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이 클린스만 구했다…6경기 만에 천신만고 첫 승
궁지에 몰렸던 클린스만호가 6경기 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13일(한국시각)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꺾고 길었던 무승(3무2패) 행진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3월 클린스만 감독 부임 뒤 6개월 만에 거둔 승리다. 2000년 이후 남자 대표팀을 맡았던 사령탑 가운데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늦은 승전고다.
선발 명단은 지난 8일 웨일스전(0-0 무)에서 한 자리만 바뀌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를 위해 귀국한 홍현석(KAA헨트)을 대신해 황희찬(울버햄프턴)이 나왔고, 남은 자리는 조규성(미트윌란), 손흥민(토트넘), 이재성(마인츠), 황인범(즈베즈다), 박용우(알아인), 이기제(수원 삼성),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 설영우(이상 울산), 김승규(알샤밥)로 동일했다.
지난 6월부터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경기력으로 일관했던 대표팀은 이날 경기 초반부터 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스로 주도권을 잡았다. 황희찬이 측면을 활발히 누비면서 공간을 확장했고, 이재성과 황인범이 중원에서 적재적소에 볼을 배급하고 공간 침투를 수행하며 빌드업 축이 됐다. 전방 압박 선봉에 선 조규성과 ‘프리롤’ 손흥민도 가벼운 모습이었다.
전반 32분 공격진의 절묘한 호흡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오른 측면에서 이재성이 안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준 횡패스를 손흥민이 감각적으로 흘렸고, 이어진 황인범 패스가 상대 수비를 맞고 튀어 오르자 조규성이 머리로 돌려내며 골망을 흔들었다. 사우디 진영을 휘저은 선수들의 합이 맞아떨어지면서 빚어낸 작품이었다.
공세는 계속됐다. 득점 3분 뒤 조규성이 다시 압박으로 공을 탈취해 역습 패스를 빼냈고, 일대일 기회를 잡은 손흥민이 사우디 수비 하산 알탐박티(알힐랄)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접촉이 있었지만 페널티킥은 선언되지 않았다. 전반 41분에는 왼쪽에서 올라온 손흥민의 컷백 패스를 이재성이 흘리고 황희찬이 골문을 조준하는 협동 플레이를 선보였다.
클린스만호는 후반 3분 김민재와 손흥민의 연속 침투 패스에 이은 이재성의 일대일 기회, 후반 10분 오른쪽에서 크게 휘두른 전환 패스로 만들어낸 황희찬의 유효 슈팅 등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축구통계사이트 소파스코어 기준 한국은 이날 슈팅 19-7, 유효 슈팅 9-2로 사우디를 크게 앞섰다. 다만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조직력과 수비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은 후반 막판 기동성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미드필더와 수비진 사이 간격이 벌어졌고, 잇따라 사우디에 공격을 얻어맞으며 실점 위기를 자초했다. 앞서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도 불안한 후방 패스로 몇 차례 결정적 기회를 내줬으나 김승규와 김민재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한 골 차 리드를 지켰다.
이날 한국에 패한 사우디는 A매치 6연패 수렁에 빠졌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일격을 먹인 유일한 팀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후 흐름은 좋지 않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4위까지 떨어졌고, 9월 A매치를 앞두고 유럽축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을 데려왔음에도 연패를 끊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됐다. 그는 지난 반년 동안 경기장 밖에서는 잦은 외부 활동과 국외 체류로 근무 태도 논란을 빚었고, 경기장 안에서는 답답한 내용과 아쉬운 결과가 반복되면서 팬심을 잃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당장 다음 달 다시 튀니지(13일), 베트남(17일)과 평가전이 돌아오고, 11월부터는 2026 북중미월드컵 지역예선이 시작된다.
한편, 한국보다 몇 시간 앞서 평가전을 치른 일본은 4-2로 튀르키예를 완파했다. 올해로 부임 5년 차인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은 지난 10일 독일전 4-1 승리 등 최근 네 경기에서 18골4실점의 무시무시한 화력을 앞세워 전승을 거뒀다. 한국을 떠난 뒤 아랍에미리트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 감독도 13일 평가전에서 코스타리카를 4-1로 제압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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