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코로나와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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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본다.
어? 저기 저 사람은 누구지? 거울 속에 웬 낯선 사람이 서 있다.
타인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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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오고 다리 휘어 못나보여
교수·남편 등 온갖 직함 눌린 꼴
타인에 잘 보이려 노력하기보다
자신과 소통하며 장점 찾아야
‘나를 사랑하는 것’도 노력 필요
“따르릉”. 전화가 왔다. “나 코로나야. 미안해.” “뭐라고? 그럼 어제 만나지 말았어야지.” “어젠 몰랐어.” “몰랐으면 다야? 니 일부로 나한테 옮겼지? 나 청정지역이야.” 막 퍼부었다. “뚜우우∼∼”. 전화가 툭 끊어졌다. 놈이 도망갔다. 친구 놈이 야속하다. 그나저나 병원에 가야 하나?
그보다 며칠 전 아내와 딸이 걸렸다. 졸지에 내가 마스크를 쓰게 됐다. 두 사람은 집 안에서 그냥 활보한다. 수적 우위를 내세운다. 자기들은 2명이고, 난 혼자라는 거다. 피식 웃으며 내가 마스크를 썼다.
잘 버티고 있었는데, 친구 놈이 마침표를 ‘꽝’ 찍었다. 집 안에서 아내와 딸의 협공을 잘 막아내고 있었는데, 그놈이 결정타를 먹인 것이다. 병원을 찾았다. 확진이다.
마스크를 또 계속 써야 한다. 아내와 딸은 다 나았으니까 나보고 쓰란다. 오 마이 갓.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자기들은 걸렸을 때 벗어놓고, 내가 걸리니 쓰란다. 미칠 노릇이다.
지금부터 격리다. 5일 동안. 깜깜하다. 뭘 해야 할지. 침대에 누워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봤다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전신에 퍼진 오한을 이겨내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본다. 어? 저기 저 사람은 누구지? 거울 속에 웬 낯선 사람이 서 있다.
거울 1.
참 못났다. 짝짝이 눈, 풀린 쌍꺼풀, 지저분한 수염. 불룩 튀어나온 배, 발끝이 안 보일 지경이다. 휘어진 다리. 뭐 하나 봐줄 게 없다. 더하여 약물에 찌든 표정. 못나도 이렇게 못날 수가. 병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거울 2.
자세히 들여다본다. 온갖 타이틀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 서 있다. 교수· 자문위원·아들·남편·아빠…. 그 무게에 짓눌려 있다. 남의 시선으로 가득 채워진 누군가가 있다. 타인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있다. 나는 어디 있는가?
거울 3.
나를 찾아본다. 개성 강한 짝짝이 눈, 흔하지 않아서 좋다. PD 하느라, 영상을 많이 봐서 풀린 쌍꺼풀, 자랑스럽다. PD로서 얼마나 많은 영광스러운 날들을 보냈는가? 튀어나온 배, 55년 넘게 삶의 무게를 잘 견뎌낸 상징이 아닌가? 굽은 다리, 어릴 적 날 맨날 업고 다닌 울 할매의 사랑의 징표다. 못난 거 하나 없다.
그렇다. 평소 거울을 볼 때 남에게 잘 보이려고 꾸몄다. 남이 날 어떻게 볼까 생각하며 머리를 만지고 로션을 발랐다. 누군가에게 있어 보이려고 이 옷 저 옷 차려입었다. 나보다는 타인이 중심에 있었다. 나를 위해, 나를 빛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거울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없었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만 더덕더덕 붙어 있는 이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또 잘난 것보다 못난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못난 점을 커버하기 위해 애썼다. 화장도 그렇고 옷 입는 것도 그랬다. 나의 단점을 숨기기 위해.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남을 위해.
그래서 요즈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와 소통하려 노력한다. 아주 작지만 나의 잘난 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작지만 잘난 점을 찾아 갈고닦아서 빛내려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칭찬하고, 나를 쓰다듬고, 나를 사랑하려 노력한다.
거울의 위치도 바꾼다. 나를 가장 멋있게 보이도록 말이다. 조명과 각도도 신경 쓴다. 거울 속에서 내가 빛나도록. 그리고 주문도 외운다. 머리와 얼굴, 옷매무새를 만지며.
맑고 밝은 기운이여 ‘피어나라. 피어나라.’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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