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현대차에 건설사도 참전 ...첫 미션은 '스크럽 확보'
[편집자주] 광산이 아닌 폐기된 전기차 배터리(이차전지)에서 광물을 회수해 새 배터리로 가공하는 폐배터리 사업이 배터리 산업 밸류체인(가치사슬)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도시광산'으로도 불리는 폐배터리 사업은 순환경제 달성을 위한 유럽연합(EU) 등의 새 규제 대응 뿐아니라 '핵심 광물 확보'라는 경제적 이유에서도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들에게 중요하다. 폐배터리 시장의 부상 배경과 한국 폐배터리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을 살펴 본다.
소수의 중견·중소기업이 주도하던 폐배터리 시장에 '참전'하는 대기업이 급증했다. 순수 전기차(EV) 보급이 본격화해 폐배터리 물량이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돼서다. 참전 이유도 제각각이다. 안정적인 광물 확보를 위해서거나 폐배터리 사업 자체가 지닌 잠재성을 보고 투자를 감행한다. 배터리 밸류체인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건설업계도 이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었다.
배터리 사업을 펼치는 삼성·SK·LG그룹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폐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그룹은 일찌감치 파트너사로 국내 1위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이자 말레이시아 등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성일하이텍을 낙점했다. 삼성SDI 8.81%, 삼성물산 4.9%, 삼성벤처투자 0.09% 등이 성일하이텍의 지분 총 13.87%를 보유했다. 오너일가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SK그룹도 성일하이텍과 긴밀하다. SK이노베이션은 성일하이텍과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폐배터리 합작사(JV) 구축을 준비한다. 이 외 배터리 사업 확장을 위해 자체적으로 폐배터리 광물 회수 기술도 개발한다. 국내 1위 배터리기업을 품고 있는 LG의 폐배터리 투자는 해외 중심이다.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최대 폐배터리 업체 라이사이클에 60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감행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현지에 화유코발트와 폐배터리 JV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들의 폐배터리 투자는 안정적인 광물 수급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글로벌 전기차 기업이 배터리 업체와 JV를 설립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룹 주요 계열사를 망라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TF를 구성한 바 있는 현대차그룹은 최근 고려아연과 전구체 합작사 및 폐배터리 재활용 등에 대한 협력을 약속했다. 블랙파우더 추출 기술을 보유한 사내 벤처 에바싸이클을 최근 분사시켰을 정도로 내부 연구도 활발하다.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는 포스코그룹·에코프로 등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이들 외에도 GS그룹·영풍그룹 등이 신사업으로 내세웠다. ㈜GS·GS에너지는 해외 투자를 통해 폐배터리 관련 역량을 확보하고 포스코그룹과 손을 잡고 합작사업 형태로 전개한다. 영풍그룹에서는 '한 지붕 두 가족' 고려아연이 배터리 소재 및 폐배터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영풍 역시 세계 최초 건식용융 방식의 폐배터리 재활용 파일럿 공장을 구축하며 다가올 기회를 찾는다.
눈에 띌만한 점은 건설사들의 참전이다. GS건설은 ㈜GS·GS에너지와 별도로 폐배터리 사업을 영위한다. 경북 포항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다. SK에코플랜트(구·SK건설)는 최근 경북 경주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부지를 확정했으며 미국 현지에도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며 다양한 기회를 모색한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서 한 건설사 관계자는 "폐배터리 기술의 핵심은 화학적 분해"라면서 "플랜트 사업을 위해 영입한 화학 전공자를 기반으로 신사업에 속속 나선 것 같다"고 했다.
폐배터리 분야에 다수의 기업이 뛰어들면서 스크럽 확보 경쟁이 예상된다. 전기차 교체 주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폐배터리 기업은 배터리·양극재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스크럽이나 불량 배터리를 수급받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는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의 국내외 공장에서 이를 공급받는다. 유럽이 폐배터리 역외 반출을 제한하겠다 선언하고, 폐배터리 기업이 계속 늘게 됨에 따라 한정된 스크럽을 둘러싼 확보 경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IT기기·스마트폰·전동공구 폐배터리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면서 "폐전기차가 나오는 5~6년 뒤를 기회로 보고 뛰어든 기업들이 한정된 스크럽을 놓고 경쟁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장시간 버텨내야 하는 것이 국내 폐배터리 업계에 내려진 첫 미션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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