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31]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 강기동 박사
공사가 정지된 건설 현장엔 사람 그림자도 없이 계절풍만 불고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높이 80미터의 고로와 수리 중인 열풍로, 전로, 주상 건물, 원료를 나르는 벨트 컨베이어 같은 거대한 최신 설비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뎃페이는 고로 건설 현장이 한눈에 보이는 안벽에 올라 철강인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걸어온 설비들을 홀린 듯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지력, 체력, 정신력을 모두 쏟아 넣은 것을 가동 한 발짝 앞에서 빼앗겨 버린 것이다.
-야마사키 도요코 ‘화려한 일족’ 중에서
2008년 10월 29일 ‘제1회 반도체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반도체 공헌자들에게 정부 포상과 공로패를 주었다. 그날 특별 공로상을 받은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강기동 박사가 이 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3년 만에 귀국해서 한국에 머물던 강 박사는 행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가 기념식 전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한 번도 행사에 초대받은 적 없다.
미국 최초의 반도체 연구소 책임자였고 모토롤라에서 핵심 기술을 연구한 그는 미 군사 기밀이던 반도체 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대가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유학은 가되 반드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한 부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세계 반도체 제조 방법의 표준이 된 그의 CMOS 공정이 없었다면 스마트폰과 같은 수많은 전자 기기의 발전은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실패 안 했다’는 가제로 회고록을 쓰고 있는 90세의 그를 만났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묻자 “반도체 안 할 거야!” 하고 단호히 답했다. 평생의 업적을 몰라주는 데 대한 서운함이다. 그래도 반도체 최강국의 명성을 되찾고 한국이 세계적 허브가 되길 소망하는 모습에서 이 나라와 반도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선구자의 업적을 인정받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이인자나 계승자임을 자긍하지 못하고 너도나도 원조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정부 수립을 부정하며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작이라 한다. 1948년 건국과 함께 창설된 국군을 외면하고 독립운동가가 군인의 뿌리라 한다. 정치적, 금전적 이권에 따라 첫 번째 개척자는 종종 역사에서 추방된다.
오는 10월 26일 제16회 반도체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 강기동 박사가 동료와 후배들의 박수를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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