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적게’ 받는 조기노령연금 … “신중하게 결정해야”

최대 5년 일찍 받을 수 있지만
정상 지급보다 연 6%씩 줄어
소득 공백·건보료 폭탄 우려
신청 고민하는 은퇴자들 늘어
개인별 자금 상황 먼저 따져야

연금액이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민연금을 당겨 받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국민연금 중기재정 전망(2023∼2027)’에 따르면 조기연금 수급자는 올 4월 8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조기연금 수급자가 올해 말 85만6387명에서 2024년 96만1314명, 2025년에는 107만54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조기연금은 연금을 ‘더 빨리, 더 적게’ 받는 제도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인 자가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 지급 개시 연령보다 연금을 최대 5년 더 일찍 받을 수 있다. 조기 퇴직 등으로 소득 공백에 놓인 가입자의 노후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연금을 당겨 받는 대신 수급액이 감소해 ‘손해 연금’으로도 불린다. 정상 지급 개시 연령에 받을 수 있는 연금액보다 1년에 6%포인트씩(월 0.5%포인트) 감액된 지급률로 평생 연금을 받는다. 수급액이 최대 30%포인트 깎일 수 있는 셈이다.

조기연금 수급자가 많이 증가한 이유로는 늘어난 소득 공백이 꼽힌다. 연금의 정상 지급 개시 연령은 1957∼1960년생 만 62세, 1961∼1964년생 63세, 1965∼1968년생 64세, 1969년생 이후 65세로 점차 상향 조정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정상 지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추는 방안을 내놔 소득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강화돼 은퇴자 부담이 커진 것도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9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이 시행되며 피부양자 자격이 깐깐해졌다. 피부양자와 지역가입자를 구분 짓는 소득 기준이 연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강화됐다. 이때 소득에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수령액이 포함된다. 이에 월 소득을 낮춰 ‘건보료 폭탄’을 피하고자 조기연금 신청을 고민하는 은퇴자들이 늘었다.

한세연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조기연금은 향후 노후 자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월 268만원 소득, 20년간 연금보험료를 낸 A씨(53세)라고 가정하자.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A씨가 연금을 정상 지급 개시 연령인 65세에 받으면 ‘최초 연금 월액’은 54만원, ‘생애 총급여액’은 1억900만원, 생애 총 급여액에서 납부 보험료 총액을 뺀 ‘생애 순 혜택’은 4900만원이다. 하지만 1년 당겨 받으면 최초 연금 월액은 5.6%(3만원) 감액된 51만원, 5년 빨리 받으면 29.6%(16만원) 깎인 38만원을 받는다. 생애 총 급여액으로 따지면 연금액은 각각 2.1%(200만원), 16.2%(1700만원), 생애 순 혜택은 4.7%(200만원), 35.7%(1800만원) 감소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고자 연금을 당겨 받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한 전문위원은 “피부양자 소득 기준에는 연금 외에도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이 반영돼 연금을 적게 받아도 피부양자에서 탈락할 수 있다”며 “이에 더해 앞으로 피부양자 자격이 강화되는 등 부과 기준이 바뀔 가능성도 있어 건보료만을 기준으로 조기연금 수급 여부를 결정하면 후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연금은 소득 공백기를 버틸 수입이 있는지 은퇴 후 개인별 자금 상황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한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보통 정상 지급 개시 연령 때 받는 것이 제일 유리하다”며 “다만, 퇴직·사적 연금이나 퇴직 후 제2의 일자리에서 급여 등 소득, 개인별 경제 상황을 고려해 소득 공백기를 버틸 여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기연금을 받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