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제재 무력화하는 무기 거래 예고… 北·러, 국제질서 무너뜨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현지 시각) “북·러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현안도 다뤄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의 무기 거래 협상을 예고한 것인데,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북한과의 무기 거래와 군사 기술 지원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기 거래가 현실화하면 안보리가 주도해온 대북 제재 체제가 무력화되는 것은 물론, 세계 2차 대전 이후 구축된 비확산 같은 전후(戰後) 질서를 흔드는 것이 된다. 유엔으로 상징되는 다자질서에 기반했던 국제 정치가 중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북·러 회담과 관련, “안보리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논의 주제가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에 대한 북·러 공조를 시사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있을 때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해 왔다. 북한이 여기에 반발해 “미국의 끈질긴 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라고 러시아를 비판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호하고 도발 원인을 한미연합훈련에서 찾는 등 거부권을 무기로 규탄·제재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안보리의 존립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 평화·안보 질서를 정하는 최상위 국제기구인 안보리는 1946년 이래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무력 분쟁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 안보 공공재’라 불리는 안보리는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국가 주권을 초월하는 강행적 관여를 할 수 있었고, 핵심 정책 수단은 제재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기능 부전에 빠졌고 ‘무용론’까지 제기된 상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핵 관련 여러 결의안이 통과돼 국제법 효력이 있는데 과거 여기에도 찬성한 상임이사국이 스스로 이를 허무는 자기 부정 같은 것이라 치명적”이라고 했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통해 제재를 우회해 핵 개발에 성공하고, 무기 거래까지 하는 북한이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권위주의 정권에 안 좋은 선례로도 남을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독자 제재 부과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도 “러·북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각종 제재가 부과하고 있는 무기 거래, 군사협력 금지 의무를 되새겨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북한과 군사 협력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무기 거래가 이뤄지면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외교 당국이 지금부터 유럽 국가들과 연계해 ‘공동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VOA에 “북한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 상황과 판단 착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1일(현지 시각)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고 했던 공개적 약속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고,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 상원 인권 코커스 공동 의장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 최측근인 크리스 쿤스 의원은 북·러 간 무기 거래를 “악마의 거래”라 표현했다. 일본 정부도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우려하고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핵심 기술 이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무기를 팔아도 가장 성능을 낮춰서 판매하는 게 러시아”라며 “아무리 러시아가 고립됐다 하더라도 소련 시절부터 동맹국과 주변국에 핵심 기술을 제공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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