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불안한 징후들
조짐이 좋지 않다. 농업부문 곳곳에서 이상 신호음이 울리고 있다. 농산업 동향이 특히 예사롭지 않다. 올들어 농기계업체들의 매출이 지난해에 견줘 20∼30%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정부 융자를 이용한 농기계 구입대수는 1만5396대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그 시점을 최근 2분기로 좁혀보면 실상은 더 충격적이다. 국내 최대 농기계업체의 올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나 주저앉았다. 비단 농기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비료·종자 등 주요 농자재업체들 대다수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신문 지면에 차고 넘치던 ‘새 상품’ 소개가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의 위기 상황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마저 잇따라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원인은 복잡하지 않다. 농가의 구매 여력이 바닥난 탓이다. 농업교역조건 악화가 그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업경영비는 2511만9000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비료비와 사료비는 전년 대비 각각 19.3%·17.8% 상승하고, 영농광열비 역시 15.5% 뛰어올랐다. 반면 농업소득은 2021년 1296만1000원에서 2022년 948만5000원으로 26.8% 급락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농축산물 생산을 위한 투입재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소득은 형편없이 쪼그라들다보니 농가의 투자 여력이 고갈돼버렸다. 지금 그 파장이 본격적으로 농자재업계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수 침체로 인한 농자재업계의 위축은 첨단시설 및 연구개발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농업 생산성 정체와 더불어 농업소득의 추가 하락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농가경제 후퇴는 나아가 지방소멸 위기를 가속화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이미 ‘돈 안되는 농사’를 기피하는 조짐이 보인다. 2022년 귀농인은 1만2660명, 귀농가구는 1만2411가구로 전년 대비 각각 12.5%·13.5% 감소했다. 두자릿수 감소율은 지난해 첫 기록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이다. 더구나 40대 이하 귀농인 비중이 2021년 23.3%에서 지난해 21.8%로 줄어, 외형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좋지 않은 흐름을 보였다.
이를 두고 정부는 팬데믹 기간 도시 일자리 감소로 늘어났던 시골살이 행렬이 한풀 꺾인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결국 근원은 농가경제 악화에 있다. 농업 구조가 유사한 일본 사례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지난해 일본의 신규 취농자수는 2021년에 견줘 4% 줄어든 4만5840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신규 후계취농자수가 3만1400명으로 전년 대비 15%나 줄었다. ‘생산비 상승으로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농업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후계자들이 늘어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대만큼 수익성이 받쳐주지 않으니 청년층이 농업 진입을 꺼린다는 진단이다. 우리 역시 이 뼈아픈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성장 구조의 농업을 두고 청년세대에게 취농·창농의 미래를 역설하는 건 모순이다. 더 늦기 전에 빠르게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되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구잡이식 농축산물 수급조절 정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물가안정 명분 아래 ‘부족하면 수입해서 메운다’는 식의 접근은 근시안적이고 불합리하며 설득력도 없다. 저율관세할당이 그리 절실하다면 법령에 명시된 대로 해당 품목 생산농가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사후 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에도 숨통이 트인다. 곳곳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불안한 징후가 기우에 그치게 하려면 정말로 그래야만 한다.
이경석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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