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잘 버리면 가구·화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플라스틱·금속 복합된 장난감
그냥 버리면 소각·매립되지만
일일이 분리하면 순도 높은 재생ABS소재로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부 전선영(가명·40)씨는 최근 큰맘 먹고 아들(9)의 장난감 약 3분의 1을 정리했습니다. 아들이 크면서 예전에 갖고 놀던 장난감에 흥미를 잃어 방 한편에 쌓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전씨는 장난감을 버리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절대 안 된다"는 아들의 성화에 꾹 참고 있었는데요. 최근 장난감 선반이 우르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져 결단을 했다네요. 전씨는 "피규어나 자동차 장난감 등이 모두 플라스틱이라 아파트 분리수거장의 '플라스틱' 칸에 분리배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씨가 버린 장난감들은 재활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장난감은 겉으로 보기에 플라스틱이지만 속에는 다양한 부품이 있는데요. 이를 일일이 분리하기가 어려워 웬만한 폐기물 선별장에서는 장난감을 그냥 소각장으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돈 안 된다" 선별 대신 폐기되는 장난감
장난감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볼게요. 작은 장난감 자동차 속에는 바퀴와 모터, 배터리 등이 들어 있습니다. 몸체와 바퀴 모두 플라스틱이지만 이를 연결하려면 철사와 나사 등이 필요하죠. 모터 역시 금속이 섞여 있습니다.
재활용의 기본은 '같은 재질끼리'입니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끼리, 금속은 금속끼리 모아야 하죠. 하지만 장난감 플라스틱에서 금속을 떼어 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재활용 가치가 높은 자원만을 걸러 내야 하는 폐기물 선별장에서 장난감은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진 장난감이어도 재활용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장난감의 70~80%는 고기능성 플라스틱인 ABS로 제작되는데요. 간혹 폴리프로필렌(PP) 등이 로봇 관절 등 부품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이를 온전히 재활용하려면 크기가 작은 장난감에서 일부 PP소재 부분만 일일이 분리해야 합니다.
현행 재활용 선별체계에서 이같이 작은 분류 작업은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됩니다. 우리나라 장난감 시장 규모는 연 2조 원. 이것만 봐도 한 해 얼마나 많은 장난감이 소각·매립될지 짐작이 갑니다. 한때 어린이들의 즐거움이었던 장난감이 버려진 뒤에는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장난감만 모아 분류해 품질 좋은 재활용 소재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어려운 작업이라도 장난감을 소재별로 분해만 한다면 자원순환이 가능하니까요. 11일 찾아간 울산 중구의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에서는 고장 나거나 쓰지 않는 장난감을 전국에서 기부받아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코끼리공장은 처음에 봉사활동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이채진(39) 대표는 어린이집에 쌓여 있던 망가진 장난감들을 고쳐 보려고 했는데요. 장난감 회사에 수리 요청을 해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네요. 반면 어린이집에는 매년 정부에서 장난감 구입 비용이 교부돼 새 장난감을 사야 했는데요. 이렇다 보니 멀쩡한 장난감이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였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새 장난감을 사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이 장난감을 필요한 곳에 보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2014년 시작한 작은 실천이 어느새 사업이 돼 버렸다고 합니다.
코끼리공장에는 매일 2톤 정도의 장난감들이 배달됩니다. 대부분 가정이나 보육기관에서 쓰던 장난감을 기부한 겁니다. 종종 완구회사에서 팔리지 않은 재고를 보내기도 한다네요.
이렇게 모인 장난감들은 일단 재사용이 가능한 것과 아닌 것으로 분류합니다. 재사용이 가능한 장난감은 조금만 수리하면 사용할 수 있거나 아예 멀쩡한 제품이라 세척만 해도 쓸 만한 것들입니다. 이 같은 장난감은 공장의 수리 담당자들에게 보내집니다. 연간 기부되는 300~400톤의 장난감 중 약 70%가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말끔해진 장난감들은 보육원이나 그룹홈 등 장난감이 필요한 취약 아동들에게 선물한다네요.
수리 등이 어려운 나머지 25%는 재생 소재로 활용합니다. 직원들이 장난감을 일일이 손으로 해체한 뒤 색깔별로 분류하는데요. 색깔별 플라스틱을 분쇄한 뒤 기계를 이용해 선별하면 ABS 재생 소재가 탄생합니다.
장난감으로 만든 재생 소재에는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다. 이 대표는 "장난감은 아이들이 만지고 입으로 물 수도 있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거의 없다"며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 순도 높은 재생 소재를 뽑아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재생 소재는 다시 장난감이나 가구·화분 등 다양한 물건을 제작하는 데 쓰입니다. 최근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위해 재활용 제품 생산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재생ABS를 구매하고 있다네요.
재사용·재활용되지 않는 나머지 5%는 금속이나 배터리 등 플라스틱이 아닌 부분입니다. 접착력이 너무 강해 스티커가 떨어지지 않는 장난감도 재활용이 어려워 버려지곤 합니다. 투명 페트병에 라벨이 붙어 있으면 재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거죠.
코끼리공장은 장난감의 분류, 수리, 재활용 등 전 과정에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하네요. 이곳에 많은 장난감이 모일수록 재활용되는 장난감도 많아질 텐데 여전히 장난감 수거는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전국에 수거 거점이 생겨 더 많은 장난감을 재사용·재활용할 수 있기 바란다"며 "가정에서도 장난감을 버리는 대신 택배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울산=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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