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인물보다 상황 쫓는 데 급급… 뜨거운 애국심도 미지근하게 만드네
때는 1947년. 광복 후 최초로 태극 마크를 단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제2의 손기정’ 서윤복(임시완)이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과 동메달리스트 남승룡(배성우)은 감독과 코치로 갔다. 국력도 돈도 없던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승리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1947 보스톤’(27일 개봉, 감독 강제규)은 마라토너의 다리를 따라가다 심장을 놓쳤다. 우승 순간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데 치중할 뿐 생생한 인물을 그려내지 못한다. 고비와 갈등은 예상한 지점에서 예정된 방식 그대로 즉시 해소된다. 뜨거움을 기대했을 관객에겐 미지근함을, 신파라도 좋으니 실컷 울어보고 싶었을 관객에겐 밋밋함을 남긴다. 몸져 누운 어머니와 고봉밥의 기억으로 감정의 비등점을 올리기엔 요즘 관객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
첫 등장부터 상금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던지던 서윤복은 어느 순간 태극기에 매달린다. 인물의 선택과 고민, 자신과의 싸움이 생략된 자리에 애국심의 깃발만 날린다. 손기정은 영화 초반 서윤복을 다그친다. “이 새끼, 가슴이 없어, 가슴이.” 관객은 그 말을 영화에 돌려주고 싶다.
과거가 배경이라고 무조건 ‘올드하다’고 하지 않는다. ‘보스톤’과 동시대인 영화 ‘오펜하이머’를 올드하다고 하는 이는 없다. 낡은 건 시대가 아니라 시각이다. ‘오펜하이머’는 인물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보스톤’은 상황을 보여주느라 바쁘다는 게 차이다.
임시완은 마라토너의 몸을 만들어야 하는 육체적 도전을 극복하며 배우 근성을 증명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배우 박은빈이 방긋방긋 웃기만 하다 끝나게 한 시나리오는 안타깝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던 강제규는 예술적 도전보다 안전한 이야기를 집어들었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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