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2년 동안 美 단합 토대 됐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3. 9. 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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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2977명 부르며 똘똘 뭉쳐
9·11 테러가 발생한지 22년이 흐른 지난 11일(현지 시각) 맨해튼 남부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총 6번 타종을 할 때마다 모든 이들은 말과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윤주헌 특파원

“22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떠나 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네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그 어떤 위협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극단 이슬람주의 공격에 무너져 2977명이 희생된 ‘9·11 테러’ 22주기인 지난 11일 오전 9시. 테러 현장인 맨해튼 남부 세계무역센터 부지에 유가족 수천명이 모였다. 고요가 흐르는 가운데 유가족 대표들은 단상에 올라 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추모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를 제외하면, 매년 9월 11일마다 이어지는 전통이다.

이제는 ‘그라운드 제로(폭발 원점)’라 불리는 테러 현장에 모인 유가족들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연대했다. 추도식장에서 유족들은 아침 안개 속에 작은 의자에 앉거나 묵묵히 서서 희생자들의 이름과 유족 대표들이 준비한 간단한 추모사를 들었다. 추모사 가운데 가장 많이 들리는 말 중 하나는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였다. ‘미국’이라는 국가 아래 하나로 뭉쳐 슬픔을 극복하자는 다짐처럼 들렸다.

추모의 빛 - 11일(현지 시각) 밤 미국 뉴욕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빛의 헌정식' 앞에 모인 사람들이 2001년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매년 9월 11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88개의 탐조등(探照燈)이 테러 공격을 받은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을 재현해 테러 희생자들을 기린다. /AFP 연합뉴스

오전 8시 46분 조종(弔鐘)이 울렸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탈취당한 항공기가 무역센터에 처음 부딪힌 시각이다. 종소리가 나자 행사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커다란 팻말에 희생자의 사진을 인쇄해 추모식 내내 들고 있는 가족, 9·11을 추모하는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달거나 티셔츠에 희생자 사진을 프린트해 맞춰 입는 등 유족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먼저 떠난 사람들을 기억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한 현지 언론에 “뉴욕에선 (9·11 테러 다음 날인) 9월 12일에 가장 위대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일어섰고, 교사들은 가르쳤고, 건축 업자들은 건설하며 우리가 굽히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줬다”고 했다.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소방서. 11일(현지 시각) 이른 아침부터 테러로 순직한 343명의 뉴욕소방대원을 추모하는 꽃이 서 있었다. /윤주헌 특파원

9·11 테러는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인 2001년 일어난 비극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항공기 네 대를 납치하고 그중 세 대가 세계무역센터 두 건물과 펜타곤(국방부 청사)에 충돌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1990년대 초 걸프전 이후 이슬람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非)이슬람인 미군이 주둔하며 극단 이슬람주의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알카에다가 테러를 감행한다는 여러 첩보가 있었음에도 미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일었다. 하지만 테러 직후부터 지금까지, 미 시민들과 정치권은 9·11 테러를 책임 공방이 아닌 국민 단합의 계기로 삼고 있다.

11일(현지 시각)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가운데)과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해리스 왼쪽),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오른쪽). /연합뉴스 AFP

이날 행사엔 미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모두 참여했다.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여러 매체에서 사납게 논쟁하던 이들이지만 이날은 유족들 가운데 서서 조용히 함께 추모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등 민주당 인사와 내년 공화당 대선 주자 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나란히 추모식에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통령 때인 2011년 10주기 때는 조지 W 부시(공화당) 전 대통령 부부도 모두 행사에 참석해 한목소리로 테러 앞에 굽히지 않는 미국의 단결을 이야기했다.

1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인도 뉴델리 G20(20국)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알래스카주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해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의 영혼을 건드릴 수 없었다. 미국과 우리 국민, 우리 동맹을 향한 또 다른 공격을 막겠다는 우리의 노력은 결코 쉬지 않을 것”이라며 단결을 강조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날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방부 청사에서 추모식을 열고 “9월 11일은 미국 정신이 시험의 시기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테러 이후 많은 미국인은 공포와 슬픔 속에서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한 더 깊은 의무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을 파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증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9·11 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은 매년 그라운드 제로에 모여 희생자를 기억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하나로 단합한다. 슬픔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윤주헌 특파원

미 정부는 아직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유해에 대한 추가적인 확인 작업을 22년째 계속하고 있다. 지난 8일 뉴욕시는 회수한 유해에서 첨단 DNA 테스트를 통해 피해자 두 명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2977명 중 신원 확인이 된 1648번째와 1649번째다. 피해자는 남성 1명과 여성 1명으로 가족의 뜻에 따라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사망자 중 약 40%인 1100여 명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뉴욕시는 공격받은 빌딩의 잔해에서 회수된 2만2000여 개 신체 부위를 여러번 테스트해 신원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신원 확인 작업을 이끄는 뉴욕시 검시관 제이슨 그레이엄은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법의학 조사이지만 신원 확인을 계속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이행하고 우리의 사명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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