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신 뉴요커들이 한인 빵집에 엄지 척… “파리 골목빵집 생각나요”
뉴욕의 빵은 예상보다 수준 이하다. 몇몇 고급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갓 구운 빵을 제외하면 맛있는 제품을 접하기 쉽지 않다. 과거 ‘디저트의 시인’이라 불리던 파야(François Payard)도 은퇴한 지 오래고, ‘발타자(Balthazar)’ ‘에이미(Amy’s Bread)’ ‘설리번(Sullivan Bakery)’과 같이 작게 시작해서 명성을 쌓아갔던 유명 빵집들은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빵을 대량생산, 공급하는 도매 비즈니스로 전환한 지 오래다. 이런 ‘빵의 사막’과 같은 뉴욕 지역에 오아시스와 같은 베이커리 두 군데가 있다. 뉴저지 클로스터(Closter)의 ‘라 타바티에(La Tabatiere)’와 맨해튼의 ‘파베(Pavé)’, 모두 한인 베이커 원종훈(47세)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원 셰프는 원래 신학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했다. 미국 댈러스의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다가 어릴 적부터의 꿈인 베이커가 되기 위해서 ‘미국요리학교(CIA)’에 입학, 제과 제빵을 전공했다. 뉴욕의 발타자와 일본 빵집 ‘상 오노레(St. Honore)’에서 경력을 쌓고 세계적 명성의 ‘고든램지’,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정식’의 초대 디저트 셰프로 근무했다. 이후 자신의 베이커리 라 타바티에를 열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을 나와 동네 빵가게 주인이 된 것이다. 맛이 강하고 예쁜 연출의 디저트보다는 좀 더 본질에 가까운 간결한 빵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는, 자연스럽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다. 돈을 써서 여러 재료를 결합하며 화려한 디저트를 만드는 건 쉽다. 하지만 바게트나 크루아상, 브리오슈 같은 기본적인 빵을 정통 스타일로 굽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원 셰프는 궁극의 맛을 위해서 품목마다 열 번 이상씩 레시피를 바꾸어가며 실험을 거듭했다. 이미 존재하는 레시피이지만 좀 더 나은 해석을 위해서다. 마치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 지휘자에 따라서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렇게 바게트와 크루아상, 파운드 케이크, 그린티 스콘을 포함한 현재의 메뉴가 완성되었다. 라 타바티에에서 판매되는 모든 빵과 페이스트리는 기본에 충실하다. “심각하게 맛있는 빵이다” “이곳의 빵은 위험하다. 너무 맛있어서 집에 가져가서 식구들과 나누어 먹기 전에 차 안에서 모두 해치운다” 등의 후기가 달리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간혹 매장을 찾을 때마다 원 셰프는 샘플을 건네주며 “오븐에서 갓 구워진 빵을 깨무는 행복”을 상기시켜 준다.
라 타바티에의 성공 이후, 원 셰프는 작년 맨해튼 중심가에 베이커리 카페 파베를 열었다. 이스트빌리지의 와인바 ‘놀이터(Noreetuh)’를 운영하는 안진혁 대표와의 협업이다. 매일 새벽에 나와서 반죽과 정형을 하고 마지막 스코어링(scoring·빵의 급한 부풀림과 불균형 조형을 조절하는 칼집 내기)으로 마무리한다. 적절한 발효를 거쳐 굽는 동안 오븐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올드패션으로 한 시간마다 구워져 나오는 빵을 가지고 샌드위치를 만든다. 잡곡빵에 소시송(saucisson·프랑스 소시지)과 코니숑(cornichon·백포도주에 절인 작은 오이 피클)을 넣은 샌드위치, 사워도우 빵에 그뤼에(Gruyère) 치즈를 녹이고 햄과 디종 머스터드를 바른 크로크무슈(Croque monsieur) 등이다. 파베의 최고 인기 메뉴는 ‘프렌치의 정석’이라 불리는 잠봉뵈르(Jambon-Beurre). 반을 가른 바게트 사이에 햄과 버터를 넣은 샌드위치로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알란 뒤카스가 “단순한 빵이지만 가장 어려운 빵”이라고 표현한 음식이다. 프랑스 영화에서 간혹 보이는, 종이로 두르고 먹기 좋도록 한쪽 끝을 노출시킨 잠봉뵈르의 포장은 뉴욕타임스의 “완벽하게 스타일링된 스카프”라는 표현처럼 매혹 그 자체다.
미국에서는 의외로 좋은 밀가루, 좋은 우유, 좋은 버터를 구하기 쉽지 않다. 노조의 로비로 다양한 유제품과 밀가루의 수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제빵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프랑스나 일본 셰프들도 뉴욕에서는 고전하는 이유다. 그런 환경에서도 원 셰프는 좀 더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잠봉뵈르에 들어가는 버터를 프랑스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르갈(Le Gall)’ 브랜드로 바꾸었다(노르망디와 브르타뉴는 워낙 유제품이 유명한 지역이고, 특히 인근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fleur de sel)과 결합된 버터는 유럽 최고를 자랑한다). 장인의 손길이 배어있는 맛있는 빵에 이런 좋은 재료를 첨가한 각종 샌드위치는, 공급되는 빵을 쌓아놓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번 찾은 고객들이 계속 방문하고, 특히 빵 맛에 예민한 유럽계 뉴요커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마치 파리에 온 느낌” “너무 맛있어서 사진 찍는 걸 깜박하고 다 먹어버렸다”는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인근에 직장이 있어 파베를 자주 들르는 패션디자이너 테레사(Teresa Ross)는 “업무상 파리 출장을 자주 다니지만,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국인 베이커가 만드는 빵이 프랑스 빵의 맛을 내는 점이 너무 놀랍다”며 감탄했다.
뉴요커들은 자신의 도시를 ‘타운(마을이나 동네)’이라고 부른다. 런던이나 파리, 도쿄,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 시민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윗동네(업타운), 아랫동네(다운타운)와 같은 구분이 있다. 더불어 뉴요커들은 가장 도시적이고 세련된 스타일과 동네 주민 같은 정서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파베의 외관은 하늘색과 연두색의 중간인 터코이스(turquoise)색이다. 그야말로 맨해튼 빌딩 숲 한가운데서 갑자기 파리의 골목 빵집이 등장하는 느낌이다. 뉴요커들에게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모습이다.
원 셰프는 뉴욕의 한인 셰프들 중 원로급이다. 많은 동료나 후배들도 빵처럼 따뜻한 그의 품성을 좋아하고 따른다. 빵집의 이름 라 타바티에는 둥그런 식사빵, 파베는 도로 바닥을 포장하는 돌처럼 네모나고 넓적한 샌드위치용 빵의 명칭이다. 아주 클래식한 빵들이다. 클래식은 꼭 오래된 것만은 아니다. 당대 최고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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