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수처럼 넓고 깊다, 역경 속에서도 자연 품어온 그 마음
- 부산 면적의 2배인 이식쿨 호수
- 바다 없는 키르기스스탄의 심장
- 옛 소련 무기시험장으로도 쓰여
- 보콘바예보선 매사냥 관람 체험
- 스카즈카 캐니언은 태초의 모습
- 온천 관광지서 韓관광객 조우도
- 수도 비슈케크 일대 여러 조형물
- 강대국 침략에 항거한 정신 새겨
송쿨을 떠나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이식쿨로 가는 중간 즈음에 ‘코치코르’라는 지역이 있다. 주말마다 열리는 ‘아시아 최대의 가축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축구 경기장만 한 크기의 야외 시장에는 염소와 양, 소와 말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축과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유목민의 나라답다. 가장 건장하고 멋있어 보이는 말 한 마리의 가격을 물어보니 대략 700만 원 정도란다.
다시 코치코르를 벗어나 국토의 동쪽에 치우쳐 있는 이식쿨로 향하다 보면 ‘보콘바예보’(Bokonbayebo)라는 마을이 나온다. 예로부터 ‘매사냥’으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매사냥 챔피언대회’에서 2년 연속 1위를 한 매사냥꾼 형제와 챔피언 매를 만났다. 세계 곳곳에 있는 매사냥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인류사에서 대략 4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 사냥 매는 암컷이다. 암컷이 더 크고 영리하며 사냥도 더 잘하기 때문이란다. 무엇보다도 수컷보다 사람과의 교감을 나누기가 쉽단다.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함께 지내면서 훈련해 사냥하다가 열 살이 지나면 대부분 자연으로 되돌려보낸다. 매의 평균 수명이 15년에서 30년이라니 나머지 삶 동안 가정도 이루고 새끼도 낳으면서 자유로이 살라는 의미다. 매사냥 감은 토끼나 여우처럼 가죽이나 털을 이용하기 위한 동물로서 주로 겨울철에 사냥한다. 겨울에 털이 더 길고 풍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봄에서 가을까지는 사냥감 동물들도 새끼를 임신하고 낳아 기르는 기간이기에 피하는 것이란다.
보콘바예보에서 이식쿨로 향하는 국도 옆 넓은 들판에는 감자 추수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말이 끄는 달구지에 감자나 옥수수를 가득 실은 채 집으로 향하는 농부의 구부정한 뒷모습도 한가롭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사진 속에서만 등장하는 모습이 이곳에서는 현재다. 길은 이어지고, 어느새 풍경은 또 달라져 있다. 초록이 사라지고 붉은 황토색이다. 태초에 이곳의 땅이 움직이고 침식하면서 만들어졌을 협곡이 등장한다. ‘스카즈카 캐니언’(Skazka Canyon)이다. 협곡의 가파른 둔덕 위에 오르면 그 너머로 바다 같은 이식쿨 호수가 보인다. 인근에는 ‘일곱 황소’(Seven Bulls)라는 뜻의 ‘제티오구즈’(Jety-Oguz)라는 협곡도 있고 해발 2000m의 천연 야외 온천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지역은 키르기스스탄 최대의 꿀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곳 카라쿨에는 ‘황금온천’이라는 이름의 ‘알틴 아라산’(Altyn Arasan)이라는 유명한 관광지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다수의 한국 관광객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키르기스스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높고 울창한 숲의 아름다움에 홀린 채, 그리고 설산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심장박동 같은 소리에 압도당한 채 5시간여를 걸어 올라가면 약 해발 2500m의 아라산 유르트 캠프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다시 꼬박 하루 이상을 올라가면 산속에 숨겨 놓은 푸른 보석 같은 ‘아라콜’ 호수를 만날 수 있다.
아라콜 호수가 산 위의 보석이라면, ‘이식쿨’은 해발 1600m의 상대적으로 낮은 평지에 있는 바다 같은 호수다. 0.6% 정도의 낮은 염분을 함유한 채 부산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이식쿨은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 키르기스스탄에는 심장 같은 호수다. 수온이 높아 한겨울에도 얼지 않아 이름도 ‘따뜻한 호수’다. 그러기에 이 호수 인근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키르기스인이 이주해 오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도 구소련 시절에는 소련의 해군 잠수함과 어뢰 성능 시험장소가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식쿨 호수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원래 시작 지점이었던 수도 비슈케크로 향한다.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왕복 4차선의 포장도로다. 주요 관광지로서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이지만 중국과의 국경지대로 연결되는 무역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수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롯가에 훈제 생선을 파는 노점상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도시 이름도 ‘어부의 마을’이라는 뜻의 ‘발릭치’다. 이곳은 이식쿨의 서안에 접해 있어 대대로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살았다. 우리 돈으로 대략 삼천 원 정도를 주고 한 마리를 사서 먹어보니, 생선에서 신선하면서도 쫄깃하고 짭짤한 호수의 맛이 났다.
수도 비슈케크의 중심에는 대통령관저와 국회의사당, 그리고 국립역사박물관이 국가의 자존심처럼 서 있다. 그 정점은 아마도 국립역사박물관 앞 넓은 광장에서 말을 탄 채 앉아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전설적 영웅인 마나스 동상이 아닐까 싶다. 옛소련 시절에는 바로 이 자리에 마나스가 아닌 레닌 동상이 서 있었다.
마나스 동상을 뒤로 한 채 도심을 벗어나 대략 30여 분을 이동하면 ‘총-타쉬’라는 마을이 나오는 데 이 마을 언덕에는 ‘아타베이트’(Ata-Beyit)라는 거대한 추모 단지가 있다. 아타베이트는 ‘우리 아버지들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브에 의해 2000년에 건립된 곳으로, 옛소련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묘지와 함께 역사관과 거대한 기념비가 함께 서 있다. 1938년, 당시의 소련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소련에 대한 저항세력들과 지식인들을 비밀리에 끌고 가서 총살했는데, 이곳이 그 장소다. 도심에서 떨어진 이곳에서 자행된 소련의 만행은 비밀로 지켜졌으나 한 목격자의 유언으로 자신의 딸에게 전달되고 소련 붕괴 이후 그 딸이 대중에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정부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고 재판 없이 처형된 19개국 출신의 137명의 희생자들이 장례식과 함께 이곳 묘역에 안치되었다. 그중에는 일제 강점기를 피해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온 고려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2016년 9월,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다시 이곳에 제정러시아의 압제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키르기스인의 봉기 100주년을 기념하는 21m 높이의 대형 ‘툰덕’(유목민인 키르기스스탄의 이동식 정통가옥의 내부 천장 구조물) 형상 구조물과 부조 조형물 4개를 세웠다. 1916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에 의해 자행되었던 키르기스인들에 대한 탄압과 강제징용에 항거하며 일어났던 자국의 봉기와 그때의 저항정신을 기억하고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의미다. 거대한 툰덕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말 발걸이들은 옛소련의 강제 징병에 희생되거나 저항하다가 죽어간 아버지 키르기스인들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아무도 원치 않았던 독립국’이라 불릴 정도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탄압을 견디고 이겨낸 나라다. 그 거친 환경을 귀중한 자원으로 삼아 이제는 새롭고 생태적인 희망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나라다. 모든 역경과 불편함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그 자체였던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지 않았고 함께 살아온 모든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며 이웃하는 사람들과의 공존과 환대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때 묻지 않은 인간애를 그대로 간직한 나라다.
파미르와 텐샨 높은 곳의 하얀 눈을 닮은 키르기스스탄과 이곳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소중한 모든 것들과의 공존 속에서 서로를 돌봐주면서 변화하고 발전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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