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범버꾸 친환경 도시
1967년에 발표된 오영수의 소설 ‘요람기’에서, 콩을 서리해서 구워 먹는 어린이들에게 춘돌이는 자기는 ‘냠냠’하고 먹을 테니 너희는 ‘범버꾸 범버꾸’ 하며 먹으라고 한다. 따질 만도 한데 아이들은 불만 없이 오히려 땅을 치며 범버꾸 범버꾸 외치는 짓을 즐거워하는 듯하다. 냠냠은 뭔가를 먹을 때 자연히 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냠냠하고 뻐끔거려 보니 딱 맞게 이와 이가 부딪히고 ㅁ 받침은 다음 ‘꿀꺽’으로 이어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범버꾸는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여서 음식을 씹거나 삼키면서 내기는 어렵다. 설사 뜻 없는 이 단어의 리듬이 ‘랄라라~’나 ‘요를레이~’처럼 다 함께 소리 내어 즐겁다고 해도 구운 콩을 먹으면서 낼 소리는 아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냠냠과 범버꾸가 있다. 아주 걷기 좋은 길이 아니라도 못 걸을 리 없지만, 녹음이 짙은 가로수와 적당한 높이의 정갈한 주변 건축, 그리고 그사이의 좋은 포장재가 깔린 길, 이런 좋은 길을 걸을 때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냠냠 걷기’가 가능해지고 설레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배려가 없고 상쾌하지 않은 길에서는 아무리 ‘부산이 좋다’고 한들, 즐겁지 않은 ‘범버꾸 걷기’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대인은 도시 산책보다 실내 뜀박질 기계 위에서 걷는 것을 택하고 만다.
얼마 전 유엔에서는 공식적으로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가 끝나고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특히 부산은 살 만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는 이미 유례없는 뜨거운 여름을 보냈고 지상낙원이라 부르던 하와이는 이상기후로 인한 대화재로 잿빛이 되어버렸다.
1997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으로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이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정부로부터 산업계, 그리고 우리 시민은 많은 노력을 해왔다. 다행히 올해 초 뉴스에서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도 있었지만, 상처받은 지구의 회복은 더딘 듯하다.
우리 건축계에서도 개개의 삶이 이루어지는 건축과 그 집합으로 이루어진 도시와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며 지속가능한 체질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구는 ‘닫힌 계(closed systen)’로서 태양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에너지도 지구 바깥으로부터 유입되지 않으며, 풍요로운 인간 생활에 기인한 각종 환경부하는 지구 바깥으로 절대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만들어진 온실가스가 비록 공기 중에 섞여 보이지 않더라도, 폐기물이 대도시 밖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닫힌 지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구가, 이 환경이 무한히 넓어 어떠한 오염물과 폐기물을 배출하더라도 다 희석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총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언젠가는 넘쳐서 되돌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일 년이 지났고 내년이면 총선이 치러진다. 도시는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보니 많은 정치인들은 보다 나은 시민의 삶을 위한 그림을 발표할 것이고, 여기에 많은 도시건축 전문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도시와 지구를 위한 정책은 ‘친환경’과 ‘녹색’이라는 거창한 깃발로만 나부낄 뿐 여전히 서민들의 쾌적한 삶을 압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런 선전들이 추구하는 것이 냠냠 도시인지, 아니면 시민에게는 범버꾸 도시를 안기고 자기들이 냠냠하기 위한 수작인지 잘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바다와 땅과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지구 유기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이 담기게 될 칼럼 제목은 ‘아침숲길’이다. 어느덧 9월이니 이른 아침 속으로 나서면, ‘아침’과 ‘숲길’이라는 낱말만으로 연상되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약간의 바람이 있다. 이 아침 숲길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제까지 두 낱말만으로도 상쾌함이 공유되고 연상될까. 아름다운 우리 국어의 낱말에서 떠올리는 다양한 느낌은 우리 삶의 경험으로 쌓인다. 곧 시가 사라지는 시대가 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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