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보여주기 싫었지만 스모 선수가 됐다” 웃음·눈물·스릴러 고루 섞였네
남들에게 엉덩이를 보여주기 싫었지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모 선수가 된 주인공은 스모의 모든 전통을 거부한다. 시합에 나가 격투기 폼을 잡는다. “난 내 방식대로 이길 거야.” 그러고는 처참히 깨진다. 그에게 동료가 말한다. “그냥 스모에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니고?”
지난 7월 말 국내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리키시’가 입소문을 타며 호평을 받고 있다. 리키시(力士)는 ‘스모 선수’란 뜻. 큰 빚을 지고 망한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개차반’ ‘동네 건달’ 주인공 기요시가 돈을 벌기 위해 도장에 들어가 스모 선수 ‘엔오’로 거듭나는 8부작 일본 드라마다. ‘청불’ 등급에 소재도 생소해 큰 주목은 받지 못했는데, 해외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도 전문가 추천율 86%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형적인 스포츠 성장 드라마를 생각하고 틀었는데, 기대에 없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다. 주인공의 불행한 가정사가 다뤄지는 초반부는 신파 같지만, 집을 떠나 스모 대회에 나가는 중반부터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들이 이어진다. 건달같이 살았던 주인공이 보수적인 스모판에서 벌이는 ‘반란’에 누군가는 손을 부들부들 떨지만 누군가는 가슴이 뛴다. ‘웃음’의 바통을 받아 후반부까지 시청자들을 끌고 가는 것은 ‘미스터리 스릴러’ 버금가는 서사다. 주인공의 최대 적수인 시즈우치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죽인 살인범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드라마를 심심한 곳 없이 채운다. 실제 은퇴한 스모 선수가 연기한 시즈우치가 주인공과 스모 시합을 벌이는 장면은 덩달아 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몰입감이 있다. 주인공이 변화해 훈련에 전념하는 고전적인 연출은 후반부에만 몰아 나와 앞부분의 생기를 크게 잃지 않는다.
인물 간 관계성도 담백하지만 밀도가 있다 . ‘비호감’ 주인공보다 눈길이 가는 건 그를 ‘바라봐주는 사람들’. 도장의 엔쇼 관장과 선배 스모 선수 엔야, 스모 신참 기자 구니시마, 아버지 등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대부분 장면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일이다. 깨지며 나아가는 일은 본인만이 할 수 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몸집이 자신의 다섯 배는 되는 주인공을 위해 군만두를 하나만 먹고 남겨둔, 다리를 저는 아버지 배역의 연기는 마음이 시릴 정도다. 국내 제목은 ‘리키시’이지만 원제는 ‘성역(聖域)’. 성역은 스모 시합을 벌이는 경기장인 ‘도효’이자, 자신의 인생을 내건 대상이다.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저마다 자신의 성역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려는 듯하다. 스모 베테랑 기자는 선수가 시합 전 도효를 향해 인사하는 허리 각도만으로도 누가 이길지 알 수 있다 말한다. 태도에서 이미 승자가 나뉜다는 것. 주인공에게 나타나는 변화도 이 태도다.
스모를 미화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비인간적인 훈련 방식, 잘못된 관습, 승부 조작 같은 치부까지 모두 보여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고 모든 전통을 부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도효엔 여성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에 길길이 날뛰는 후배 기자에게 베테랑은 이렇게 말한다. “구시대적이기에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 있어.” 이런 관점이 전통을 소재로 한 일본 드라마가 꾸준히 나오는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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