 회장은 프랑스도 과학계 내부적인 고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초과학의 수준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산업 경쟁력이다. 이 회장은 “프랑스가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많지만 내수시장 규모가 중국이나 미국, 일본에 비해 작은 데다 산업화 능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 원천기술을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 기반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혁신과 디자인 경쟁력만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한계가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프랑스는 순수과학이 앞서 있고 한국은 산업기술과 응용 분야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공동연구를 하면 좋은 연구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프랑스는 독일, 영국에 비해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이 해외에 있는 한인과학자와의 연구 협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후관련 산업기술을 한국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과학자들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미세먼지나 기후, 안전 같은 분야의 연구를 해외 한인 과학자와 함께 진행하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해외 한인 과학자들은 그 나라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인력인 만큼 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한국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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