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오빠의 무덤” “꿈에 나타나주지 않는 딸”..그 날을 잊을 수 없는 희생자 가족들
9·11 테러 추모식이 한창 진행 중이던 11일 오전 10시 무렵 한 여성이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그라운드 제로 돌판에 노란색 꽃을 놓고 있었다. 몇번이고 꽃 모양을 가다듬던 그는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여러 번 이름을 만졌다. 뉴저지에 사는 강시현씨는 이날 테러로 먼저 떠나 보낸 2살 터울 오빠 강준구씨를 기리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강씨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금융 회사 캔터피츠제럴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7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강씨는 그 중 한명이다. 1967년생 강씨는 1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와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강시현씨에 따르면 사고 당일 강준구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오전 6시에 일하러 나가 오전 7시쯤 무역센터 지하에서 약을 탄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날 테러가 발생했고 다시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뉴저지 리버데일에 있는 언덕에 올라 “하나님, 날 데려가시고 내 아들 좀 꼭 살아 돌아오게 해주세요”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가족들은 매일 그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테러가 발생한 뒤 약 한달 반 정도 지났을 무렵, 뉴욕시에서 유가족들에게 그라운드 제로를 보여주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강씨는 “그때까지는 오빠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장면을 눈으로 보니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강씨 어머니는 5년 전 “이제 오빠를 만나러 간다”고 하며 눈을 감았다. 강시현씨는 요즘도 가끔 울지도 웃지도 않는 표정의 오빠가 꿈에 나타난다고 한다. 강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여기 제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오빠의 무덤”이라고 했다.
외동딸 육성아씨(당시 25세)를 테러로 잃은 육대진·이경우씨 부부도 이날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부모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았다. 어머니 이씨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떻게 괜찮겠어요. 딸의 모습이 한번 보고 싶은데 이 아이가 한번을 나타나주질 않네요”라고 했다. 아버지 육씨는 “20년이 넘게 흘렀는데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순 없잖아요”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딸 이름이 추모식 때 호명되자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살고있는 오하이오주에서 전날 도착해 추모식만 참석하고 이날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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